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GO는 이제 출시 된지 겨우 2주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세계를 휩쓸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만 2100만 명이 매일 플레이해 트위터의 일일 사용자 수를 뛰어넘었고, 플레이어들이 포켓몬GO에 투자하는 시간은 페이스북, 스냅챗, 트위터 등의 인기 SNS에 투자하는 시간보다도 더 길다고 합니다.

저는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을 눈높이로 들고 쳐다보며 걸어가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포켓몬GO를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게임 진행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지만, 속초 등 강원도 북부 일부에서는 플레이가 가능하다고 하자 모두들 포켓몬을 잡으러 속초로 달려가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며칠 전 플레이가 가능해지자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포켓몬GO가 기존의 포켓몬 문화와는 또 다른 새로운 인터넷 문화를 창조했다고 봐도 전혀 무리가 아닙니다. 어떤 SNS나 웹페이지를 가도 포켓몬GO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24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간절곶을 찾은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보며 포켓몬 고 게임을 즐기고 있다.(C)연합뉴스

그래서 포켓몬GO가 활용한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 AR) 기술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포켓몬GO는 우리가 사는 현실을 카메라로 비춰 그 위에 포켓몬을 나타나게 해 몬스터볼을 던져 잡는 것이 기본인 게임이고, 그런 포켓몬을 찾아다니려면 현실의 세상 바깥을 돌아다녀야 하며, 또한 위치 기반 게임으로서 현실의 지도, 지형, 건축물, 랜드마크 등에 ‘포케스탑’ (경험치와 아이템 등을 제공하는 장소)과 ‘체육관’(포켓몬을 가지고 실력을 겨루는 장소)이 가상으로 설치되어 플레이어들이 방문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증강현실, 곧 ‘현실 위에 가상의 층을 하나 덧씌운’ 형태의 게임입니다. (그래서 증강현실은 전체가 가상인 가상현실과 구분됩니다.) 포켓몬GO의 이렇게 열풍이 거세다 보니 ‘한국형 포켓몬GO’가 나온다는 기사(사실은 SKT가 개발한 증강현실 플랫폼을 이용한 게임이 나온다는 낚시성 제목입니다)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포켓몬GO의 성공 이유는 단순히 증강현실 기술을 활용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포켓몬스터는 닌텐도사의 최고 인기 게임 중 하나이며 또한 만화, 애니메이션, 카드게임 등도 모두 성공했기 때문에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보거나 접해봤을 것이기에 팬덤도 강력할 뿐더러 대중적인 인지도도 매우 높습니다. 테크크런치의 지적처럼 포켓몬스터 게임 원작은 돌아다니면서 포켓몬을 잡는 것이 기본인 게임이기 때문에 증강현실을 이용해서 현실에서 비슷한 경험을 제공한 것이 게이머들에게 어필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2010년 출시된 포켓몬스터 블랙/화이트를 기점으로 포켓몬스터의 주 수요층이 어린 아동에서 10대 후반-20대 초반으로 옮겨왔고, 이들이 스마트폰의 주 사용자라는 점에서 포켓몬GO의 출시 시기와 타켓층이 잘 맞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향수를 자극했다”는 많은 언론들의 표현이 반드시 맞지는 않습니다. 포켓몬은 어떤 이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어릴 적의 추억이었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현재 진행형인 취미이기 때문입니다.)

기술은 이미 시장에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포켓몬GO의 성공에는 증강현실이라는 기술보다 포켓몬이라는 콘텐츠가 핵심이라는 말은 많은 언론에서 자주 지적되었기 때문에 이 글에선 ‘콘텐츠 육성의 중요성’이나 ‘한국에서 포켓몬GO가 나올 수 없는 이유’ 같은 것은 생략하고, 대신 살짝 다른 결에서 포켓몬GO의 성공을 바라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증강현실 게임이 있었으나 대부분 조용히 사라졌으며 몇몇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지만 유의미한 매출은 이끌어내지 못하고 그 중 하나는 운영을 종료하는 등 메이저 장르로 주목받지 못하고 틈새시장으로만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증강현실뿐 아니라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도 오큘러스 리프트, 삼성의 기어VR, HTC의 Vibe 등이 열심히 시장 개척에 노력하고 있었지만 신통치 않았습니다. 분명 그랬는데, 포켓몬GO가 등장한 이후에는 며칠도 안 지났는데 모두가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 본 증강현실 속에서 피카츄를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증강현실이 가상현실보다 더 뛰어난 기술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둘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다른’ 형태의 기술입니다), 증강현실의 콘텐츠로 등장한 것이 포켓몬스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포켓몬GO는 사실 누구나 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지키지는 못했던 교훈을 전세계적인 열풍과 함께 기술 업계에 다시 가르쳐 주었습니다. 중요한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소비자가 원할 만한 무언가를 내놓는 것이며, 기술은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포켓몬GO에서 사용하는 증강현실 기술은 오래 전에 이미 시장에 충분히 나와 있었습니다.

포켓몬GO의 증강현실에 필요한 GPS와 카메라는 처음 스마트폰이 나올 때부터 기본적으로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포켓몬GO의 기반이 된 인그레스(Ingress, 포켓몬GO 개발사인 나이앤틱의 첫 증강현실 게임)가 클로즈 베타를 시작한 건 4년 전, 갤럭시S3이 나오던 시절입니다. 포켓몬GO가 요구하는 3D 성능도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닙니다. 3년 전에 나온 갤럭시S4에서도 문제없이 돌아갑니다. 즉, 만약 포켓몬GO의 성공 이유가 오직 증강현실이라는 기술이었다면, 사실은 이미 3년 전에도 다른 게임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단, 인그레스나 포켓몬GO에서 사용하는 증강현실의 기술도는 크게 높지 않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HoloLens) 등의 더욱 향상된 증강현실 기술은 지금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습니다.)

포켓몬 고 열풍이 속초와 고성, 양양지역에서 이틀째 이어진 지난 14일 속초해변에서 실행된 포켓몬 고 게임에 등장한 포켓몬이 휴대전화 화면에 나타나 있다(C)연합뉴스

지금까지 획기적인 신기술로 미디어에 자주 언급되었으나 신통치 않았던 것들은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이외에도 꽤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이 있습니다. 스마트홈이니, 가정 자동화니 하면서 마치 미래의 생활양식인 양 칭송을 받으며 지금도 가전 컨퍼런스에 가면 IoT는 항상 빠지지 않는 약방의 감초이지만, 정작 현실을 보면 성공한 IoT 제품은 거의 전무한 실정(구글이 인수한 네스트의 온도조절기 정도만 떠오릅니다)입니다. 전시관이나 연구실에만 존재하는 시제품이나 틈새시장을 노리는 몇몇 제품만 있지 일반 가정에 전반적으로 도입되는 것은 아직까지도 요원한 실정입니다.

상품화에 있어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다

하지만 증강현실과 마찬가지로, IoT가 보편화되지 않은 이유도 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론 계속해서 LTE MTC(LTE-M) 등의 IoT에 최적화된 통신 기술이 개발되고 있지만, 오랫동안 이용 가능했던 Wi-Fi, 블루투스, ZigBee부터 최근 SKT에서 전국망 상용화를 발표한 LoRa까지, 기술 자체는 계속 존재했습니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부품도 작고 저렴하므로 딱히 제조 원가나 제품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기술력은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IT 업계는 소비자들이 IoT라는 기술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실패했고, 또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습니다. 특정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기업들도 분명 있지만 그런 성공은 사람들이 그렸던 IoT의 미래, 예를 들면 온도계에서 냉장고까지 모두 연결된 커넥티드 홈과는 거리가 멉니다.

IoT가 실패한 이유는 수도 없이 들 수 있겠지만(통합된 생태계의 부재나, 구매해야 하는 제품이 1개가 아니라 수 십 개가 되어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 등도 물론 중요합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금까지 IoT가 제시한 경험을 소비자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넥티드 홈이라거나 스마트홈이라거나 하는 개념이 과연 일반 대중이 전시장에서 보았을 때 “우와 신기하다” 하고 끝나는 수준을 넘어서서 진심으로 원하고 갖고 싶어 하는 것이었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합니다. 가령 삼성전자는 한 가전 쇼에서 BMW와 제휴해 스마트폰으로 자동차의 시동을 켜고 움직이게 하는 시연을 한 적이 있는데 신기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진심으로 그것을 갖고 싶어 할 사람이 얼리어답터 이외에 얼마나 있을까요. 별로 없었기 때문에 시연으로만 끝났던 것이 아닐까요.

기술은 물론 중요합니다. 저 자신도 LTE-A의 신기술 분석을 오래 연재해 왔을 정도로 기술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또한 카메라나 GPS, 스마트폰 기술이 없었으면 결국 증강현실도 포켓몬GO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콘텐츠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기술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 업계는 포켓몬GO의 대성공을 통해 왜 포켓몬GO 이전의 증강현실이, 다른 기술들이 대중을 설득하는데 실패 했는가를 반드시 고민해야 합니다. 증강현실, 가상현실이나 IoT 외에도 지금도 이미 어느 수준 완성되었거나, 또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지만 대중적이지 못한 기술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가만을 강조하다 보면 일반 대중에게 끌어낼 수 있는 반응은 ‘우와 신기하다’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상품화에 있어서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그 기술을 이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만이 그 기술의 진가가 비로소 드러납니다. IoT도, 가상현실도, 혹은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혔던 또 다른 기술도, 증강현실처럼 떠오르기 위해서는 이런 소비자 관점에서의 고민과 노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포켓몬 알을 부화시켜야 하니 다시 자전거를 타러 나갑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