예상대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의 만찬은 오직 박근혜 대통령만을 위한 자리가 되고 말았다. 서로 덕담과 농담을 건넸고 이정현 신임 대표와는 독대도 했지만 결국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결의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게 과연 한국 정치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와의 만찬 자리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화합’을 상징하는 분홍색 재킷을 입고 나타났고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당정청이 완전히 하나, 일체가 되고 동지가 돼서 국민에게 약속한 것들을 제대로 실천하고 특히 집권 세력의 일원으로 책무를 다하겠다”고 발언했다. 이 자리에서 이정현 대표는 여당의 임무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뒷받침 하는것이라는 걸 재차 강조했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를 말하는 맥락과 동일하다. 유승민 의원이 교섭단체대표연설 직후 ‘철퇴’를 맞은 것은 단지 그의 발언 내용이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의 연설을 차기 대권으로 가는 하나의 ‘출사표’로 본 거다. 출사표를 던졌다는 것은 전쟁준비를 하겠다는 거고, 그러자면 장수를 모으고 진지를 짓고 군량을 모아야 한다. 여당이 똘똘 뭉쳐 박근혜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을 뒷받침하는 역할만 해도 모자란 판에 어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단 말인가. 이런 역적이 있는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구체적 아젠다에 국회법 개정안으로 행정부를 무력화시키는데 동의까지 한 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반란이다. 대통령은 분노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그 반란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전 대표’란 호칭으로 불리던 이명박 정부 시절 국회 내에서 차기 대권주자의 입지를 조기에 굳혀 세종시 수정안을 박살내는데 성공했다. 친박계는 다수파인 친이계에 힘으로 밀리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진지를 지키는데 성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 시대가 오는 걸 막기 위해 정운찬 전 총리나 김태호 의원 등의 ‘차기’를 물색하는데 몰두했으나 퇴임 2년 반을 남긴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신사협정’을 맺는 걸로 백기를 들었다. 이 신사협정의 내용은 ‘공정한 경선관리와 이명박 정부 성공에 협력’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공정한 경선관리’는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거고 ‘이명박 정부 성공에 협력’은 박근혜 당시 의원이 하는 거다. 어쨌든 이 신사협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여당의 대선후보가 되는 마지막 퍼즐조각을 맞출 수 있었다.

이정현 대표가 11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현 대표가 그 당시의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위치도 아닌데, 두 사람의 독대가 이명박 정부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건 상황이 같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다르기 때문에 비교해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내세우며 똘똘 뭉치는 건 이명박-박근혜 신사협정의 뒷부분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앞부분, ‘공정한 경선관리’는 어디에 있는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박근혜 시대의 박근혜’가 출현하는 걸 막기 위해 ‘배신의 정치’라는 철퇴를 휘둘러 대권주자들이 고개도 들지 못하게 해놨기 때문이다. 즉,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의 만찬이 ‘정권의 성공’만을 위한 게 되고 ‘정권재창출’이란 과제는 의도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모양이 된 건 이런 사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정권재창출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건 지난 전당대회에서도 드러났다. 친박계건 비박계건 대한민국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들이 억울하다거나 계파질서를 극복하겠다는 주장만 했다. 국민들의 삶과 좋은 정치의 조건에 대한 고민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국민들 입장에서야 도대체 친박계나 비박계가 당권을 잡는 게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이렇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정권재창출에 무관심한 이유가 국민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친박계들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을 내세우는 걸로 ‘정권재창출’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 다 놔두고 하필 반기문 사무총장인 이유는 이 카드가 ‘개헌’과 밀접한 연관을 갖기 때문이다. 내치와 외치를 이분하는 개헌이 이뤄지면 반기문 사무총장은 외치를 맡고 TK라는 강력한 지역기반을 갖춘 친박계가 내치를 독점하게 될 거라는 전망은 이미 수차례 여의도 언저리에 회자됐다. 결국 ‘반기문 대망론’도 권력의 생명력을 연장하려는 기도에 불과한 거다. 병든 한국 사회에 무슨 처방을 하겠다는 내용은 단 한 가지도 포함돼있지 않다. 개헌이 국민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거의 모든 의제가 국민의 삶과는 관계없는, 자기들끼리의 ‘정치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정현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탕평 균형 능력을 반영한 개각’을 요청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대표는 이외에도 ‘수평적 당청관계’의 가능성을 연상하게 할만한 무슨 협의들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만과 공작에 속하는 일이라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 ‘불통’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던 청와대는 이병기 비서실장 취임 직후 뭔가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점을 피력하기 위한 몇 가지 ‘연출’을 했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재킷의 단추를 잠그지 않은 채 배를 쑥 내밀고 웃는 사진은 이 연출을 위한 ‘티타임’에서 찍혔다. 국무회의니 수석비서관회의니를 진행하기 전에 소박한 티타임을 한다는 걸로 ‘소통’의 가능성을 암시했다.

그러나 이런 공들인(?) 연출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병기 왕따론’으로 완전히 잊혀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현재 이원종 비서실장 체제에 와서는 아예 그런 연출도 시도하지 않는다. 연출이 다 무엇인가. 이원종 비서실장이 청와대에서 무슨 역할을 어떻게 하는지 아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 될 정도다.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데 비서실장을 바꾼들 무엇이 바뀌겠는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데 이정현 대표가 직언을 몇 차례 하고 그걸 들어주는 시늉을 한들 무엇이 바뀌겠는가.

교육부 고위 공무원이 ‘국민은 개돼지’라고 해서 한참 난리였는데, 이쯤되면 정말로 그런 인식을 뼛속 깊이 갖고 있는 건 대통령이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다. 그저 조금의 ‘콩고물’만 나누어 주면 대통령이 원하는 대로 그저 조용히 있는게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도대체 권력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애초 2012년 대선에서 제기된 질문을 임기 말에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도 물어야 한다는 건 쓰는 사람 입장에서도 고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를 언급했다고도 한다. 모처럼 서민들의 고통을 알아주겠다는 것이면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대통령의 ‘진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누진제를 사실상 무력화해서 전기요금 산정에 ‘공적가치’를 반영할 여지를 없애고, 전력민영화를 추진하려는 건 아닌지 말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는 생산, 송배전, 판매로 나눠져 있는 전력공급 과정에서 판매 부문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력생산은 이미 민자발전소로 인해 시장화 되는 과정에 있다.

결국 이 과정에서 돈을 벌게 되는 사람은 누구겠는가? 정부는 진실이 어떻든 극구 부인하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익히 아는 우리로서는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근혜 정권’이라는 건 단지 한나라당-새누리당이 창출한 정권이라는 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실상 같은 국정철학을 갖고 있다. 이제 여기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정권이 변하지 않으니 이제는 국민이 정권을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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