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방중을 둘러싸고 또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이 논란의 양상은 전형적인 정치적 편 가르기에 의한 것이지만, 동시에 박근혜 대통령의 냉소적 정치인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박근혜 정권의 이러한 통치는 국민의 현실을 힘들게 할 뿐 아니라 한국 정치의 미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9일자 사설

보수언론은 9일 지면에 일제히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방중과 전당대회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 사드 배치 반대론을 비판하는 사설을 배치했다. 중앙일보의 경우 <안에서 싸워도 바깥으론 초당외교를>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과 설득 과정에서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인 건 사실이다”, “베이징에 간 더민주 초선 의원들의 선의는 인정한다. 그들을 향한 ‘매국노’라는 비난도 과도한 느낌이다”라면서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방중을 ‘나라 망신’으로 규정했다. 동아일보는 <野당권주자들, ‘사드 반대’ 경쟁하며 親文노선 돌아갈 건가>제하 사설에서 “더민주당이 중국의 의도대로 남남갈등을 부추겨 사드 배치를 지연시키고 집권할 경우 사드 배치를 철회시킬 작정인지 궁금하다”라면서 “더민주당의 이번 전당대회는 실질적 오너인 문재인 전 대표 노선에 맞춰 친북(親北)으로 돌아가느냐를 가늠할 수 있는 자리”라고 썼다.

조선일보 9일자 사설

보수언론의 이런 반응이야 예상 가능한 범주 안에 있는데, 조선일보 사설의 톤은 앞의 두 신문과 약간 다르다. 조선일보는 <朴 대통령과 與野 새 지도부가 안보를 위해 해야 할 일> 제하 사설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방중과 이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비판을 “전형적인 한국형 정쟁”으로 표현하면서 “우리 정치권은 선거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면 사드 정쟁이 아니라 그 이상 무슨 짓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그간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한 것이 없고 사드 문제가 다른 현안에 대한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여야 지도부가 새로 선출되면 대통령이 이들을 만나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게 조선일보 사설의 결론이다. 아마 조선일보가 이런 스탠스를 취하는 것은 비록 자신들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방중에 대한 비난에 동참하고 있으나, 오로지 한쪽만을 욕할 일은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보수언론이 더불어민주당을 매도하면서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이 무리수를 둔 게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이런 판국에 박근혜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초선의원들의 방중을 ‘종북’ 취급 한 것은 과한 처사다. 박근혜 대통령은 8일 “사드 배치로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건 북한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하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더불어민주당의 김한정 의원이 지난 3일 성주를 방문해 한 말에 대한 언급으로 보인다.

문제는 김한정 의원 발언이 북한 도발을 옹호하려는 취지가 아니었다는 거다. 김한정 의원 측은 박근혜 대통령 발언 이후 당시 발언의 원문을 공개했는데, 이 원문을 보면 그간 박근혜 정권이 중국과 대북공조를 해왔는데 사드 배치로 이게 불가능해졌다는 것에 대한 비판 취지로 해석된다. 즉, 박근혜 대통령은 이 발언의 앞뒤 맥락을 잘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정치 공세의 재료로 활용한 것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한 것은 야당에 대한 보수세력의 일반적 인식에 기댄 측면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방중 의사를 밝힌 이후 이들을 ‘친중세력’으로 표현하면서 과도하게 비판한 보수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이 발언은 자신이 향후 정국을 뜻대로 통제하기 위한 큰 그림을 갖고 다소 의도적으로 내놓은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발을 위한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에 참석, 참석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이와 함께 내놓은 발언들과 보수언론 보도 내용을 보면 이 ‘큰 그림’의 내용을 유추해낼 수 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원격의료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기업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여러 민감한 발언을 쏟아냈다. 현재의 구조조정은 상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기업들이 알아서 경쟁력 없는 부문을 축소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이어졌다. 이는 이후 통치 국면에서 청와대가 중심을 잡고 국회와 재계를 끌고 가겠다는 인식을 보여준 걸로 풀이된다. 즉, 사드 배치로 인한 대구경북에서의 반발과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 반격에 나서야 하는 거다. 세속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것인 셈이다.

그러나 4·13 총선을 겪고 나서도 대통령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다면 문제가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총선을 전후 ‘협치’라는 개념이 새로운 트렌드처럼 제기된 것은 박근혜 정권이 ‘불통’의 태도를 일방적으로 반복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4·13 총선은 말하자면 대통령의 이런 일방통행식 통치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고, 때문에 새로운 리더십의 형성이 필요해졌다는 게 당시 보수언론을 포함한 대다수 여론의 실체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8일 발언은 여전히 하던 방식 그대로 하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에 가깝다. 야당은 중국이나 북한의 편을 드는 비상식적 존재이지 국정운영의 파트너가 아니고, 여전히 국정현안은 주무부처가 아닌 청와대가 직접 방향을 잡고 챙긴다. 다수 언론은 미래창조과학부 등 4~5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예고하고 있는데,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 역시 이때까지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일보 9일자 지면 칼럼

이런 상황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갖고 있는 정치에 대한 냉소적 현실인식을 재삼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 속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 잇속만 챙기며 언제든 나라를 배신할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조선일보가 9일 지면에 실은 <조자룡은 그만 찾으시길>이란 제목의 칼럼을 보면 보수언론조차 대통령의 이런 인식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이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저서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자룡에 대한 선망이 표현된다며 “대통령은 대낮에 등불을 들고 찾아야 하는 사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 세상이라는 무대의 중심에 서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그렇게 찾은 사람들이 대통령에게는 흡족했는지 몰라도 국민의 기대에는 미흡한 경우가 많았다”며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장관이나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등을 거론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하면 결국 박근혜 정권에서 ‘정면돌파’와 ‘일방독주’, ‘불통’이 계속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통령이 상대를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문제가 시작돼 오히려 자기 자신에 부메랑이 돌아가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이 이런 식이니 국민이 갖고 있는 정치적 냉소 또한 확대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냉소의 확대는 이 사회에서 좋은 정치를 펼치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좋은 말’을 아무도 믿지 않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이런 냉소적 인식을 떠받치고 있는 건 보수언론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앞서 대통령이 문제삼은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의 발언은 조선일보에 의해 먼저 자극적인 방식으로 다뤄졌다. 조선일보는 또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를 맨 처음 보도한 당사자이면서 정권이 이 문제를 ‘찌라시’ 때문에 일어난 일로 몰아가자 6일 사설에서는 ‘찌라시를 만드는 쪽도 문제고 활용하는 쪽도 문제’라며 사실상 백기항복을 했다. 애초의 문제제기에 ‘다른 뜻’이 있었던 것 아닌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치적 냉소의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보수언론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방중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평가해야 한다. 야당, 중국, 종북을 하나로 묶어 몰아가는 것으로는 정치의 퇴행을 초래할 뿐이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방중을 외교적 레버리지로 활용하면서 국회에 초당적 태도를 요구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소모적인 낙인찍기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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