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지배권력층의 내밀한 비리 관련 내용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2005년 ‘삼성 X파일’과 2009년 ‘장자연 리스트’는 닮은꼴이다. “X파일에 등장한 이들은 모두 무혐의이고, 이를 보도한 언론사 기자와 편집장만 죄”라는 2005년 당시 검찰 수사의 허무한 결론은 2009년 장자연 사건에서도 재현될 것인가? 삼성 X파일 사건과 지금까지 전개돼온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비교해 공통점을 분석해봤다.

삼성 X파일 사건은 2005년, MBC 이상호 기자가 안기부의 도청내용을 담은 테이프를 입수해 삼성그룹과 정치권 및 검찰사이의 커넥션을 폭로한 사건이다. 97년 대선 당시 삼성측의 전방위 로비실태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테이프는 삼성그룹과 중앙일보,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대선후보, 검찰 고위직의 커넥션이 드러나 있어 사회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수사는 깃털만 날린 채 종료됐다.

▲ 언론소비자주권캠페인은 3월31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조선일보사 앞에서 ‘고 장자연씨 사망사건, 왜곡 축소보도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조선일보는 장자연 리스트를 보도하라”고 촉구했다. ⓒ곽상아
◇조선일보 X파일 ‘특종’ VS 장자연 보도에선 “무차별 루머 뿌리 뽑자”?

2005년 당시 X파일 1보를 내보낸 곳은 조선일보였다. 가장 먼저 X파일을 입수한 MBC가 보도 전 검찰과 법조계 등에 법적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많이 공개돼 당시 언론계에서는 “빨리 X파일 내용을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조선일보는 7월21일자 1면 톱기사 <안기부, YS정부때 비밀조직 운영 政·財·言 인사들 대화 不法도청>, 3면 <극비조직 ‘미림’…식사·술자리 무차별 도청공작> <MBC가 입수한 테이프 내용은>에서 김영삼 정부 당시 안기부가 도청 비밀 조직인 ‘미림팀’을 운영해 정.재.언론계 인사들을 불법 도청했고, MBC 이상호 기자가 확보한 테이프도 이 팀의 작품이라고 보도했다. 사설에서는 “이제 온 국민이 테이프의 존재를 알게 됐고, 테이프 속에 담긴 내용의 불법성까지 드러난 상황에서 이 문제는 덮는다고 묻혀질 리가 없다. 도청 문제는 도청 문제대로, 또 도청 테이프 속의 대화 내용은 그것대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7월 22일자 사설 ‘불법 도청과 불법적 대선자금 지원논의’)

이 기사를 특종보도한 조선일보 이진동 기자는 “정권차원의 도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것으로 MBC가 취재하고도 보도하지 못한 것을 첫 보도함으로써 X파일 보도의 촉매제 역할과 불법도청 문제를 공론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제37회 한국기자상 취재보도부문을 수상했다.

▲ 2005년 7월21일자 조선일보 기사.
2005년 1월 가장 먼저 X파일을 입수했던 MBC는 사회비리 고발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는 법률적 제약 사이에서 고민을 하며 방송을 유보하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나간 당일 저녁 <뉴스데스크>에서 당사자의 실명과 육성을 공개하지 않는 범위에 한해 X파일 보도를 시작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녹음 당시 중앙일보 사장) 등이 포함된 중앙일보는 처음부터 아예 보도를 하지 않았으며, 이후에는 ‘불법도청’에 초점을 맞추며 본질을 흐렸다. 테이프 조작 가능성을 제기하거나 유출 음모론을 부추기는 식이었다. 반면 X파일이 드러난 이후 한겨레 등은 테이프 공개를 주장했다.

4년이 흘렀다. 2009년 가장 먼저 장자연 문건의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고 나선 곳은 KBS다. KBS는 3월 13일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고, 이에 따라 언론들의 ‘장자연 문건’ 보도가 시작됐다.

조선일보 역시 3월 18일자 사설 <경찰, ‘장자연 문건’ 수사 속도 내라>에서 장자연 문건을 둘러싸고 시중에 루머가 확산되는 것에 대해 “경찰은 무엇보다 ‘장자연 문건’의 진위와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져 어떻게 퍼져나가게 된 것인지를 규명해야 한다”면서 “유씨와 김씨를 빨리 불러 대질심문을 해보면 이 사건의 윤곽은 드러나게 돼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문건에 올라 있는 인물의 소환조사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한발 빼는 모습이었다. 이후 조선일보는 ‘인터넷의 무차별 루머 재생산 이젠 뿌리 뽑아야’ ‘괴소문 키우는 답답한 수사’와 같은 기사를 내보내며 줄기차게 물타기를 시도했다.

◇말바꾸는 조선일보 VS ‘○○’으로 처리하는 언론들

그러나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조선일보의 이같은 보도 태도는 자신들이 특종보도한 삼성 X파일 보도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다. 조선일보는 특종후 얼마 지나지 않은 8월9일자 사설 ‘도청규명 위해 권력이 할 일과 해선 안될 일’에서 “여당이 특별법을 제정해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는 위헌 행위를 하거나, 이를 방치하는 것은 헌법 모독과 다를 바가 없다”며 테이프 공개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돌연 바뀌었다. 11월 30일자 사설 ‘여, 도청 테이프 공개에 앞서 위헌문제부터 풀라’에서는 “도청 테이프 공개 여부를 풀어가는 첫 순서는 도청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지를 가리는 일이다. 만일 공개가 위헌적이라면 이 문제를 둘러싼 여야 대화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외면했다. 이같은 변신(?)의 배경에는 X파일 내용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대화내용도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리스트에 대한 거부반응에 있어서 지금은 그 강도가 4년 전보다 한층 세다. 조선일보는 장자연 리스트 보도를 촉구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 등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X파일 사건 당시에는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X파일 공동대책원회’가 검찰의 수사 결과를 비판하며 특검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나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국민들의 상식에 반하는 결정이며,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반박하는 월간조선의 성명도 보도했다.

2009년 4월 6일,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는 언론사의 실명과 언론사 대표 성씨를 공개했으나 방송3사 가운데는 MBC만 살짝 이를 언급했다. 특히 4년 전 조선일보와 비슷하게, 문건 내용을 가장 먼저 공개하고 나섰던 KBS는 이 의원의 발언 사실 자체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 급변신을 선보였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일보 ○사장으로 처리했다.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프레시안 등은 해당 언론사의 실명을 공개했다. 국회기자실에 “본사 최고 경영자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조선일보는 지면에서 침묵했다.

◇“보도한 이들만 죄” VS 장자연 사건도 유장호 구속으로 마무리?

조선일보의 보도로 시작된 X파일 정국은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이 2005년 12월 삼성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홍석현 전 중앙일보 사장 등 관련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하며 막을 내렸다. 총 143일간의 수사에서 사실상 아무것도 밝히지 않은 것이다. X파일 내용을 보도한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과 MBC 이상호 기자에 대해서는 “불법도청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내용을 보도한 행위는 실정법 위반”이라며 불구속 기소했다.

유족으로부터 ‘사자 명예훼손’의 혐의로 고소당한 장자연 전 매니저 유장호씨에 대해 경찰은 일반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리스트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들에 대해서는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경찰은 ‘연예인 성착취’의 본질을 밝히지 않고 매니저 유씨 처벌로만 사건을 매듭지으려는 것 아니냐는 눈초리를 받고 있다.

원민경 민변 여성인권위원장은 “유족들은 피해사실(장자연 리스트)이 보도됨으로써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며 위자료 청구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장자연 리스트가 가짜로 밝혀지지 않는 한 죽은 자에 대한 명예훼손죄는 성립될 수 없다. 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겠으나 유씨가 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잘못된 법 적용”이라며 “리스트에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경찰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유씨를 구속까지 시켜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영장을 청구하더라도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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