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남들은 멀리 바다로 계곡으로 떠나는 여름휴가를 이주노조를 비롯한 여러 연대단위 활동가들은 뜨거운 이주노조 합법화 쟁취 농성장에서 함께 보내야만 했다. 그때 당시 학교 선후배들과 여름 휴가 때 강원도 펜션으로 놀러가려고 몇 달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여행을 끝끝내 가지 못했던 일은 아직도 가슴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한 달간의 농성이 끝나고 함께 고생한 조합원들과 때늦은 9월에 가까운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워크숍을 떠났지만 이미 바다에 들어가기에 날씨가 쌀쌀해서 발도 제대로 못 담근 것 역시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2016년 올해에는 ‘반드시 뜨거운 여름 바다로 가리라!’라는 마음으로 지난 몇 해간 강원도 동해로 떠나던 이주노조 일정을 과감히 변경하여, 충남 대천 해수욕장으로 1박2일간의 여름캠프를 다녀왔다. 여름캠프를 마치고 집에 막 돌아온 지금, 45명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떠난 여름캠프의 생생한 후기를 바로 남기고자 한다.

보통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7말8초는 황금 여름연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직업의 특성상 여름휴가를 다녀오기 힘든 경우도 있겠지만 이주노동자들도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짧게는 3일에서 5일정도의 여름휴가를 다녀온다. 연차휴가나 명절휴가 등이 자유롭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이 짧은 여름휴가는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한 번에 날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다. 특히 바다가 없는 내륙지방(네팔, 몽골 등…….)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에게 여름휴가엔 무조건 바다를 보러가야 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다.

금요일 밤샘근무를 마치고 첫차를 타고 올라온 노동자, 여자 친구와 함께 바다를 보러가는 노동자, 얼마 남지 않은 한국생활 마지막 휴가를 떠나온 노동자들 각자의 사연을 안고 토요일 아침 버스가 출발했다. 달리고 달려 오후 3시에 대천 해수욕장에 도착하자마자 펜션에 짐을 푼 이주노동자들은 바다 속으로 풍덩 빠져들기 시작했다. 바다를 처음 본 네팔노동자들은 거금 만원을 들여서 튜브를 빌리기도 했는데 아이처럼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무척이나 즐거워보였다. 모래찜질, 물놀이, 잠수놀이, 바나나보트, 비치발리볼까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이주노동자들은 3시간 동안 대천 해수욕장을 뛰어놀았다.

그렇게 몸과 마음까지 뜨거운 여름에 쏟아 부은 이주노동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엠티의 묘미! 삽겹살과 오리고기 바비큐였다. 각 나라마다 종교에 따라 먹을 수 있는 고기가 다르기 때문에 테이블을 둘로 나누어 삽겹살과 오리고기를 굽기 시작하는데 한국에서 태어나 가톨릭을 모태신앙으로 가지고 있던 본인은 두 테이블을 오고 가며 자유롭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8월에 열릴 고용허가제 폐지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 집회 참가와 이주노조 활동에 대한 짧은 교육을 진행한 뒤 곧바로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자연스레 나라별로 한 방씩을 잡고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의 정치상황을 두고 뜨거운 논쟁을 펼쳤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술을 한 잔 걸치고 본인의 정치적 성향, 지지정당, 주변 국가와의 관계 등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격한 토론은 새벽이 지나도록 끝날 줄을 몰랐다. 네팔 이주노동자들은 늦은 밤 삼삼오오 바다로 나가서 맥주를 한 잔 하거나 산책을 하며 야경을 즐기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누군가의 모닝콜이 울렸고 (짐작으로 아마 공장에서 일할 때 새벽 6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밤늦게 잠든 것이 무색하게 이주노동자들은 바다로 다시 나가 새벽수영을 즐기기도 했다. 11시에 펜션을 비워야 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다함께 네팔 노래를 부르면서 유대감을 확인하는 시간도 있었다.

서울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으며 옆에 앉아있는 조합원에게 여름캠프의 소감을 물어봤다. 이제 4개월 뒤에는 네팔로 돌아가는 노동자는 마지막 추억으로 여름바다에 다녀올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네팔에서 미디어활동을 배워서 다시 한국에 오면 이주노조 여름캠프의 영상을 찍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다음번에 강원도 속초로 가고 싶다는 희망과 함께 꼭 친구와 함께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짧은 1박 2일간의 여름캠프였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이번 글의 추천 곡은 1997년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UP의 “바다”다. 2016년 여름 허각과 정은지의 목소리로 리메이크된 노래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3년이 되어가지만 외국어를 못해서 무조건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가 반드시 합법화되서 한국에서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튼튼한 조직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개인적으로 몸무게가 계속 늘어서 movement(운동)가 아닌 exercise(운동)를 심각히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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