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4구역철거민방송 1호를 시작하겠습니다”

용산참사가 벌어졌던 남일당 건물 바로 뒤 건물은 故 이상림씨가 운영했던 호프집 ‘레아’가 있었던 곳. 이제는 1층은 ‘갤러리 레아’로, 2층은 ‘촛불미디어센터’로 새롭게 태어났다. 14일 ‘용산4구역철거민방송’ 1호 스튜디오 촬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 용산참사 뒤 촛불미디어센터가 있는 건물의 모습ⓒ나난
촛불방송국 스튜디오가 위치한 2층에는 촬영을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방송의 총괄책임은 푸른영상의 김준호 감독이 맡았다. 아니, 이제는 어엿한 방송PD라고 소개해야 할 것 같다. 그에게 어떤 이유로 방송뉴스를 맡게 됐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제가 이곳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었다”고 답한다. 대답을 듣는 순간 촛불미디어센터에 모여든 이들 모두 같은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산참사 발생 80일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진상조사는 이뤄진 게 없고, 이명박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장례를 치르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순천향병원에서의 경찰검문은 더욱더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 용산은 그렇게 언론에 의해, 묻혀가고 있다. 어쩌면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도 지워지고 있는지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촛불미디어센터 개소의 의미이며, ‘용산4구역철거민방송’이 필요한 이유다.

“안녕하세요. 뉴스를 맡은 저는 용산4구역에서 편의점은 운영했던 유성옥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용산4구역 재래시장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했던 김순옥입니다”

‘용산4구역철거민방송’의 앵커는 철거민들이 직접 맡았다. 어색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들은 “안녕하십니까?”로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안녕하세요”라고 하는 것이 좋은지를 따져보았고, 이내 “안녕하세요”를 선택한다. 그리고 다시 연습에 들어갔다. 한 사람 한 사람 코멘트를 맞춰보고 또 맞춰봤다. 연습에 연습이 이어졌지만 이내 부족한 듯 또다시 연습이다.

▲ 오늘의 앵커를 맡은 왼 김순옥씨, 오른쪽 유성옥씨의 모습ⓒ나난
이제 실전 ‘연습’ 방송에 들어간다. 앵커들의 첫 인사가 끝나고 1월 발생한 참사 동영상도 끝났다. 그리고 두 앵커들이 이야기를 나누지만 이내 어색해 대화가 끊기고 만다. 이때 김준호 PD는 “(전문)앵커가 하면 잘하겠지만 그들은 객관적인 내용밖에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며 앵커들에게 “경험적으로 느낀 것을 뱉어낸다고 생각하라”고 주문한다. 소규모 공동체방송의 묘미다. 전문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잘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살리는 것, 그것은 바로 진정성이 담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김준호 PD는 “대화를 나누셔도 좋고, 평소 이야기하던 대로 ‘언니’라고 호칭을 쓰라”고 주문한다. 하다보니 사투리가 나오지만 그는 “사투리로 하셔도 된다”고 설명한다. 이것이야 말로 MBC와 KBS, SBS 등 지상파 방송3사에서는 꿈에도 나올 수 없는 주문이다.

그렇게 ‘연습’ 방송이 끝이 났다. 그러고는 바로 들려오는 소리. 앵커들의 “나 이거 안혀. 죽어도 못하겄어”, “긴장돼서 못하겠어”. 이에 김준호 PD는 “어색할 텐데 참 잘하셨어요. 잠깐 쉬었다 할까요?” 이내 잠시 쉬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의 ‘연습’방송은 없다. 실전만이 있을 뿐.

“쨍”

▲ 잠시 쉬는 동안 맥주 한 잔으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다. ⓒ나난
그러자 밖에서는 “맥주 한 잔 하시겠어요?”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여전히 떨리는지 유성옥·김순옥 앵커는 “좋아요”라며 ‘맥주 한 잔’을 받아든다. “건배~.” 그렇게 ‘용산4구역철거민방송’은 음주방송으로 진행됐다. 물론 0.05%라는 음주단속 기준에도 못 미치지는 혈중 알코올농도의 음주방송이긴 하다. 그리고 또 그것을 넘어간들 어떠하리.

잠시 쉬고 들어간 실전 방송은 한 번의 NG도 없이 끝이 났다. PD들과 앵커들은 촬영된 영상을 다시 돌려보고 수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영상이 끝나자마자 바로 앵커들은 “너무 촌스럽게 나와”, “불안하니까 종이도 자꾸 만지고, 눈이 자꾸 딴 곳을 보기도 하고”…. 옆에서 지켜보고는 꽤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앵커들의 눈에는 자꾸 무언가 부족해보이나 보다. 그래서 결국 다시 찍기로 했다.

그리고 들려온 질문. “여기에서 ‘투쟁’이라고 외쳐도 되요?”, 그에 대한 김준호 PD의 답은 “해도 돼요. 편안하게 하세요”였다.

“NG”, “NG”, “NG”

다시 시작된 녹화에서는 연속되는 NG가 났다. 김선옥 앵커가 “경찰이 아무리 탄압을 해도 저희들은 여기서 끝까지 투쟁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멘트에서 말이 꼬였다. 한번 틀리면 같은 곳에서 반복해서 틀리기 마련이라고 했던가. 잠시 쉬고 다시 촬영에 들어갔고 클로징 코멘트까지 마무리 되었다.

MBC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코멘트는 앵커 교체로 인해 13일부로 끝났지만 이제 ‘용산4구역철거민방송’의 클로징 코멘트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용산4구역철거민방송’ 1호의 클로징 코멘트에는 ‘활기찬 용산’, ‘생동감 넘치는 용산’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겼다.

“용산에 사람들이 살고 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집이나 건물들이 부서졌고,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삭막했던 공간에서 점점 생동감이 넘치고 다시 활기가 가득차고 있는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용산을 기억하시는 그 어떤 분이시라도 이곳에 들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클로징코멘트 중)

그렇게 ‘용산4구역철거민방송’ 1호 스튜디오 녹화가 모두 끝이 났다. 녹화가 끝나고 나눈 김준호 PD와의 미니인터뷰에서 그는 “‘용산’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무거워진다”며 “그런 사람들에게 ‘용산’소식을 전달하는 데 무거운 것을 보여주면 더 망설여지게 되기 때문에 생기있고 재밌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이것이야 말로 ‘용산4구역철거민방송’이 가야할 지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용산4구역철거민방송’ 1호 스튜디오 녹화장. 어색해 머리 긁적이는 PD와 앵커들이었지만 그곳에는 확실히 생기와 웃음이 있었다. 그것은 ‘용산4구역철거민방송’의 지표일 수 있겠지만 또한 용산참사 해결의 실마리로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용산’이 무겁다고요? 그렇다면 ‘용산4구역철거민방송’을 추천합니다.”

다음은 김준호 PD의 미니 인터뷰다.

▲ 김준호 PDⓒ나난
- 어떻게 결합하게 됐나?
= 어수선한 시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 평소 용산참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나?
= 무겁다. 답답하다. 용산참사가 터졌지만 또 어느 순간 완전히 묻혀버렸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아직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인의 부검을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진행하는 것을 보았고, 건물 안에 있던 철거민들이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되고, 검찰수사 결과 철거민들이 던진 화염병에 의해 죽었다고 나왔다. 이런 과정들이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

- 뉴스에서 역점을 두는 부분은?
= 용산의 일들이 그냥 묻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 고민이다. 용산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산이라고 하면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또다시 무거운 것을 보여준다면 그 사람들은 용산사건에 있어서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생기있고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용산4구역철거민방송의 포인트가 있다면?
= 앵커분들이 아닐까? 오늘은 경직된 면이 있었지만 앞으로 기획회의도 같이하고 아이템도 같이 짜고 해서 좀 더 자연스러워지면 앵커가 느낀 그대로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일주일에 1회를 제작할 예정이다. 그리고 촛불미디어센터 사람들과 같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평택투쟁 당시 들소리방송국처럼 사이트 자체에서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며, 또한 뉴스는 영어, 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으로 재구성해 유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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