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결정에 따라’, 예고됐던 대로, 결국, 그는 물러났다. 모든 헤어짐은 벼락같은 저주이다. 그는 ‘오늘 자’로 당장 떠났다. 뭐랄까, 예고편을 뛰어넘는 블록버스터는 역시 없다고 해야 할까. 클로징 코멘트를 닫는 그의 클로징에는, 예고된 것 이상의 새로움은 없었다. 지난 2008년 12월 31일 클로징과 정확히 같은 맥락이었다.

“올 한해 클로징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원칙이 숨 쉬면서 곳곳에 합리가 흐르는 사회였습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책임, 신뢰, 안전이었고 힘에 대한 감시와 약자배려를 뜻합니다. 내용을 두고 논란과 찬반이 있다는 점 알고 있습니다. 불편해 하는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이 꿈과 소망은 바꾸거나 버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함께 가져야 하는 겁니다. 2009년 첫날인 내일 돌아오겠습니다.” - 2008년 12월 31일 클로징 코멘트

▲ 13일 MBC 뉴스데스크의 신경민 앵커 클로징 코멘트
오늘 그의 클로징 멘트는 “지난 1년여 제가 지닌 원칙은 자유, 민주 힘에 대한 견제 약자 배려 그리고 안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언론의 비판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서 답답하고 암울했습니다”였다.

다분히 감상적으로 말하자면, TV 시청 인생 30여년 만에 이런 성대한 은퇴식은 딱 두 번째이지 싶다. 오늘 클로징 코멘트는 지난 96년, 서태지 은퇴 기자회견 이후 단연 압권이었다. 시간은 정확히 4821일이 흘렀고, 억압의 기제가 창작자의 심적 부담에서 권력자 심적 불편으로 바뀌었다는 것 말고 구조는 같다.

감히, 말하자면 신경민은 이제, 바야흐로 보도국의 서태지가 됐다. 저널리즘 비평계의 팬덤이 아니라, 신경민에 대한 효자동의 안티팬이 그를 보도국의 서태지, 그 경지 세계로 밀어 올렸다. 서태지를 가로막았던 것이, “살이 내리고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과 부담감 때문”이었다면, 신경민의 그것은 “구석구석과 매일매일 문제가 도사리고 있어 밝은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희망을 품은 내일이 언젠가 올 것을 믿은” 데 대한 MBC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편집국원들은 몇 번이나, ‘드라이’ 하게를 요구했다. 근데, ‘드라이’가 뭘까? 오늘, 신경민 앵커의 코멘트는 생각보다 훨씬 ‘드라이’했는데. 앵커의 개별적 코멘트를 문제 삼아 범국가적 해프닝으로 만드는 시대는 어떤 거지? ‘드라이’한가, 황량한가 아니면 아예 숨조차 쉴 수 없이 ‘황폐’한가. 미디어 비평이 점점 가소로워진다. 시대가 정말 숨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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