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LG트윈스 소속 박현준, 김성현의 승부조작 사실이 드러난 지 꼭 4년만이다. 전도유망한 프로야구선수들이 또 다시 승부를 조작했다. NC다이노스 투수 이태양, 기아타이거즈 유창식은 고의로 볼넷을 내주고 빈볼을 던지는 식으로 관중, 구단, 시청자를 속였다. 검찰은 또한 승부조작 설계자로 넥센히어로즈 문우람(현 상무 소속)을 지목했다. 이들은 그렇게 해서 회당 수백만 원 이상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승부조작은 범죄다. 적발되면 선수생명은 끝이 난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전문체육에 해당하는 운동경기의 선수·감독·코치·심판 및 경기단체의 임직원”이 “운동경기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는 것을 강하게 규제한다. 벌칙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이 규제는 2012년 승부조작 사건 이후 생겼다. 사법기관이 유죄를 확정하면 구단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문제 선수들을 영구제명하고 내쫓을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문화연구소(소장 이대택)와 체육시민연대는 7월 28일 오후 서울 정동에 있는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프로야구 승부조작 끝장토론>을 열었다. 이 토론회는 최동호 스포츠평론가가 사회를 맡았고 박동희 엠스플뉴스 기자, 정희준 동아대 교수, 박지훈 변호사, 홍덕기 노던아이오와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규제는 꽤나 강력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데도 승부조작이 재발했다. 그것도 4년 만에 말이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더 치밀하고 교묘한 수법으로 진화했다”고 지적했다. 구단과 KBO가 해온 교육이 실효성이 없었고, 문제를 일으킨 선수만을 퇴출하고 처벌해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야구계가 공론장을 만들어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이다.

승부조작 사실이 드러나면 우선 사건을 공론화하고, 선수는 물론 선수단을 관리감독하는 구단과 KBO가 책임을 지며, 동시에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제안이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는 “유혹에 약한 선수들은 어디나 있다. 문제는 구단, 협회, 국가의 대처”라며 “승부조작은 선수만 내쫓는 식의 임기응변이 아니라 구단과 협회가 함께 책임질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소속 구단과 KBO는 문제 선수들을 퇴출하는 것으로 사건을 정리하려는 모습이다. 박동희 야구전문기자는 “2012년 사건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중지를 모았다면 재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때 교훈을 잊고 지금 똑같이 밀실에서 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기자는 수사기관이 문제 선수들을 내사 또는 수사 중인 사실을 구단과 KBO는 알고 있었지만 자체 진상조사조차 하지 않고 쉬쉬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취재한 것으로 봐서는 야구계는 이 사안을 광장에서 다루지 않고 밀실에서 은폐하려 한다. 구단과 KBO는 이태양이 조사받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입을 다물었다. 유창식 내사에 대해서도 몰랐다고 잡아뗐다. 2012년처럼 은폐한다. 협회가 자체 조사를 하고, 수사권이 필요하다면 검찰과 경찰에 넘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KBO는 무혐의, 내사종결이 나오기만 바란다. 승부조작보다 무서운 게 은폐다. 취재하면서 KBO로부터 압박을 받았다.”

박동희 기자는 야구계에서 “야구발전을 위해 묻고 가야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몇몇 야구인들은 ‘여기서 더 터지면 야구가 망한다’고들 하는데 이분들은 야구를 위해 무엇이라도 한 것이 없는 분들”이라고 꼬집었다. 정희준 교수는 “전형적인 가해자의 논리”라며 “이 문제를 계속 떠들어서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동호 평론가는 “(체육관련 시민‧연구단체에서) KBO리그 중단과 KBO 총재‧사무총장 사퇴를 요구할지 논의 중인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사진=미디어스)

정희준 교수는 구단과 KBO의 현재 대응방식으로는 또 다른 승부조작을 막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정 교수는 “구단과 협회는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들에게 책임은 없나. 문제를 쉬쉬하다가 다른 구단에 팔아넘긴다. 폭탄돌리기다. 걸리면 선수만 희생시킨다. 이런 것을 강력한 대처라고 할 수는 없다. 양해영 사무총장 임기 동안만 두 번의 승부조작이 있었지만 총재도 사무총장도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외국은 징계 수위 자체가 높고, 선수를 고용한 구단은 물론 선수와 구단을 관리감독하는 기구가 함께 책임을 진다. 과거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이 야구도박에 베팅을 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선수가 제명된 것은 물론 구단주마저 자리에서 물러났다. 미국 조지아대학에서는 한 운동부가 스카우트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렀는데 그 대학에 소속된 30여개 종목의 운동부 모두 일 년 간 출전정지라는 징계를 받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홍덕기 노던아이오와대 교수는 “KBO는 2012년 이후 3~4년 동안 무엇을 했나. 시즌 중에라도 구단별로 순회교육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 않나. 선수와 구단 운영부장 정도를 징계하는 꼬리자르기 식의 처벌을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훈 변호사는 “피고용자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를 사용자가 져야 한다는 것이 민법 상 사용자책임이다. 선수가 잘못하면 구단이 책임져야 한다”며 야구팬과 중계권 구매자가 구단 및 KBO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운동선수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고 때로는 승부조작에 동원된다. 빨래판도 두들기면 깨지는데 어린 운동선수를 힘으로 파벌로 돈으로 때리니 오죽할까. 이번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은 문제선수들만 내쫓으면 될 일이 아니다. 야구계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사진은 서울 충무로의 한 주택가 벽에 장식돼 있는 빨래판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승부조작에는 많은 문제가 얽혀 있어 징계와 소송만으로는 해결할 순 없다. 우선 브로커가 활동하고 돈이 흘러나오는 불법스포츠도박시장은 이미 최소 30조원 규모로 추정될 정도로 덩치가 크다. 합법인 스포츠토토의 10배 이상이다. 축구, 농구, e스포츠 등 장르를 불문하고 승부조작이 일어나고, 억대 연봉의 선수와 감독까지 조작에 가담하는 이유다. 박동희 기자는 “스포츠토토를 더 재밌게 만들든지 불법스포츠도박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우가 열악한 것도 문제다. “조금만 잘하면 억대 연봉인데 왜 5백만 원 벌자고 승부조작을 하냐”는 비난이 많지만 프로야구선수 절반은 5천만 원이 채 안 되는 연봉을 받는다. 29일 KBO에 확인한 결과, 지난 1월 말 KBO에 등록된 선수 616명(외국인선수 29명, 신임 61명 포함) 중 5천만 원 미만의 연봉을 받는 선수는 331명(신인 전원 포함)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연봉 2700만 원을 받는 선수는 136명(신인 전원 포함)이다.

엘리트 중심의 육성 체계에서 선수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에서 배제되고, 고립된 환경과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를 경험하며, 파벌‧입시‧이익 등 다양한 이유로 져주기 경기에 동원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홍덕기 교수는 “선수들은 스포츠 본연의 가치인 참여, 재미를 느껴 입문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 수단으로 엘리트 체육 과정으로 운동을 한다. 일등지상주의에 빠져 있고 군대 같은 섬문화를 경험하며 지는 게임을 한다”고 말했다.

홍덕기 교수는 문화체육관광부, 협회, 구단이 책임을 지고 운동부의 교육과 문화를 바꿔나가는 장기적인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직 선수들과 지도자들에 대한 재교육을 체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박동희 기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하는 학생, 사고하는 학생을 키워야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는다”며 학생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주말리그를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한국의 스포츠계는 엘리트 육성에 집중한다. 그래서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이 없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