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래는 여전히 불리고 들리고 있다. '꿈속에선 언제나'로 데뷔를 한 뒤 '키 작은 하늘'로 장혜진이란 이름을 크게 알렸다. '내게로'로 여전한 인기를 이어갔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가치가 올라가고 있는 듯한 스테디셀러 '1994년 어느 늦은 밤'을 남겼다. 그의 곁에는 서영진, 유정연, 윤상, 김현철, 손무현, 김동률 같은 좋은 음악동료들이 있었고, 그에겐 이들의 음악을 소화할 만한 재능이 있었다. 가창력이란 무기를 앞세워 발라드 디바로서 무난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다. '90년대가 저물며 장혜진이란 이름도 서서히 잊혀갔다. 계속해서 정규 앨범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전과 같지 않았고, 십대와 아이돌 위주로 재편되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과거 디바의 이미지를 가지고 <나는 가수다> 같은 '가창력 뽐내기 대회'에 출연해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야 했고, 드라마 음악의 주제가 정도를 부를 수 있을 뿐이었다.

보통의 이런 경우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점점 힘을 잃기 마련이다. 지금 장혜진과 동년배 정도 되는 가수들을 생각해보자. 갑작스레 트로트로 노선변경을 하거나 행사용 가수로 머무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혜진의 최근 작업인 <Ordinary>는 확실히 인상적이다. 딥플로우(Deepflow), 티케이(TK), 서사무엘, 버벌 진트(Verbal Jint), 제리케이(Jerry,K), 넉살, 앤덥(Andup), 김박첼라 등 장혜진의 이력과 한참은 동떨어진 곳에서 활동하던 흑인음악 동네의 음악가들이 <Ordinary>에 동참했다. 발라드 디바가 선택한 힙합, 파격이라 부를 만하다.

물론 이런 변화가 처음은 아니다. 일찍이 한국에 흑인음악을 전파했던 김홍순의 주도 아래 장혜진은 네 번째 앨범 <Temptation>(1996)에서 업템포의 음악으로 변신을 꾀한 적이 있었다. <Ordinary>는 더 적극적이다. 아예 흑인음악 에이전시인 스톤쉽과 손을 잡고 지금 현역으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들과 협업했다. 곡 작업 자체를 사이코반(Psycoban), 이치원(EachONE), 콕재즈(Coke Jazz), 티케이, 김박첼라 같은 흑인음악 프로듀서들에게 맡겼다.

단순히 시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멋진 변신과 함께 음악까지도 양질이다. 음반의 첫 곡 '말해'는 장혜진의 음악이력에서 진한 색으로 표기해야 할 노래다. 두툼한 비트와 함께하는 어반 스타일의 변화뿐 아니라 메시지의 파격 역시도 이를 뒷받침한다. 지금 장혜진의 연령대에서 장혜진만이 할 수 있는 직설적인 가사가 여전히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변화를 알린다. 그 뒤를 이어 서사무엘이, 딥플로우가, 버벌 진트가 변화를 함께 이끌어간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이것이 음악가 스스로의 능동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그는 작년부터 힙합 음악가들과의 작업을 공개해왔고, 이걸 <Ordinary>라는 모음집 형태로 발표했다. 이제 쉰이라는 나이를 바라보는 가수가 새로운 음악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실행하는 게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 동년배의 가수들은 지금 행사를 위한 노래만을 부르고 있는 게 일반적인 현실이다. 장혜진 역시 '키 작은 하늘'과 '내게로'만 가지고도 아쉽지 않게 행사를 돌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혜진은 다른 선택을 하였고, <Temptation> 이후 20년 만에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디스코그래피가 음악가의 인생을 말하는 거라면 장혜진은 이대로 사그라지는 것을 택하지 않았다. 이렇게 또 한 번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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