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 전달된 돈의 행방에 대한 진실게임이 한창 진행 중이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에 핵심적으로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 사람들은 정상문 전 비서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 노 전 대통령의 조카 사위 연철호씨 등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다.

▲ 4월 13일자 조선일보 3면 기사
검찰은 박연차 리스트 사건을 마치 퍼즐을 맞추듯 한 조각 한 조각을 이어 붙이고 있다. 그리고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된 만큼 검찰의 말을 인용하는 언론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 온갖 추측보도로 점철돼 있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추측인지가 헷갈릴 정도다.

그리고 오늘 13일, 검찰에서 밝혀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600만 달러에 대한 실질적인 수령인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되어 있었다. 어디까지나 ‘언론보도’를 통해서 말이다. 박연차 회장의 진술, 검찰 관계자의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해명 그리고 언론보도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검찰공식 발표와 검찰 관계자의 말 인용, 그 차이는 컸다

언론을 통해서 나온 검찰 관계자의 ‘박연차 회장’의 진술은 이렇다.

- “2007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직접 부탁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순순히 100만 달러를 전달한 것도 청와대의 사업지원의 대가와 기대 때문이었다. KTX를 이용해 서울로 들어와 청와대에서 100만 달러 전달했다.”
- “정 전 비서관도 ‘노 전 대통령에게 이야기 들었는데 도와준다고 해서 고맙다’며 ‘어른이 말씀하신대로 미화 100만 달러를 보내주시면 되겠다’고 말했다.”
- “500만 달러는 노 전 대통령의 애들에게 준 돈.”
- “6백만 달러를 왜 건넸는지를 묻는 검찰의 질문에 (박연차 회장은) ‘달라고 해 그냥 줬다’고 했다.”
- “100만 달러를 보낸 뒤 청와대에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나 ‘도와줘서 고맙다’는 답례인사를 받았다.”

▲ 4월 13일자 경향신문 2면 기사
그런데 오늘 13일 경향신문에 “‘박연차 진술’ 맞긴 맞나”란 기사가 등장했다. 경향신문은 “100만 달러가 오고가는 과정에 노 전 대통령이 먼저 요구해다는 박 회장의 진술에 대해서는 검찰의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검찰의 공식 입장은 ‘박 회장은 돈이 노 전 대통령에게 간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정도다”라고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경향신문은 “박 회장은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쪽 ‘애들’이 500만 달러를 받아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도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은 돈이 노 전 대통령에게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과 실제 노 전 대통령이 돈을 받았다고 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1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형사처벌 감이 되었다

어제 12일에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와 아들 건호씨가 검찰조사를 받았다. 오늘 신문은 관련 뉴스들로 채워졌다. 그런데 왠지 악의적이다. 당최 “600만 달러는 실질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받았다”는 확정의 언어와 그 근거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 그러나 또 제목은 확정적이다.

◇ 조선일보
제목 : 검찰 “600만 달러 전부가 노 전 대통령에게 간 뇌물”
확정 :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연철호씨 명의의) 홍콩 계좌번호를 알려줘 500만 달러를 송금했다’고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송금에 노 전 대통령이 관여하지 않았다고는 보기 힘들다.
근거 :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곧 노전 대통령’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분신이었다”고 말했다.

확정 : 박 회장이 건넨 600만 달러 모두 노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보고 있음을 시사했다.
근거 :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기자브리핑에서 “권 여사와 건호씨는 이번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참고인”이라고 말했다. 또한 홍 기획관은 건호씨는 물론 권 여사에 대해 “범죄혐의는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 중앙일보
제목 : “노 전 대통령 글은 전형적 방어 논리” 검찰 ‘난 몰랐다’식 상투적 반론 규정
확정 : 100만 달러를 둘러싼 의혹은 박회장→정상문 전 비서관→권양숙 여사→노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구조, 500만 달러 의혹은 박회장→연철호씨→노건호씨→노 전 대통령의 흐름이다.
근거 : 그(박회장)의 진술은 이미 6명을 구속시킬 정도로 신빙성을 인정받았다.(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검찰의 아직 공식 입장은 ‘박 회장은 돈이 노 전 대통령에게로 간 것으로 알고 있다’는 정도다.)

제목 : 권 여사 참고인서 피의자로 바뀔 가능성 묻자 검찰 “…”
확정 : 검찰은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요구로 100만 달러를 정상문 전 비서관에게 보냈고, 정 전 비서관이 대통령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근거 : 검찰 관계자는 “(권양숙 여사가) 빚을 갚는 데 썼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빚을 갚았는지는 진술하지 않았다. (채무 변제를 입증하는) 영수증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4월 13일자 중앙일보 5면 기사
제목 : 검찰 ‘노건호씨가 600만 달러 실질적 수혜자’ 의심
확정 : 대검 중수부는 노건호씨가 600만 달러의 실질적인 수혜자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근거 : 유학생치고는 많은 돈을 사용했다(?)

◇ 동아일보
제목 : 500만 달러 종착역 아버지인가 아들인가, 차용증도 없고 사용처도 함구 '해명아닌 해명'
확정 : 노건호씨에 대한 검찰수사는 그의 범죄 혐의를 밝혀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즉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사실상 600만 달러에 대한 책임 소재가 노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근거 :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12일 브리핑에서 “노건호씨는 참고인 신분”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검찰의 수사와 언론보도의 노림수?

▲ 4월 13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검찰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단지 ‘검찰 관계자’라는 인용으로 언론을 통해 드러나는 것일 뿐. 그러나 검찰도 언론보도도 그 방향은 하나였다. 그것은 바로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야당에서는 일제히 이상득 의원과 한상률 전 국세청장, 천신일 회장에 대해 소환조사를 실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박연차 사건의 무마를 청탁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에게 두 차례 전화를 했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에게도 한 차례 전화를 했었다고도 고백했다. 그러나 검찰은 ‘실패한 로비’라며 규정,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소환도 해보지 않고 무엇을 보고 ‘실패’라고 규정했는지, 뭔가 석연치 않긴 하다. 그리고 박연차 사건의 세무조사와 관련돼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소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그뿐이랴. 천신일 회장이 박연차 사건과 연루돼 ‘출국금지’ 당했다는 사실은 SBS의 취재를 통해 밝혀진 것이지 결코 검찰에서 언론에 흘린 것이 아니었다. 확실히 노 전 대통령에 불리한 이야기들만 검찰에 의해서 흘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보인다.

박연차 회장이 건넨 600만 달러를 실제 노 전 대통령이 수령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것을 부정해서도 안 되며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검찰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런 식의 확정적 보도는 곤란하다. 이것은 결코 노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건이지만 같은 상황에 놓여 어쩌면 피해를 볼지도 모르는 그 ‘누구’를 위해서, 그 ‘누구’가 될지도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해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