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어느 신문 칼럼의 플롯을 원형대로 유지하며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 등을 대체해 쓴 것임을 밝힙니다. 박연차 리스트를 분석하며, 노무현의 불우하고 가난했던 과거와 부자인 현 대통령을 비교하는 상상력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내게 합니다. 낱말 몇 개를 바꿔 끼우면 이 칼럼은 최근 답보 상태에 빠진 ‘장자연 리스트’ 수사에 대한 질타가 됩니다. 일부 해당 미디어들은 고생이 많고, 칼럼 뒤집어 읽기는 여전히 차암~ 쉽습니다.

‘신문’을 제대로 아는 것은 정말 어렵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신문’ 속은 모른다고 하지만 저 ‘신문’이 정말 이런 ‘신문’이었나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삶은 늘 이런 일의 연속이다.
 
그래도 신문을 아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사주(社主)의 위기’로 신문을 보는 것이다. 위기 상황이 닥쳐보면 본모습을 그나마 좀 알 수 있다. 굳이 거래까지는 아니더라도 편집인 칼럼 따위가 어떤 뉘앙스를 띠는지 보면 된다.
 

사주나 내부 고위급 관련 소식은 무조건 배제하는 게 불문율로 돼 있는 신문동네에도 사주 관련 사건이 날 때만 되면 악다구니를 떠는 신문들이 없지 않다. 그런 급한 일이 생겼을 때, 며칠만 들여다보면 정말 최소한의 상식조차 꼭 처박는 저열한 신문들이 있다.
 
사주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신문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고, 지금은 어떻게 경영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신문이 될지 대략 보인다. 일간지도, 경제지도 예외가 없다. 인터넷 신문인들 예외겠는가.
 
불행하게도 1등 신문부터 인터넷 언론에 이르기까지 사주 본인이나 측근들 가운데 도덕적인 문제가 되지 않은 언론이 드물다. 그러나 차이도 있다.

일간지의 누군가가 연예인들로부터 부적절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일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 해당언론사는 혹독하게 사회적 대가를 치르고 있다.
 
반면, 경제지와 인터넷 언론은 부적절한 성접대 의혹이 있어도 상대적으로 ‘듣보잡’이란 이유로 외면되기 일쑤이다. 한국적 미디어 현실을 감안하면 1등 신문의 부도덕한 의혹이 불가피하게 큰 측면도 있지만, 유독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지도 않고 있다. 국민들도 경제지와 인터넷 매체와 관련해선 크게 관심두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것과 또 많이 다르지 않다. 1등 신문처럼 직접 알려지지 않고 있어서 뿐인지 몰라도 의혹이 일고 있는 부도덕 가운데 어느 인터넷 매체의 이름이 직접 들어갔다는데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물론, 법적으로 그 사실이 문제가 된다고 해도 사실 1등 신문의 부도덕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일까?
 
그렇다면 인터넷 매체의 부도덕은 법적 처벌은 차치하고라도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할 수 있을까. 대답은 전혀 아니다. 그는 최소한 1등 신문의 누군가만큼의 욕은 먹어야 한다. 왜일까.

인터넷 매체의 부도덕은 술접대가 됐든, 성접대가 됐든, 아니면 그냥 의혹이든 모두 감추고 호도하려 했다는 점에서 1등 신문보다도 죄질이 나쁘다. 1등 신문은 ‘살짝’이라고 해도 일부 사실을 인정하고는 있다. 그렇지만 이미 조사까지 받았다는 인터넷신문은 아무런 말이 없다.
 
더욱이 포르노의 힘을 운운하는가 하면 전임 대통령의 가난하고 불우했던 과거와 부자인 현 대통령을 대비하는 아부를 하니 국민들이 더 민망하다.
 
이번 사설을 보면 확실히 뭔가 치사하고 불우했던 어떤 사건이 선명하게 보인다. 포르노를 끌어들이고, 대통령에게 아부를 했지만 과거를 벗어던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이름이 끝끝내 익명으로 머물 수 있게 될 는지 말이다.
 
이런 점에서 고발전이 오가고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절반은 공개된 1등 신문에게서 그나마 안도감을 느낀다면 지나친 설레발일까. 가시밭으로 떨어진 1등 신문을 보면서 칼럼의 푸른 서슬만 자랑하지 말고 마땅히 그 마지막 길을 미리 살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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