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이 시작된 지 제법 되었지만 생각만큼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국제적인 행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프로 스포츠가 일상화되고 수많은 채널에서 다양한 스포츠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올림픽과 같은 큰 대회가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박상영의 아름다웠던 주문, 난 할 수 있다

리우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금메달 후보들이 초반 대거 탈락하며 우려 섞인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이런 상태라면 예상했던 10위권에 들어서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 전 유력한 금메달 후보들로 꼽혔던 이들이 예상 밖 부진으로 고배를 마셨다.

사격, 양궁, 유도, 펜싱 등에서 메달이 유력한 대표 선수들이 의외로 초반에 무너졌다. 펜싱에서도 최근 금메달을 따며 효자종목이 되어가고 있지만, 앞선 다른 종목들은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강세 종목이라는 점에서 더욱 아쉽다. 물론 양궁은 개인전에서 세계 1위가 탈락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다른 선수들이 모두 금메달 후보라는 점에서 여전히 기대감은 크다.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금메달 소식에 쏠리는 시선은 여전하다. 남녀 양궁 단체전 금메달이 전한 즐거움과 유도 정보경, 안바울의 선전에도 많은 이들은 환호했다. 어렵게 리우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지만 제대로 훈련을 할 수 없었던 마린보이 박태환의 부진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9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카리오카 경기장 3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개인 에페 결승전에서 박상영(왼쪽)이 헝가리 제자 임레와 대결을 펼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21살, 펜싱 국내 최연소 대표선수인 박상영을 메달리스트로 꼽은 이들은 없었다. 물론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쟁쟁한 선수들과 대결해야 하는 박상영이 금메달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는 감독도 기대하지 않았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환영받지 못한 채 펜싱을 시작했을 때 박상영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엄청난 장비 가격이 부담스러웠던 어머니는 그가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선배들의 낡은 장비로 훈련을 하던 그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비영리단체의 지원 등을 받으며 운동만 해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최연소 펜싱 대표선수는 탄생되었다.

국가대표가 되었지만 그에게 시련은 계속되었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긴 치료와 재활을 거쳐야 했던 박상영은 올림픽 출전이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겨냈고, 그렇게 올림픽 무대에 섰다. 무릎을 다쳤고 상대적으로 키도 작은 박상영에게 가장 큰 무기는 빠른 발이었다.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개인 에페 결승 경기에서 한국 박상영이 헝가리 제자 임레를 상대로 점수가 뒤지고 있자 생각에 잠겨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178cm라는 펜싱에서는 장점이 되기 어려운 키의 약점을 빠른 발로 만회했던 박상영에게 무릎은 그래서 중요했다. 무릎 십자인대 수술까지 받으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그는 이를 악물고 경기에 나섰다. 다리 통증과 경련을 이겨내고 박상영은 세계적인 선수들을 꺾고 결승에 올라섰다.

결승 상대는 세계 3위 헝가리의 제자 임레였다. 세계 21위인 21살 박상영이 결승에서 마주서야 하는 선수는 너무 강했다. 개인적으로 두 번의 경기에서 임레를 이겼었다고는 하지만 올림픽 결승 무대는 어린 박상영에게 무거운 공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라운드가 끝났을 때 박상영은 임레에게 9-12로 뒤져 있었다. 마지막 라운드가 남았지만 경기를 뒤집는 것은 그만큼 어려워 보였다. 41살의 노련한 세계 3위 선수가 쉽게 경기를 내줄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잠깐의 쉬는 시간 박상영은 홀로 "할 수 있다"를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라운드에 올랐지만 박상영은 간격을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10-14까지 몰리게 되었다. 15점을 뽑으면 끝나는 경기에서 매치 포인트 상황에서 역전은 거의 불가능했다. 에페 종목이 유일하게 전신을 공격할 수 있는 종목이었고, 우위에 선 임레가 방어를 하면서 함께 공격을 해서 점수를 뽑는 전략을 세워도 금메달은 그의 몫으로 보였다.

금메달이 눈앞에 다가온 임레는 수비보다는 공격을 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박상영은 기적을 만들기 시작했다. 절대적으로 불리한 그 상황은 중계진마저 패배를 당연하게 여길 정도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포기하지 않은 한 사람인 박상영은 그렇게 펜싱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극적인 승부를 벌였다.

한국 펜싱 대표팀의 박상영이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결승에서 제자 임레(헝가리)를 꺾고 금메달을 따낸 뒤 환호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매치 포인트 상황에서 주눅 들지 않고 포기도 하지 않은 박상영은 그렇게 대한민국 펜싱만이 아니라 세계 펜싱 역사를 새롭게 썼다. 21살의 박상영은 116년 펜싱 에페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가 되었다. 모두가 포기한 순간 홀로 포기하지 않은 채 마지막까지 집중했던 박상영은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박상영이 만들어낸 이 극적인 드라마는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의 성공담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무릎에 큰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경기장에 올라서면 통증이 사라졌다는 박상영에게는 그만큼 무서운 집중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청춘들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현실에서 박상영은 희망이 되었다. 모두가 박상영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아름다운 주문 "나는 할 수 있다"를 외친다면 그래도 이 지옥 같은 현실과 맞서 싸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박상영이 전해주었다.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한 박상영의 극적인 역전 금메달은 펜싱 역사만이 아니라 올림픽 사상 가장 극적이며 아름다운 경기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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