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이명박 대통령은 부시와의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대통령을 수행중이던 이동관 대변인은 “노무현씨가 끝내지 않은 거(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우리가 마무리 해주고 있는 것이다”라며 워싱턴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 대변인은, ‘졸속협상’ 논란으로 민심이 동요하기 시작하던 서울에 돌아와선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 ‘설거지’ 해주고 있다고 강변하면서 대부분의 잘못(?)을 이전 정권에 덮어씌웠다. 작년 4월 하순의 일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가 그로부터 며칠 지난 5월 2일 시작됐다.

2009년 4월, 정부는 또 하나의 ‘설거지’를 준비하고 있다(외교부는 금주 주말께 발표할 모양이다). 이라크 침공을 지휘했던 부시가 주도한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정회원’으로 등록하겠다는 것으로, 2005년 12월 이후의 정책인 ‘제한적 참여’를 ‘전면 참여’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부시 행정부는 갔지만 한국의 부시 사랑은 여전하다.

PSI에 전면적으로 참가한다는 의미는 한반도 수역에서의 군사적 차단조치를 가능토록 하겠다는 것. 공해상에서의 북한 선박 봉쇄에 더해, 북한의 영해 바로 밖에서 차단한다는 전술로서, 실제 작전 명령이 내려진다면 ‘선전포고’에 다름없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 4월 15일자 한국일보 3면 기사.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PSI에 전면적인 참여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PSI의 목적과 원칙을 지지하고 동북아시아에서 핵 확산 방지를 위해서 사안별로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부시 측에 피력했고, CNN은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 설득에는 실패, 말은 얻었지만 행동은 얻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쇠고기와 한미FTA 비준 문제가 그렇듯, PSI에서도 노 전 대통령의 벽을 넘지 못한 부시에게 이명박 정부의 탄생은 한반도에서의 군사 및 경제 분야 ‘로드맵’을 걸림돌 없이 진행시키기에 더없이 바람직한 적시타였다.

이 대통령 취임 한 달 뒤인 2008년 3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PSI 전면 참여를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세계 인류 공통의 관심에 참여해야 한다.” 2008년 4월 방미 중, 이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발언으로 한국의 PSI 전면 참여는 이미 1년 전에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그러나, 외신과의 회견 때와 달리, 국내 언론 워싱턴특파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선 “부시 대통령이 ‘이 대통령이 본국에 가서 정치적으로 곤란해질 문제는 얘기하지 말자’고 했다”며 PSI 참여와 아프간 파병 등에 대한 논의가 정상회담에선 없었다고 말한다.

부시도 한국 국민들의 반향을 예상했던 걸까. 어쨌든 지난 1년 간 PSI 문제가 양국 언론 보도에서 크게 부각된 기억이 없다가 2009년 4월 북한의 로켓 발사를 빌미로 한국 정부는 갑자기 분주해졌다. PSI 참여 여부는 로켓 발사 여부와 관련이 없다던, 불과 2, 3주 전 청와대 입장을 다시 보면 궁색하기만 하다.

결국 오마바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미국의 최소 다섯 가지 압박은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 방위비 분담금의 주한미군 기지 이전 전용 문제 2)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3) PSI 전면 참여 4) 주한 미 대사관 부지 변경 5)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 등이 그것이다.

한국 정부가 부시와 이미 협의를 마친 상태라면 오바마가 큰 틀을 바꾸기 힘들거니와 미국이 얻게 될 이득을 계산하면 그럴 하등의 이유도 없어 보인다.

부시가 이명박 정부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한미동맹 로드맵’이란 것에도 미사일방어(MD)·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가입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달성해서 ‘첨단무기 판매’를 용이하게 하고 ‘한반도 안보시스템 개편’을 도모한 뒤 ‘작전통제권 재협상’을 한다는 계획으로 전해진다. ‘범태평양 안보협의체 구성’이 들어있다고도 한다.

당시 이와 관련한 주간지 <시사인>의 보도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적극 반론하거나 전면 부인하지 않았다. 그 로드맵의 마지막 단계로 알려진 ‘경제협력’의 실체가 무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간 경제협력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PSI가 쇠고기 때처럼 지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올지는 미지수이다. 오바마 정부의 입장부터 아직 특별한 게 없다. 따라서 PSI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중국의 반응도 아직 알 수 없고 북한이 다시 서해교전 같은 도발을 감행할지의 여부도 예측할 수 없다. 정부가 이번 주말 발표 예정이라고 하니 지켜볼 문제다.

지금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대량파괴무기를 주도적으로 수출하는 나라 중 하나가 미국이라는 팩트 밖에 없다. 더불어, 나중에 혹시 문제가 생겼을 때 정부 관계자 발언을 통해 ‘설거지론’이 다시 등장할 수 있다는 가설 정도는 곁들여 세워봄직하다.

다음 4월엔 무엇일까? 정부가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동맹으로 정의한 “21세기 전략적 한미동맹”을 에워싼 껍데기는 하나 둘 벗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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