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을 형성하는 특수한 일을 할 뿐 신문사는 어디까지나 특정집단이 출자해서 자유롭게 운영하는 사기업”이라는 의식 수준을 가진 조중동에게 ‘MBC의 신경민 앵커 교체’는 역시 별다른 의제가 아니었나 보다.

상대적으로 진보라 평가받는 경향·한겨레는 14일자 지면에서 신경민 앵커 관련 기사를 지면의 앞쪽에 배치하며 사설에서 “이대로라면 MBC마저 정권에 투항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된다”(경향) “MBC가 굴종을 선택했다. 부당한 권력의 요구에 맞서지 못하는 언론이 공영성의 보루가 될 순 없다”(한겨레)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 한겨레 14일자 3면
하지만 14일자 조중동 지면에서 신경민 앵커의 교체에 관한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예 보도를 하지 않거나 1단기사로 한 귀퉁이에서 짤막하게 처리하는 데 그쳤다.

조선일보는 아예 기사화하지 않았으며, 중앙일보는 14일자 35면(사회면) 브리핑 코너에서 1단 기사로 처리했다. 기사에는 엄기영 사장의 앵커 교체 결정과 제작거부를 계속 해가기로 한 MBC기자회의 계획이 담겼다.

동아일보도 14일자 14면(사회면) 오른쪽 하단 귀퉁이에 1단기사로 내보냈다.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가 회사 측의 진행자 교체 결정에 따라 13일 방송을 끝으로 앵커 자리에서 물러났다” “‘뉴스데스크’의 단축과 ‘시사매거진 2580’ 등 기자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의 결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등 매우 간단하다.

신경민 앵커 교체를 결정한 엄기영 MBC 사장은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표명한 가운데 13일 MBC 보도본부 차장·평기자 비대위가 발표한 성명에서 ‘청와대의 압력’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보도본부 비대위는 “과연 앵커교체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인가. 정치적 압력은 없었는가. 전영배 보도국장 조차 지난 7일 보도본부 기별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청와대의 압력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고 답변한 바 있다”며 “청와대가 이미 오래 전부터 신경민 앵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노골적으로 교체를 요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KBS 사장 교체, YTN 낙하산 사장 투하 등 MB정부 출범 이후 정신없이 터져나오는 각종 ‘언론자유 탄압’ 사건 탓에 이제 우리사회에서 ‘정치권력의 언론탄압’은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새롭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 중앙일보 35면 ‘브리핑’코너에 실린 1단 기사
성명에는 ‘박연차 회장이 지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측근 기업인 천신일 회장에게 수십억을 전달한 의혹이 있다’는 내용의 11일자 MBC 아침뉴스 톱기사가 방송을 불과 30분 남겨두고 전영배 보도국장의 전화 한통으로 갑자기 사라졌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에 비대위는 “신뢰를 생명으로 여기는 기자들은 더 이상 그를 보도국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송재종 보도본부장의 동반 퇴진도 강력히 요구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신경민 앵커 교체를 둘러싸고 MBC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단순히 내부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정치권력의 탄압이 있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실제로 언론사가 정권 비판 기사까지 누락했다면 이는 언론의 자유와 직격되는 문제다.

하지만 신문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조중동은 청와대의 압력, 정권 비판 기사 누락 등에 대해 추적보도하기는커녕 단순 전달조차 하지 않고 신경민 앵커 관련 내용을 1단 기사로 축소해서 보도하고 있다. 과거 자신들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에 일제히 “언론자유 탄압”이라고 반발했던 조중동. 과연 무엇이 진정한 언론탄압일까. ‘대한민국 대표 신문’ ‘할 말은 하는 신문’이라는 구호 앞에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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