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씨가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하 김미화의…)에서 하차할 거라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대표이사 추인만 남은 단계라고 한다. PD들의 반발이 거세다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니, 달리 구구한 이유를 들어볼 것도 없다. PD들의 반발 행태 자체가 김미화씨를 교체하면 안 되는 이유를 곧바로 지시하고 있다. 개그우먼 라디오 진행자 한 사람의 교체 문제를 놓고 대형 방송사 PD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는 사태를 그녀의 ‘독보적 가치’ 말고 도대체 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그녀의 자화자찬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보다 더 명징하게 입증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 라디오본부 PD들이 8일 오후 5시 여의도 MBC 경영센터 10층 사장실 앞에서 김미화씨 교체를 반대하며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송선영
<김미화의…>은 MBC 전체 라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공헌 이익률 3위이고, 수백개 FM 라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절대 청취율 6위라고 한다. 이런 절대적 수치로 설명되는 프로그램을 경영상의 이유로 내린다는 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인가? 공영방송 MBC가 시청취율 지상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잘 나가는 프로그램을 희생시키는 극단적 위악을 선택하기로라도 했다면 모를까, (오프라 윈프리는 자기 프로덕션을 갖고 있어서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건 미국 방송사 경영진이 오프라 윈프리를 경영상 이유로 하차시키는 꼴이나 다름없다. 방송뉴스가 좋아하는 해외토픽 감으로 딱이다. 하지만 그런 경영진은 내부 구성원들과 시청취자들에게는 심심풀이 ‘가십거리’가 아니라 ‘재앙적 존재’다.

낮은 시청률과 광고수익에도 불구하고, MBC가 위기라는 언설을 어디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다분히 논쟁적이다. 방송산업이 몇몇 매머드급 프로그램의 부침에 따라 기상도가 확연히 갈리는 업종이라면 이번 위기는 위기랄 것도 없다. 시청률은 예능 프로그램이 좌우하는 만큼 그 부분에서 특단의 대책을 세우면 된다. 그래서 MBC 경영진의 대응은 지금의 위기를 ‘시청취율/광고수익’의 위기가 아니라 ‘정치적’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능 프로그램도 아닌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그것도 자사 브랜드 가치를 오랫동안 드높여온 프로그램에 칼을 대겠다는 태도를 무슨 수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언론인 출신 경영진의 이런 판단은 다른 모든 언론인들을 민망하게 한다.

▲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미디어스
지금 MBC가 위기라면, 위기의 첫째 원인은 경영진이다. 김미화씨가 외부 극우세력들의 터무니없는 마타도어에 시달려온 건 그들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그래봐야 이성적 논리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어느 매체의 악다구니였을 뿐이다. 그 따위 공격에 무릎꿇는 경영진이라면, 역시 그들은 MBC 전체 구성원들은 물론 시청취자들까지 욕보이는 존재들이다. ‘김미화=좌빨’이라는 언어테러의 진위를 식별할 지적 능력조차 없거나 공영방송 MBC를 이끌 최소한의 의지도 없다는 걸 고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더 크고 힘센 배후의 압력에 투항하는 것이라 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온몸으로 지켜낼 의지가 없으면 김미화씨가 아닌 경영진 자신이 지금 당장 ‘하차’하는 게 옳다.

김미화씨는 외인부대이면서도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공영방송 MBC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를 아이러니라고만 볼 수는 없다. 경영진이 진정 MBC의 미래 비전을 찾고자 한다면 김미화씨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 눈앞의 위기가 단지 몇몇 드라마의 일시적 시청률 저하 문제가 아니라면, 그리고 외부의 정치적 위협을 이겨낼 정도의 내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조직이라면, 지금 MBC에게 필요한 것은 방송과 저널리즘의 새로운 전망을 찾아내는 일이다. MBC의 위기는 근본적으로 미디어 환경 급변에 따른 기존 미디어산업의 위기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청취자의 한 사람으로서 단언컨대, <김미화의…>는 이 위기 너머의 미래에서 온 포맷이다.

▲ MBC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홈페이지 캡처
MBC가 그동안 <김미화의…>에 대해 얼마나 치밀하게 조사와 분석을 해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MBC가 눈여겨봐야 하는 건 정량적인 청취율 분석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에 높은 충성도를 보이는 인구통계학적 그룹들을 잘 살펴야 한다. 나와 내 주변의 언론인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단연 인기다. “아침 손석희, 저녁 김미화”라는 얘기는 이미 명제화됐고, 호사가들은 ‘누가 더 낫냐’를 따지는 단계로 들어선 지 오래다. 내 주변에서는 ‘김미화가 낫다’는 쪽이 조금 우세하다. 난 한발 더 나아가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김미화씨의 팬이다. 내 팬덤을 굳이 감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건 많은 언론인들이 <김미화의…>를 높이 산다는 사실이므로.

언론인들 처지에서 김미화씨의 존재는 껄끄럽고 난처해야 옳다. 그동안 저널리즘은 언론인들과 일부 지식인들만의 영역이었다. 개그우먼 김미화씨는 그 독점적 성채를 ‘침범’했으며, 어느덧 ‘평정’했다. 특히 방송 저널리즘에서 진행자는 상징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도 언론인들은 그녀를 반긴다. (물론 백안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그녀의 존재가 언론인들 사이에서 논쟁적이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현상이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김미화’에 대한 언론인들의 인정 또는 선호는 기존 저널리즘에 대한 그들의 자기성찰과 동행한다. 그리고 <김미화의…>가 거둔 성취는 저널리즘의 미래를 가리키는 몇 개의 지시등 가운데 하나다.

진행자 김미화씨와 프로그램 <김미화의…>라는 거울에 비췄을 때, 기존 언론인과 방송 저널리즘은 무표정한 사물 같다. 친절한 듯하지만 친밀하지 않고, 상냥한 듯하지만 권위적이며, 똑똑한 듯하지만 그저 번지르르하다. 이런 표정은 일방향성의 산물이다. 정보 유통이 소수 매체에 의해 독점되던 시절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정보를 전달할 때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시청취자들에게 친밀하지 않고, 권위적이며, 번지르르한 그 이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방송 바깥세상에 훨씬 친밀하면서도 살갑고 실속 찬 정보들이 차고 넘치도록 유통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고~ 잘 몰라서 여쭙겠는데요.” 의도적이었든 우연이었든, 다른 시사 프로그램에선 듣도 보도 못한 김미화씨의 코멘트는 이런 미디어 환경 변화에 완벽하게 적응한 ‘진화론적 더듬수’다.

MBC가 많은 시청취자들에게 공영방송 독립성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앞서 말한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외압이라는 외생변수가 없었다면 MBC의 우뚝한 상징성도 없었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MBC의 현실은 상징과 괴리되어 있다. 정치적 외압이 없었다면 상징성도 없는 상태에서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을 거라는 얘기다. 정리하자. MBC가 정치적 외압에 굴복해 김미화씨를 하차시킨다면 게도 잃고 구럭도 잃게 된다. 부디 꿋꿋이 버티면서 <김미화의…>의 성취를 모델삼아 치열하게 미래의 방송 포맷과 문법을 연구하라. 제발, WBC 경기 결과나 북한 로켓 발사 소식으로 도배한 뒤 앵커 클로징 코멘트 하나로 <뉴스 데스크>의 공영성 전체를 감당하려는 낡은 관성부터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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