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 3월 날씨는 변덕이 심합니다.

밤 기온은 여지없이 영하라 아침이면 살얼음이 얼어있어 아침, 저녁으로 겨울옷을 벗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햇볕이 따스한 낮엔 겨울옷이 부담스럽습니다.

햇볕이 좋다가 구름이 모여들어 빗방울이나 눈발이 날리기도 하고 방향이 일정하지 않은 바람이 힘차게 왔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산을 다니다보면 봄 날씨가 변덕이 심하고 바람이 힘찬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에 나왔던 잎을 아직도 달고 있는 당단풍이나 지난해 열매를 달고 있는 굴피나무처럼 늦잠꾸러기들에게 지난해 것을 떨치고 새봄 맞을 준비를 하라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변덕이 심한 3월 날씨에 여러 나무들이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지 알 길이 없지만 산중에는 하나 둘씩 꽃을 피워 숲을 아름답게 하고 있습니다.

산수유와 생강나무에 꽃이 피고 며칠 지나면 진달래와 히어리 꽃이 핍니다. 봄꽃하면 많은 사람들이 개나리와 진달래를 떠올립니다.

무리지어 노랗게 피는 개나리는 봄꽃의 대표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어디서든 잘 자라고 가지를 꺾어 땅에 심어도 잘 살기 때문에 개나리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이렇게 흔한 개나리를 산중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아랫마을에서는 찻길 옆에서도 잘 자라고 있는데 산에서는 만날 수 없는 걸 보면 깊은 산에서 자라기 어려운가 봅니다.

개나리는 산중에서 만나는 걸 포기하고 몇 해 전 산에서도 잘 자라는 진달래를 찾는다고 여기저기 다녔습니다. 찻길에서는 바위틈에서 꽃을 피운 진달래를 많이 보는데 산에서 좀처럼 진달래를 찾을 수 없어 봄만 되면 돌아다녔습니다.

▲ 진달래.
진달래도 깊은 산보다 햇볕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3년 전쯤 어느 계곡에서 무리지어 꽃을 피운 진달래를 찾고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이 대부분 노오란 빛인데 진달래는 붉은빛이 돕니다. 아직도 진달래꽃이 무슨 빛인지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진달래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건 그 빛 때문이었습니다.

어릴 적 야트막한 산에서 마을 아이들과 무슨 뿌리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뿌리를 캐 먹기도 하고 진달래꽃을 따 먹기도 하면서 진달래를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두 발로 걸어가서 만날 수 있는 곳에 진달래가 무리지어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반갑고 기쁜 일인지 봄만 되면 몇 번씩 진달래가 자라는 곳에 갑니다.

진달래를 찾았던 계곡에서 진달래 옆에서 연한 노란꽃을 가지마다 달고 있는 나무를 함께 만났습니다. 처음 만나는 나무는 신비함과 답답함을 함께 줍니다.

신비함은 지금껏 본 나무들과는 다른 모습을 가졌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이고 답답함은 나무 이름을 알 수 없어 생기는 감정입니다.

이 답답함은 오래 가지고 있기 벅차기 때문에 나무가 가진 특징을 열심히 머릿속에 새겨둡니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 연한 노랑빛의 꽃, 꽃이 종모양이고 여러 종모양 꽃이 모여 있음, 겉껍질이 진달래와 비슷한 회색빛….

▲ 히어리.
이렇게 새겨 두고 이름을 알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꽃모양이 특이했기 때문에 나무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진달래 찾다가 만난 이 나무는 지리산과 몇 군데에서만 자라는 흔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름도 순우리말로 지어진 히어리나무입니다.

조팝나무꽃이나 벚꽃처럼 순백의 흰빛이 아닌데 히어리는 희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지리산에서도 잘 만날 수 없는 히어리를 진달래가 무리지어 사는 곳에서 함께 만날 수 있으니 봄만 되면 진달래와 히어리꽃이 피었는지 궁금해 몇 번씩 발걸음을 합니다.

히어리도 잎보다 꽃을 일찍 피우는걸 보면 진달래처럼 꽃에 자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