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이 붙을 예정이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을 놓고 논하기보다는 기계적인 찬반논리를 내세우거나 표면적인 것에 불과한 근거들로만 논의를 계속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5일 신문 지상에서도 이런 식의 논의가 반복됐다.

이날 보수언론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중앙일보다. 아세안(ASEAN)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한반도 내 사드배치에 대해 노골적인 발언을 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글이 두 편이나 실렸기 때문이다. 물론 외부 기고 글에 드러난 입장은 중앙일보라는 매체가 갖는 논조와 배치될 수 있으나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이런 지면 편집이 눈에 띄는 건 사실이다. ‘경제보복’을 우려하는 재계의 시각과 일치되는 점이 있지 않나 추측한다.

25일 중앙일보 지면의 정운찬 전 총리 칼럼

이날 중앙일보에 실린 사드 배치 반대론의 기고자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과 정운찬 전 총리다. 정운찬 전 총리야 중도적 입장이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걸로 잘 알려져 있고, 송민순 전 장관은 참여정부 말기의 외교정책을 책임진 인사로 이후 제1야당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어찌보면 전임 정권과 전전임 정권의 핵심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송민순 전 장관과 정운찬 전 총리의 글은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관점의 차이를 보이지만 대략 비슷한 논리를 갖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외교적 군사적으로 실익이 없고,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외교정책에서 자율성을 가질 수 없는 국면으로 내밀린다는 것이다. 거기에 배치 과정에서도 충분한 민주적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이 확대됐고, 결국 배치를 안 하느니만 못하는 결과가 됐다는 게 이런 주장들의 핵심이다.

25일 중앙일보 지면에 실린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칼럼

하여간 이들의 주장은 보수언론들이 과거 박근혜 정권의 ‘친중행보’를 비난하였던 것과 배치된다. 애초 박근혜 정권의 ‘친중’이란 중국이란 국가 또는 체제의 형태와 가치를 지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중국을 끌어들여 북한을 고립시키고,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 속으로 우리 외교가 빨려 들어가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옳다. 이날 조선일보는 사드 배치 반대를 일종의 ‘중국에 대한 환상’으로 치환하는 내용의 글을 실었는데, 과거 ‘친중행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외교라인의 교체를 요구한 것과 같은 맥락의 주장으로 보인다. <사드 반대파의 ‘중국 환상’>이라는 제목의 이 글에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이 일본에 사드 레이더 2기를 배치할 때는 침묵했던 중국이 이제와서 한반도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에 명분이 없다면서 “‘나는 되고 남은 안 된다’는 것이 중국식 논리”라고 까지 표현하고 있다.

강대국 외교에 ‘나는 되고 남은 안 된다’는 식의 논리가 얼마나 많이 횡행하는지는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중국의 자가당착을 말하면서 그걸 ‘친중파의 환상’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사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 글에는 “국내 사드 반대파는 중국의 이런 패권적 행태를 비판하기는커녕, 경제 보복 가능성을 들먹이며 중국 비위를 맞추고자 한다. 경제적 손실은 잠시 배고프게 할 뿐이지만, 안보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문장까지 나온다. 이런 규정은 결국 사드 배치 찬성론이 이념적 함정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물론 야권의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 논리가 다소 허약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의 대북제재 역할론이나 경제보복론만 갖고는 이 상황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내놓기 어렵다. 실제 중국이 대북제재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고, 경제보복이라는 것 역시 중국 소비자들의 ‘반한감정’ 이외에는 딱히 작동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중국의 ‘비관세 장벽’을 말하고 있으나, 이 역시 국내 기업의 대중수출에 일정 수준이 불이익을 안기겠지만 결정적 타격을 입힐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이 ‘강대국’을 자처하며 노골적인 동아시아 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로 가만히 있던 중국이 크게 긴장하고 반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중국은 한국이 친중노선을 취하면 취하는대로, 사드를 한반도 내에 배치하면 배치하는 대로 그다지 손해 볼 것이 없다. 남동중국해 문제를 사드 배치와 같이 엮어서 보면 답이 나온다. 미국이 사드가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려해도 중국이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갈등을 키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기 위한 구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패권경쟁을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는 한 번 따져볼만한 문제이긴 하지만, 중학생들의 싸움이 아닌 이상 그 답이 외교 현실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패권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한 외교적 고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되지 못한다. 사드 정국의 핵심은 한미일 북중러 구도 하에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외교적 카드의 상당부분이 소멸되고, 이게 남북 간의 군비경쟁과 군사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사드를 한반도 내에 배치하지 않는 모범답안은 평화와 군비축소를 말하는 것이다. 외교적으로는 그게 거의 유일한 탈출구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주요 지도자 중에 그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사실상 없는 것은 문제다. 당혹스럽게도 이 문제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키히토 일왕이다. 최근 일본 사회는 일왕의 ‘생전퇴위’ 문제로 떠들썩한데, 여기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개헌 논의에 대한 불편함이 작용하였으리라는 게 호사가들의 평이다.

일왕은 현재의 평화헌법을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고 극우파들이 말하는 ‘천황의 국가원수화’에 대해서도 ‘상징천황’으로서 자신의 위상을 반복 강조하며 일관된 반대를 표명해왔다. 개헌파가 양원의 개헌선을 넘기게 되면서 일왕의 생각과는 달리 극우파의 정치기획이 관철될 확률이 높아졌다. 그러나 일왕의 ‘생전퇴위’와 이와 연동된 황실전범 개정이라는 문제제기는 쟁점을 확대해 개헌파들에게는 장해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복잡한 전후맥락이라는 게 분명히 있지만 이런 면만 보면 일종의 국가 원로가 반전평화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정치적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제1야당의 대응을 돌아보게 한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사드 문제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태도를 ‘전략적 모호성’에 비유하며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2012년 대선 이후 제1야당은 패인을 지나친 ‘좌클릭’에서 찾고 수권능력을 갖추자며 중도를 향한 행보를 가속화해왔는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존재 역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김종인 대표는 ‘북한 붕괴론’을 언급한 보수주의자답게 사드 배치에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종인 대표의 이런 입장은 이날 조선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김종인 대표의 이런 의견은 사회 원로로서, 또 당의 얼굴이 갖고 있는 의견으로 더불어민주당의 구성원들에게 다가오리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과연 누가 여기에 반기를 들 수 있겠는가.

더불어민주당의 이런 현실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화와 군축을 소신으로 말할 수 있는 지도자의 존재를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제1야당의 자장 안에서 본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앞으로 말했듯 외교적으로 좋지 않은 선택을 한 박근혜 정권의 문제를 짚을 수가 없고, 따라서 집권한 이후에 남북관계를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도 없게 된다. 사드 배치에 대한 찬성과 반대 꼭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문제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국민의정부를 계승하는 정치세력을 자임하려면 평화와 군축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던 안철수 대표가 그저 바보라서 ‘국민투표’를 말했겠는가. 동아시아의 평화를 적극적으로 외치면서 정세를 주도할수 있는 지도자가 등장할 때가 됐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