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녀석들'도 모자라 범죄자들로 조직된 자살 특공대라니. '수어사이드(suicide)'라는 극한의 수식어가 없어도 할리 퀸(harley quinn)을 비롯하여 데드 샷(dead shot), 캡틴 부메랑(captain boomerang), 킬러 크록(killer croc), 엘 디아블로(el diablo)에 반가운(?) 조커까지, 캐릭터의 면면만으로도 <수어사이드 스쿼드(suicide squad)>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본 후 소감은 '감독님, tvN의 <나쁜 녀석들>이라도 한번 보시죠!'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 신선하고 기발한 캐릭터들을 데리고 이렇게나 뻔한 히어로물을 만들다니. 그래서 감독과 각본이 누군지 찾아보게 되는 작품이다.

캐릭터만으로도 궁금증 유발, 하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DC코믹스의 야심작이다. 그에 앞서 올 초 기대작으로 관심을 모았던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아쉬움을 남겼기에, 그 후속으로 등장한 '기괴한' 범죄자들의 집합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전작의 실패로 인한 부담까지 짊어진 채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 포인트를 제대로 짚지 못했던 패착을 되풀이하며, DC코믹스 월드의 앞날엔 먹구름이 드리워진 듯하다.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개봉 전부터 흥미를 모았던 것은 신선한 캐릭터들 때문이다. 물론 DC코믹스의 독자들이라면 익숙한 캐릭터들이겠지만 일반인들에게 범죄자들의 집합, 심지어 그들이 모인 자살 특공대란 조합은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인 구성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 이미지

마고 로비가 분한 '할리 퀸' 캐릭터를 비롯한 '비정상적인' 인물군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그 이름만으로도 존재감이 충분한 윌 스미스가 분한 데드 샷은 슈퍼맨이란 막강 파워를 가진 신인격의 인물이 아니지만 배트맨에 필적한, 하지만 배트맨에게만 그의 총알이 비껴간 영화적 설명에 따르면 4km 거리에서도 백발백중의 명사수다. 또한 정신과 의사라는 지적인 캐리어에서 조커와의 만남으로 그의 연인이자 조커보다 더 한 수 위의 '정신 착란'의 캐릭터를 선보이는, 섹시하지만 그 섹시함에 빠져 그녀에게 접근했다 숱한 남자들이 쓰러져간 할리 퀸. 거기에 마치 끝판왕처럼 주변을 모두 불바다로 만들어버리는 엘 디아블로에 악어 인간에 부메랑 사수까지 합체했는데 아쉬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 개성 강한 캐릭터들을, <수어사이드 스쿼드> 제작진은 그저 말 그대로 '개성이 강한' 히어로들로 하향 평준화시켜 버린다. 원작에서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었지만 어머니와 형이 아버지를 죽이려 하자 형을 죽이고 범죄의 길로 들어선, 혈연의 딜레마를 안고 있던 데드샷은 윌 스미스가 그의 이전 영화에서 종종 해왔던 '부성애'의 인물로 변화한다. 그리고 데드샷의 캐릭터 변화는 바로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가진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딸을 위해 극진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와, 혈연 내 피부림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원작의 데드샷이 가진 도덕적 딜레마는, 바로 평범한 히어로와 나쁜 녀석 데드샷의 갭만큼 고스란히 영화 속에서 드러난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포스터

tvN의 <나쁜 녀석들>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범죄를 처단하는, 즉 더 나쁜 녀석들을 처단하는 나쁜 녀석들이라는 기막힌 딜레마에 있다. 분명 감옥에서 몇십년을 썩어야 하거나 조만간 사형을 당해야 하는 나쁜 녀석들이지만, 그들이 '감형'이라는 이해관계를 통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도덕적 딜레마가 '선'이란 혹은 '정의'란 무엇인가 대해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 현대 사회의 딜레마를 역설적으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이 매료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개봉 전 관심을 끌었던 것은, 특수 감옥에서 특별 보호(?)를 받아야 하는 구제불능 범죄자들이 가장 이기적인 이해관계를 통해 규합되고,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향해 돌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균열 혹은 거기서 발생하는 '정의'에 대한 물음 혹은 확신들이, 제반 가치에 대한 물음표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대리만족을 줄 것이란 기대에 있었다. 물론 이런 가치 판단 이전에, 신기한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전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나쁜 녀석들'에 대한 시대적 의의를 쉽게 간과한다. 대신 나쁜 녀석들 목에 칩을 박아두고, 그들을 자살 특공대로 내모는 극한의 조건에서 안이하게 그들을 '영웅화' 시킨다. 데드샷을 딸바보 아빠로, 팜므 파탈의 매력을 뿜어내던 할리 퀸은 순애보적 사랑꾼으로 쉽게 가고자 한다. 가장 나쁜 놈들이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돌진하다 얻게 될 전우애와 인간애 속에서 빚어지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은, 시작 전부터 그들이 몹시도 인간적인 인물이라는 '설명'을 통해 이미 그 열기가 감소된 것이다. 오히려 그들보다 더 비인간적인 존재로 아만다 월이 등장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 속 그의 존재는 그저 무개념 갑질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캐릭터가 아쉬운 그들의 활약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 이미지

캐릭터에 대한 앞서 나간 진화 작전은 그렇다 치고, 최고의 사수에, 누군가의 정신을 쏙 빼놓을 듯한 매력과 능력에, 불바다에, 부메랑에, 수륙 양용의 능력치는 어땠을까? 각 캐릭터가 능력을 발휘하려면 그들의 능력이 충분히 발휘될만한 상대가 등장했어야 하는데,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첫 편(?)에서 등장한 악의 축은 안타깝게도 핀트가 엇나간다. 인간의 몸을 숙주로 하여 등장한 인챈트리스(카라 델러바인 분)의 존재감은 무시무시했지만, 캐릭터 열전으로 그들의 능력치를 관객들에게 선보여야 할 첫 편의 악으론 너무 인간 외적인 존재와 능력을 가졌다. 그 '신'적인 영역의 인챈트리스 앞에 데드샷의 총구도, 할리퀸의 도발도, 엘 디아블로의 화력도 어쩐지 무색하다. 모든 인간을 빨아들이는 인챈트리스의 신적 능력 앞에, 각 캐릭터의 능력은 매력적으로 분출되는 대신 그저 전우의 합체로 드러날 뿐이다. 거의 카메오 수준의 조커는 어떻고.

그렇다고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전혀 새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할리 퀸은 그 존재 자체로 흥미롭고, 다시 돌아온 조커는 반가웠으며, 데드 샷을 비롯한 이들 무리의 팀워크와 갈등은 여전히 궁금하다. 그럼에도, 지금과 같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선 아니다. DC코믹스의 캐릭터들은 지면을 통해 선보인 캐릭터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DC코믹스는 마블의 캐릭터들이 선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고민이 좀 더 필요한 듯 보인다.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 스틸 이미지

'아이언 맨'이 대중의 환호를 받는 이유는 그가 그저 새로운 영웅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의 영웅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슈퍼맨도 배트맨도, 그리고 아이언맨도 각자의 ‘세계관’과 새로운 '존재론'으로 대중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다. 그들은 그저 서로 다른 옷을 입은 히어로가 아니다. '선과 악'의 경계인인 고담시의 배트맨이나, 가장 부유하지만 그 부유함의 원죄를 가진, 하지만 그 해결책조차 자신의 부로 시작하는 아이언맨은 그 자체가 이 시대의 새로운 담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잽처럼 보여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캐릭터들이 개봉 전부터 대중의 기대를 받은 것은, 드라마적 완성도와 무관하게 <나쁜 녀석들>이 여전히 회자되는 현실과 맞물린다. 선과 정의가 모호한 시대, 아니 돈이 정의와 선이 되는 시대에 '나쁜 녀석들'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대중의 영웅적 설화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적 정서에 가장 평범한 히어로물로 응답한다면,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비롯한 DC코믹스의 영상월드는 그 전망을 밝게 점치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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