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사이에 숲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여유로운 마음과 세심한 눈으로도 숲의 빠름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1주일 전까지는 일찍 봄꽃을 피우는 몇몇 나무를 빼면 숲은 겨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내면의 변화를 눈으로 볼 수 없듯이 겉모습은 겨울이지만 안으론 엄청난 준비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꽃을 먼저 피우는 나무들은 앞 다투어 꽃을 피우고 새순을 먼저 내는 나무들은 새순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숲은 꽃으로 가득하고 새순으로 푸르러지고 있습니다. 땅에서도 새순들이 돋고 있어 숲은 더욱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숲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에 새순이 나오고 땅에서 새순이 돋으면 숲으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이른 봄꽃을 여유롭게 즐기던 마음은 이제 새순으로 옮겨갑니다.

숲에서 꽃은 피고 지면서 늦가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꽃만 즐기며 살지 않습니다. 땅에선 기다리던 당귀순, 달래, 고사리, 참나물, 둥굴레순, 돌나물이 먼저 나와 풍성한 밥상을 만들어 주고 나무에서는 회잎나무순, 두릅, 엄나무순이 먼저 나와 향긋한 봄맛을 느끼게 합니다.

고사리 취나물과 더불어 봄나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사랑받는 두릅은 키 작은 나무입니다. 키 작고 두껍지 않은 두릅은 숲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 몸에 작은 가시를 둘렀습니다. 숲에서 만난 두릅 중 가장 크고 두꺼운 나무는 어른 종아리 굵기 정도 나무였습니다.

▲ 두릅나무.
대부분 어른 손가락 두께정도인 두릅은 겨울엔 건드리면 뚝 하고 부러질 정도니 살아남기 위해 가시를 온 몸에 둘렀나 봅니다. 두꺼운 두릅은 원줄기엔 가시가 없고 잔가지에만 있습니다. 겨우내 겨울눈을 가지 끝에 달고 눈보라를 견디던 두릅은 꼭 4월 이때쯤이면 수줍어하는 새색시처럼 새순을 조심스레 내밉니다.

몸통에도 겨울눈을 달고 새순을 내미는 두릅도 있지만 몸통에서 나오는 새순은 먹기 좋을 만큼 큼직하지 못합니다. 어른 손가락 굵기만한 가지 끝에서 나오는 새순이 통통해 먹기 좋습니다. 가시로 온 몸을 휘감고도 처음 나오는 새순을 사람들에게 빼앗기는 두릅의 운명이 가엾게 느껴지지만 처음 새순을 나누어줄 것을 미리 짐작한 두릅은 다음 순들은 사람이 먹잘 것 없이 만들어 내보냅니다.

두릅 새순이 나올 때 언뜻 보면 두릅과 구별하기 쉽지 않은 나무에서도 새순이 나옵니다. 집집마다 울안에 거의 한 그루씩 심어 땀 많이 흘리는 여름 보양식으로 닭백숙에 넣어 먹던 나무, 두릅보다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를 온 몸에 둘러 엄하게 생긴 엄(음)나무입니다.

울안에 심어 기른 나무라 산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깊은 산에서 가끔씩 반갑게 만나면서 저절로 자라는 나무라는 걸 알았습니다.

▲ 엄나무.
두껍고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고 있어선지 우리 조상들은 엄나무가 악귀를 쫓아준다고 믿었습니다. 가시 달린 엄나무가지를 들보 위에 올려 악귀의 침범을 막기도 했고 집안에 심어 막기도 했습니다.

그래선지 피부에 병이 생기면 엄나무 가지를 삶아서 씻기곤 했습니다. 이런 정서를 받고 자라선지 산에서 한 아름이 넘는 엄나무를 만나면 괜히 즐겁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가끔씩 만나는 엄나무엔 항상 즐거움이 있습니다.

엄나무도 가지 끝에서 새순이 나옵니다. 새순이 피기 전에 재빨리 따야 먹을 수 있습니다. 두릅처럼 순에 가시를 달지 않지만 엄나무는 쓴 맛을 만들어 먹을 수 없게 합니다. 두릅과 마찬가지로 엄나무도 두꺼운 나무 몸통엔 가시가 없습니다.

두릅과 엄나무 새순은 향긋한 봄맛으로 삶을 풍성하게 하고 가시는 삶이 성숙해지면 어리고 약할 때 가졌던 가시를 다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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