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리스트가 춘삼월 여의도를 얼어붙게 하고, 장자연 리스트는 연예계가 아닌 신문·방송계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른바 ‘리스트 정국’이란 시간의 단면을 포착한 삽화 같지만, 서사적 맥락 위에 놓고 보아야 제대로 읽히는 내러티브다. ‘리스트’는 땅속에서 부글거리는 마그마 같은 것이다. 압력이 임계점을 넘으면 지각을 뚫고 용출한다. 리스트의 내용도 ‘있을 법한 개연성’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것일 따름이다. 땅밑에 언제나 마그마가 끓고 있는 것처럼.

▲ 3월 23일자 중앙일보 5면.
모든 리스트에는 확연한 공통점이 있다. 등장인물이 정·관·재·언론계 따위 힘깨나 쓴다는 직업군을 벗어나는 법이 없고, 거의 다 남성이라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뉴욕 최대 성매매 조직을 운영했던 크리스티 데이비스의 고객 리스트도 상류층 남성 일색이었다. 내용도 주어와 동사만 바꿔 끼우면 몇 가지 포맷 안에서 되풀이된다. 그런데도 대중들이 매번 놀라는 건 예측대로 화산이 폭발해도 놀라는 행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리스트는 ‘풍문’과 ‘확정된 사실’ 사이에 위치한다. 물질상태로 비유하면 풍문은 기체다. (안개처럼 떠다닌다고 하지 않던가.) 확정된 사실은 고체가 될 것이다. 그럼 리스트는 액체일까? 글쎄다. 리스트를 액체로 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건 고체의 속성이 없지 않아서다. 액체와 고체 사이 ‘젤’ 정도가 아닐까. (풍문과 리스트 사이에도 찌라시라는 모호한 존재가 있는데, 풍문들을 포착해 정보화했다는 점에서 기체와 액체 사이 ‘플라즈마’가 어울린다.)

리스트 안에 고체성이 섞여 있는 건 그 명단과 내용이 직접 당사자인 한 사람에 의해 작성돼 정보의 직접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손을 덜 타 사실의 개연성도 그만큼 크다. 그리고 그 젤 상태에서 언론과 수사당국이 개입한다. 박연차 리스트는 수사당국이 앞에 있고, 장자연 리스트는 언론이 앞에 있다. 그러면서 이들 둘은 리스트를 고체 상태로 굳히는 경화제(硬化劑) 구실을 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리스트는 결정적으로 손을 탄다.

수사당국은 명단이 없다고 우기기 일쑤고, 명단 안에서도 사실을 확정할 대상을 선별한다. 선별기준은 상류층 내부의 권력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야당 탄압”이라는 낯익은 주장을 떠올려보라.) 언론은 리스트를 매우 선호한다. 잘 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언론이, 매번 그러는 건 아니다. 장자연 리스트 보도에서 한 언론만 ‘유력 일간지 대표’라는 표현을 한사코 쓰지 않고 있다. 리스트 안의 어떤 이름이 이 언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풍문이 파다하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1535호 ‘미디어 바로보기’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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