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올아이피’(All-IP) 시대가 활짝 열리는 모양이다. 최근 지상파방송의 초고화질(UHD) 방송 표준이 인터넷 프로토콜(IP) 기반으로 설정된 것이다. 이제 위성방송만이 올아이피의 예외지역일 것처럼 보인다. IP 기반으로 지상파방송의 초고화질 방송표준이 설정된 것에 대한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콘텐츠 암호화를 비롯한 각종 쟁점에 대한 소개도 이어지고 있다. UHD 텔레비전을 구입하면, 별도로 유료방송에 가입하지 않아도 VO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으니 이른바 지상파방송의 ‘무료 보편적 서비스’ 기능이 확장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아이피 기반의 지상파방송의 초고화질 방송 서비스는 내년 2월 수도권부터 단계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지금보다는 최소 4배 이상의 선명한 화질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시청자(또는 이용자)에게 가장 큰 이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빼곤 지상파방송이 올아이피에 포함된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지, 정책적으로 갖는 함의는 무엇인지, 특히 공영방송에 대해 갖는 함의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조차 되지 않는 듯하다. 서비스 도입에 앞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고 서비스 도입에 선행 또는 병행해 필요한 제도들을 고치는 과정이 있어야 하지만,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SBS 홈페이지 캡처

지상파의 무선 IPTV화라는 맥락에서 바라봐야

논의를 시작하고 평가하는 잣대를 어디서 잡아볼까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IP 기반의 지상파방송 송수신은 결국 지상파방송이 ‘무선 IPTV’화 한다는 말과 같은 얘기가 아닌가 하는 데 이르게 된다. 기존 IPTV와는, 무선 IPTV라는 점에서 가장 크게 차이가 날 뿐이다. 기존 IPTV의 경우 초고속인터넷에 기반한 유선의 특성을 지닌 반면, 지상파의 아이피 기반화는 사실상 무선 IPTV의 전면 도입과 마찬가지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무선 IPTV의 형태는 스마트폰에서 ‘모바일 TV’라고 불리던 ‘티빙’이니 ‘푹’이니 하는 것들이었는데, 전면적인 탈 스마트폰의 형태를 띤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지상파 무선 IPTV는 기존 IPTV 사업자들이 구현한 폐쇄형 IPTV와는 상당히 다른 구조와 특성을 지닌다는 점이다. 페쇄형 IPTV는 ‘가입자’라는 특정한 다수를 향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정된 ‘멀티캐스팅’(!1 대 N)인 반면, 지상파 무선 IPTV는 지상파의 역사적 특성상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브로드캐스팅’을 본질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상파 무선 IPTV의 딜레마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브로드캐스팅의 특성을 살리려면, 시청자나 이용자에 대한 실시간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할 때 콘텐츠를 암호화한 상태로 송출 또는 송신해서는 곤란하다. 단말기를 지니고 있다면 그것이 누구든 시청자나 이용자는 이를 수신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콘텐츠에 대한 사전 암호화란 결국 별도의 가입절차를 통해 폐쇄형 IPTV를 구성할 때나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청자와 이용자에 대한 콘텐츠 암호화는 불필요

콘텐츠 사전 암호화와 해독 문제에 대해 미래창조과확부는 지상파와 유료방송 사업자끼리 협의할 문제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무원칙한 태도이다. 오히려 콘텐츠 암호화와 해독은 지상파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에 필요하다. 기존 IPTV 사업자끼리 콘텐츠의 사전 암호화 없이 콘텐츠를 거래하는지 뒤집어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자명해진다. 오히려, 지상파 무선 IPTV는 시청자나 이용자에 대해선 사전 콘텐츠의 암호화없이 송출하고 송신하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지상파방송 역시 시청자나 이용자에 대해서까지 콘텐츠 암호화를 적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대신에 해독은 새로운 UHD 텔레비전 단말기나 유럽식 UHD에 달아야 하는 셋톱박스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정말로 웃지 못 할 풍경이다. 이런 주장은 당장 철회하여야 한다. 안테나 내장 문제에 온 힘을 쏟아도 시원찮을 판에 원칙에도 한참 벗어나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연결하여, 지상파 무선 IPTV는 시청자나 이용자에게는 개방형 IPTV의 속성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BS IPTV를 본다고 해서 MBC IPTV를 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지상파방송들은 별도의 인터넷망을 통해 제공해 오던 ‘푹’과 같은 다채널 서비스와 VOD 서비스를 시청자와 이용자에게 손쉽게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다채널 서비스를 무선 IPTV화를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지상파 무선 IPTV의 다채널화에 대해, 미래창조과학부나 방통위는 별도의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를 꺼내고 있고, 기존의 다채널 서비스는 법 개정을 통해 EBS에 국한하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문제는 지상파의 무선 IPTV화가 불러올 수 있는 파장과 영향을 제도화시키는 원칙을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공영방송과 다른 지상파방송에 다른 원칙 적용하는 논의의 시급성

가장 먼저, 지상파 공영방송과 그렇지 않은 지상파방송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원칙과 그렇지 않은 원칙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구분 없이 모든 지상파방송의 무선 IPTV를 허용할 것이냐, 아니면 달리 적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공영방송의 위상과 역할을 강화시켜 주는 게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공영방송으로부터 망을 분리하고, 모든 플랫폼에 공영방송의 콘텐츠를 의무송신하게 하는 원칙을 세우는 게 시급해 보인다. 공영방송을, 지상파의 무선 IPTV화 속에서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당히 불필요한 논쟁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긴밀하게 연결지어 EBS만이 아닌 KBS까지 공영방송은 다른 지상파방송의 무선 IPtV화와 무관하게 다채널 서비스 플랫폼과 VOD 서비스의 구축, 수신료에 기반한 콘텐츠 유통의 원칙 등의 논의를 진행하는 게 매우 시급하다고 본다.

다른 지상파방송의 경우, 무선 IPTV화하는 상황에서 현재 사용하는 주파수에 대해 지금처럼 심사할당으로 계속 갈 것인지, 대가할당으로 갈 것인지 주파수 배정방식을 선택하도록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심사할당으로 갈 경우에도 전파 사용료를 일부 부담하게 하든가, 대가할당으로 갈 경우 주파수에 대핸 배타적 이용권을 부여하여 무선 IPTV화에 맞춰 도입하게 될 다채널 서비스나 VOD 서비스의 구성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 속에서 기존 ‘푹’에서 하던 서비스를 어떻게 할지, 기존의 지상파DMB를 어떻게 할지는 자신들의 선택에 맡기면 된다는 것이다.

지상파의 무선 IPTV화가 우리나라의 방송 제도에서 공영방송, 무료방송, 유료방송이라는 세 가지 범주를 풍부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의 방송법과 제도에는 유료방송이라는 개념만 있을 뿐 앞의 두 범주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정의가 없다. 그래서 이미 시효만료가 된 지 오래임에도 지상파는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는 말이 부끄럽지도 않게 남용되고, 차별화한 의무는 하나도 지지 않으면서 공영방송임을 내세우는 뻔뻔스러움이 개선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있는 실정이다. 변화가 필요하다면, 지상파의 IPTV화 맥락 속에서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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