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지난 6일 오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되고 있는 언론사 실명과 언론사 대표 성씨를 공개한 것과 관련한 언론의 보도 태도가 갈리고 있다. 특히, 이에 대해 보도자료를 통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선 <조선일보>는 정작 지면에서 침묵했고, MBC를 제외한 KBS와 SBS는 아예 이 의원 발언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 의원 발언을 전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경향신문> <한겨레>를 포함한 많은 언론은 이 의원이 언급한 언론사를 <○○일보> ‘○사장’으로 처리, 이 의원 발언을 전하며 ‘해당 언론사’의 해명을 함께 보도했다. (이종걸 의원 덕분에 ‘해당 언론사’는 유행어가 됐다.)

반면,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프레시안> 등은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보도하거나 실명을 적시, 혹은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보도하는 것은 중대한 명예훼손죄에 해당되므로, 관련 법규에 따라 보도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조선일보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해당 언론사의 실명을 공개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KBS, SBS는 아예 이 의원의 발언조차 전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주목할 만한 부분은 <조선일보>의 보도 태도이다. ‘본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엄중한 법적 조치’를 운운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인 조선일보는 정작 7일치 지면에서는 “장자연씨 전 매니저인 유장호씨 재소환”이라는 경찰의 발표만을 보도했을 뿐 이 의원이 공개한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이 의원의 발언 직후 이 의원실에 사과를 요구하는 공개 문건을 보내는가 하면 자사 기자들이 국회 기자실에 해명자료를 뿌리는 등 적극적 행동을 취한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 조선일보 4월7일치 10면(사회)
조선일보는 지난 6일 이종걸 의원의 발언 직후, 경영기획실장 명의로 ‘국회내 명예훼손 행위 관련’이라는 공문을 이 의원실로 보내 “면책특권을 가진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국회 내에서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을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발언하는 것은 면책특권의 남용”이라며 “이로 인하여 특정인의 명예에 중대한 손상을 가하는 행위는 명백히 민형사상 위법한 행위”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또 ‘보도에 참고 바랍니다’란 제목의 문건을 자사 기자를 통해 국회 기자실에 배포하는 부지런함을 보이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문건에서 “본사 최고경영자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향후 본건과 관련, 본사와 임직원의 명예를 손상하는 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본사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엄중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13일 장자연씨가 숨지기 직전에 남긴 자필 문건을 단독 입수해 처음 보도한 KBS도 결정적 순간에 침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문건을 공개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KBS는 정작 구체적인 언론사 이름이 드러나자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KBS는 6일 <뉴스9> “‘장자연 사건’ 피의자 3명 왜 소환 안하나”에서 “경찰이 전면 재수사한 지 20일이 넘었지만 유독 3명에 대해서는 소환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문제의 3명에는 장자연씨 친필 문건에 거론된 신문사 대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경찰의 미온적 수사 태도를 지적하는데 그쳤다.

SBS <8뉴스>도 “‘장자연 술접대’ 인터넷 언론사 대표 우선 소환”에서 경찰의 수사 상황을 전하며 “장씨가 숨진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의혹이 오히려 증폭되면서 경찰이 유력 인사 수사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경찰 태도만을 언급했을 뿐 이 의원 발언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 4월7일MBC <뉴스데스크> “‘장자연 술접대 강요혐의’ 수사대상 9명 중 6명 조사”화면 캡처.
반면 MBC는 “‘장자연 술접대 강요혐의’ 수사대상 9명 중 6명 조사” 앵커멘트에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국회에서 유력 언론사 대표 이름을 처음으로 거론했다”고 언급한 뒤, 본문에서 “국회에서는 이 의원이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유력언론사 대표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수사상황을 질문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고 전했다.

MBC의 이같은 보도는 KBS, SBS보다는 한 단계 나아간 보도일 수 있다. 하지만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언론의 선정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리스트’에 담긴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에서는 방송3사 모두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 의원의 발언을 전하지 않았다는 것만을 두고 언론이 ‘진실 추구’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은 장자연씨가 숨진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제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경찰의 수사 태도를 지적하는 것, 그 이상을 보도하려 얼마만큼 노력했을까? 많은 언론이 경찰의 수사 태도를 지적했지만 정작 ‘리스트’에 담긴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는 노력은 부족했다.

<오마이뉴스> <민중의소리> <프레시안>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들이 ‘장자연 리스트’에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이종걸 의원의 발언이 담긴 대정부질문 동영상이 국회영상회의록 시스템을 통해 모두 공개되는 등 <○○일보> ‘○사장’이 누구인지 정도는 알려졌다.

▲ 한겨레 4월7일치 23면(오피니언).
한겨레가 7일치 사설 “‘장자연 리스트’에 있다는 유력 언론사 대표”를 통해 “그동안 귀엣말로만 오가던 얘기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힘입어 비로소 직함과 성씨로 거론된 것”이라며 “ 실명이 다 나온 것은 아니지만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7일, “경찰이 이번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한 의혹과 논란을 채 해결하지 못한 채 수사를 마무리하려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진실’을 외면한 채 제자리 수사에 머물고 있는 경찰과, 이러한 경찰의 태도만을 지적하며 스스로 보도의 한계를 긋고 있는 언론이 똑같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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