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MAAN) <Right Next Door To MAAN>

나에게 맨은 그저 '라이브 잘하는 밴드'였다. 한동안 '춤추는 록 음악'이 대세를 이루었고, 맨 역시 그 안에 속해 열심히 라이브를 하고 다녔지만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EP <Right Next Door To MAAN>은 그 이상의 감흥을 주고 있다. 단순히 춤추고 놀기 좋은 음악에서 벗어나 감상용으로도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러브엑스테레오의 영향이 느껴지는 이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다. 여전히 넘치는 에너지를 거세하지 않으면서도 음반 전체에 공간감과 무드를 형성했다. 탁월한 선택, 긍정적인 변화다.

빅베이비드라이버 트리오(bbdTRIO) <bbdTRIO>

빅베이비드라이버는 늘 좋은 곡을 써왔다.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게. 거칠게 설명하자면, 빅베이비드라이버 트리오는 이 정갈한 노래에 밴드 사운드를 입힌 프로젝트다. 기타-베이스-드럼이라는 트리오 구성으로 훌륭한-자신들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것을 구현한-밴드 사운드를 완성해냈다. '자신들의 지향점'이란 말을 쓰긴 했지만, 이 앨범이 무엇보다 맘에 드는 건 과거 수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즐겼던, 1990년대의 인디 록 사운드가 제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앨범 안의 퍼즈와 노이즈가 참으로 반갑다. 그리고 그 안에 여전히 단아하고 단단한 빅베이비드라이버의 노래가 있다.

식케이(Sik-K) <FLIP>

이른바 싱-랩이라 하는, 이제 랩과 노래를 함께 하는 래퍼는 많아졌지만 식케이의 <FLIP>은 그 경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앨범 가운데 하나다. 11곡이 담겨 있는 음반이지만 식케이는 이를 정규 앨범이라 하지 않고 EP로 규정했다. 그럼에도 앨범이 갖는 미덕인 유기성이란 측면에서도 탁월하다. 일관된 분위기와 정서가 음반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무엇보다 살짝 흘리듯이 하는 랩 스타일과 중독성 강한 훅 메이킹은 식케이만의 강점이라 할 만하다. 트렌디하지만 강박이 느껴지진 않고, 첫 음반임에도 분명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놓았다.

장혜진 <Ordinary>

발라드 디바 장혜진의 흑인음악 외전이다. 돌이켜보면 장혜진은 늘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비록 상업적인 면에선 실패했지만, 일찌감치 흑인음악을 받아들였던 <Temptation>(1996)에서처럼. <Ordinary>는 아예 흑인음악 에이전시인 스톤쉽과 손잡고 '작정'해서 만든 음반이다. 김박첼라, 사이코반, 콕재즈, TK 등 흑인음악 동네의 내로라하는 프로듀서들이 곡을 만들었고, 넉살, 딥플로우, 버벌 진트, 서사무엘, 앤덥 등이 각 노래에 참여했다. 장혜진은 여전히 기품 있고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로 비트 안에서 존재감을 잃지 않는다. 변신도 멋있지만, 음악까지 멋진 변신을 뒷받침한다.

퓨어(Pure) <The Light Of Tornado>

1990년대 중반 블랙 신드롬의 주요 멤버들이 새롭게 제트란 팀을 결성했다. 제트의 유일한 앨범은 흔한 말로 '저주 받은 걸작'이었다. 박영철의 파괴력 넘치는 보컬과 허준석이 중심이 된 탄탄한 리듬 섹센도 훌륭했지만 제트의 사운드를 이끈 건 시종일관 철컥대는 리프를 전면에 내세운 기타였다. 변기엽은 제트의 기타리스트였다. 제트 이후 정규 앨범으론 20년 만이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변기엽의 기타는 전혀 녹슬지 않았다. 여전히 멋진 리프를 앞세워 근사한 하드록·헤비메탈 앨범을 만들어냈다. AOR 스타일의 곡도 담아 대중적인 매력도 아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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