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는 예술인가, 아니면 오락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라마를 시간 때우기 적절한 오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단순히 오락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드라마의 문화예술적인 영향력이 너무 크다. 드라마는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예술 양식이면서 동시에 막대한 경제 가치를 창출해내는 문화산업이기도 하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만 하는 것이 드라마의 숙명인 것이다. 그런 만큼 시청률로 대변되는 흥행 성적에 따라, 또는 작품의 질에 대한 평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성과 시청률을 동시에 이끌어내는 작가와 연출자뿐만 아니라, 비록 시청률은 낮지만 자기 세계가 분명한 작가나 연출자에 의해 드라마는 오락물의 한계를 벗어나 예술로서 자리 매김되고 있었다.

▲ MBC <이산> ⓒMBC
그러나 외주 제작과 매니지먼트 산업이 완전히 정착되고,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대작 드라마가 넘치면서 예술로서 드라마의 입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스타급 배우와 작가, 연출자만 있으면 드라마 제작에 필요한 자본을 어렵지 않게 투자받을 수 있다는 산업적 발상이 드라마의 예술적 특성보다 앞서는 상황이 된 것이다.

스타급 배우와 작가, 연출자가 무슨 문제냐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붕어빵 틀에서 찍어낸 것처럼 획일적인 등장인물과 정형화된 이야기 구조를 되풀이하는 수준을 넘어 자기 복제하는 배우와 작가, 연출자는 일상 예술로서 드라마의 위상을 흔드는 주범들이라 할 수 있다.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드라마들이 시청률과 상관없이 시청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이유를 진부한 내용과 형식에서 찾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주인공의 새로운 직업과 시간적ㆍ공간적 배경의 참신함을 희석시켜버릴 정도로 진부한 이야기 구조에 있다. 진부함과 상투성은 모든 예술의 공적(公敵)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의 작가와 연출자라 하더라도 진부함과 상투성에 빠지는 순간, 예술로의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게 예술의 운명이다. 예술을 예술답게 만드는 힘은 익숙한 그 무엇을 새롭게 바라보는 발견과 인지(認知)에서 나온다.

일상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 양식으로서 드라마가 끊임없이 비판받는 것도 천편일률적인 등장인물과 이야기 구조 때문이다. 똑같은 이야기라 하더라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전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최근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일련의 드라마들은 새로운 소재와 등장인물을 정형화된 이야기 구조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진부함과 상투성에 갇히고 말았다. 이것은 한국 드라마에서 제대로 된 전문직 드라마가 제작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물리적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시청자에게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MBC <이산>과 SBS <로비스트>의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시련과 위기, 고난을 극복하면서 정신적ㆍ육체적으로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시련과 고난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지켜보는 재미는 만만치 않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이 천편일률적일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시청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는 과정이 담긴 드라마의 구조가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면서 재미를 주는 것인데, 누구나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면 극적 재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 주인공이 어린 시절의 불행을 극복하고 '로비스트'라는 전문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로비스트>의 극적 긴장감이 떨어지고, 조선 왕조의 개혁 군주 정조대왕이 세손 시절 정적(政敵)들의 살해 위협으로부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그린 <이산>이 여러 가지 잔재미에도 불구하고 극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진부하고 상투적인 구조 때문이다.

특히 <이산>의 주인공 '이산(이서진 분)'과 '성송연(한지민 분)'이 온갖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이 <대장금>의 '장금(이영애 분)'이 그랬던 것과 비슷하게 구성된 것은 전혀 다른 내용과 분위기의 <이산>이 <대장금> 속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이다. 이처럼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에 질려 있는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좋은 이야기를 재미없게 만든 원인은 등장인물의 성격에 개성을 부여하지 못하고 자기 복제를 거듭하는 창의적이지 않은 창작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 10월 8일 방송된 KBS <드라마시티> '쌈닭 미숙이' ⓒKBS
드라마는 산업이기 전에 예술이다. 드라마가 아무리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라 하더라도 예술이라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는 만큼 시청률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를 획일화시키고 있다. 따라서 공장에서 생산하는 공산품처럼 극본을 생산하고 연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외주 제작사가 장기적인 투자 차원에서 단막극을 의무적으로 제작하도록 하고, 방송사는 이렇게 제작된 단막극을 정규 편성함으로써 예술로서 드라마의 완성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시청률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단막극은 새로운 소재와 표현 기법의 개발에 용이하여 신인 작가와 연출자뿐만 아니라 신인 연기자를 발굴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니시리즈나 블록버스터 위주의 외주 제작이 정착되고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현재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단막극은 KBS 2TV의 <드라마시티>가 유일하다. 이처럼 드라마의 예술적 특성을 실험할 수 있는 단막극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질적으로 우수한 드라마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만약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류를 주도했던 한국 드라마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전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상 예술로서 드라마의 예술적 특성을 망각한다면, 막대한 경제 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산업으로서 드라마의 위상도 신기루에 지나지 않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편성권을 가지고 드라마 제작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각 방송사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드라마의 문제점을 외주 제작사로 넘기지 말고 창의적인 드라마가 제작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윤석진 교수는 2000년 여름 한양대에서 <1960년대 멜로드라마 연구-연극·방송극·영화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2004년 가을 <시사저널>에 '캔디렐라 따라 웃고 웃는다'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김삼순과 장준혁의 드라마공방전> <한국 멜로드라마의 근대적 상상력> <한국 대중서사, 그 끊임없는 유혹> 등의 저서와 <디지털 시대, 스토리텔러로서의 TV드라마 시론> <극작가 한운사의 방송극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현재 충남대 국문과에서 드라마 관련 전공 과목을 강의하면서 한국 드라마의 영상미학적 특징에 대해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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