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돈을 받았다며 ‘사과합니다’라고 올린 글 하나로 떠들썩한 오늘이다.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자기고백은 박연차 리스트의 대단한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위력의 정도와 비례해, 도덕성을 강조해온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파장이 컸던 만큼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은 노 전 대통령 사과문의 의미를 파헤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이는 검찰 수사를 통해서 새롭게 밝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더 상세한 이야기는 검찰의 조사에 응하여 진술할 것”이라는 일방향적 사과문이 가지는 정보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언론매체에서는 ‘왜’라는 꼬리표를 붙여가는 방식의 예측 보도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 4월 8일자 조선일보 4면기사
이번 사건의 핵심은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씨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을 ‘언제’ 알았냐는 것과 그 돈의 ‘대가성’ 여부로 좁혀진다. 이 중 주요 일간지들이 주목한 부분은 단연 “노 전 대통령이 ‘언제’ 알게 됐는가”라는 추정보도으로 압축됐다.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과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 의해서 밝혀진 것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정씨가 받은 돈이 권씨에게 들어갔으며, 노 전 대통령은 최근에서야 이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다. 물론 곧이곧대로 기사를 쓸 수는 없다. 당사자들의 벌언이 진실인지에 대해서 따져보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추정보도라고 하지만 연결성 없고 근거 없는 이런 식의 기사들을 곤란하다.

조선과 동아, 노 전 대통령과 권 여사는 ‘상식’적으로 배우자라는 ‘특수한 관계’인데….

조선일보는 법조계 인사의 말은 인용해 “부부 사이인 권 여사와는 법률적으로는 독립적인 관계이지만, 사실상 ‘특수한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사전에 알았다면 부하인 정씨를 통해 ‘빚 갚을 돈’을 받아오라고 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도 “상식적으로 배우자의 돈거래 관계를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예단했다. 친구 사이인 정 전 비서관이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따로 보고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논리다.

조선과 동아의 논리는 같다. 부부끼리 모르는 게 어딨냐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조선·동아가 종합부동산세가 위헌이라며 ‘세대별 합산규정’에 대해 문제 삼았던 것과 정 반대로 모순되니 이를 어쩔까?

이들 신문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이 기사들을 보라.

▲ 2008년 11월 14일 동아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지난해 11월 14일 사설에서 “헌재 결정에 따라 세대별 합산규정은 이날부터 효력을 상실했다”며 “이로써 노무현 정부가 박아놓은 대표적 ‘부동산 대못’인 종부세는 일대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썼다. 또한 “당장 ‘합산규정’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헌재는 종부세의 부부합산 과세에 대해선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혼인 부부를 일반인에 비해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종전 판례를 유지한 것으로, 노무현 정권의 입법이 마구잡이였음을 재확인해준다”고 역설했다.

결국 종부세 위헌 결정에 대해 이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금전에 있어서는 ‘부부’가 아닌 ‘개인’별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주장하던 조선과 동아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 ‘부부’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금전 관계를 알 수밖에 없을 것이란다. 특히 조선일보는 법률적으로는 독립적 관계라고 이야기하면서도 ‘특수한 관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이 어찌 우습지 아니한가.

중앙일보, 권 여사는 박 회장 이외에도 돈을 많이 받았다는 소문 있다?

중앙일보는 “노 전 대통령 ‘갚지 못한 빚’ 뭘까”기사에서 여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권 여사가 박 회장 외에도 돈을 많이 받았다는 소문도 있다”며 “실제로는 빚이란 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여권관계자’라는 뚜렷한 출처도 불명확한 말을 그대로 인용한 중앙일보.

▲ 4월 8일 중앙일보 4면 기사
최근 중앙일보는 <PD수첩>에서 인간광우병(vCJD)으로 의심했던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이 위 절제 수술 후유증인 ‘베르니케 뇌병변’이라고 밝혀졌다며 <PD수첩>의 제작진들이 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의적으로 이 사실을 숨겼을 가능성을 추정해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PD수첩>이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을 취재할 당시 현지 의학계에서는 위 절제 수술에 의한 후유증 가능성은 이미 배제하고 CJD를 의심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또한 그동안 인간광우병 사례를 통해 얻은 결과로 봤을 때 아레사 빈슨의 나이와 가족력을 바탕으로 CJD의 한 종류인 vCJD인 ‘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PD수첩>은 아레사 빈슨의 사망원인을 인간광우병(vCJD)로 의심했던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 PD수첩 취재당시 빈슨 사망원인은 ‘CJD’)

<PD수첩>의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한 보도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중앙일보에서 등장한 여권 관계자의 말. 그것은 <PD수첩>에 비하면 ‘빈약’한 정도가 아니라 근거 ‘없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집’의 돈 수수는 명명백백하게 진실이 밝혀져 사법적으로 일벌백계되고 도덕적 단죄로까지 이어져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 사태를 추정 보도하는 언론에게도 최소한의 일관성과 저널리즘의 기본은 요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판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자칫 이전투구로 전락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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