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땐 한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대통령이 곧장 전화를 걸어 ‘국위 선양’을 치하했다. 방송은 그 장면을 생중계했다. 그 선수는 다시 ‘고국에 계신’ 부모와 통화에서 “어매야. 인자 고생 다했다”며 울먹였다. 물론 그 장면도 생중계됐다.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는 국제경기 중계방송 캐스터의 가장 격정적인 레퍼토리였다. 온 국민은 그때마다 열광했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에 명치끝이 뻐근해지곤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수백개의 금메달이 주인을 찾아갔지만, 외국 금메달리스트의 국적은 관심밖이었다. 당연히 그 나라의 국위가 우리에게 선양될 리 만무했다. 86년엔 멕시코 월드컵이 열렸다. 그전까지 난 한국 국가대표팀 ‘화랑’이 세계 최강인 줄 알았다. 월드컵 첫 출전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TV가 늘 한국팀의 안방경기 승리를 극찬했던 탓이다. 국위가 얼마나 선양됐는지 모르겠으나, 월드컵 기간 동안 독재자 대통령은 평안했다.
2009년 3월, 한국 야구대표팀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대통령은 “대한민국도 저들처럼”이라며 야구팀을 극찬하는 한편, 야구에 못 미치는 국무위원들을 나무람으로써 ‘경제위기에도 정신 못 차리는’ 국민을 함께 나무랐다. TV 뉴스는 날마다 WBC 소식으로 도배됐다. 선수들에겐 거액의 상금이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병역면제가 진지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WBC 준우승은 휴전선 초병들의 국가안보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스포츠 애국주의’는 스포츠가 애국심을 낳는 현상이 아니라 스포츠를 매개로 체제 내부의 모순과 갈등을 은폐하는 행위다. 히틀러의 1936년 베를린올림픽이 대표적이다. 성공한 선수들에겐 국가 차원의 보상이 뒤따른다. 미디어는 이 과정에 동원되거나 스스로 앞장선다. 그리고 우리를 늘 ‘국민’으로 호명하고, 우리보다 앞서 흥분한다. “고국에 계신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그저 ‘스포츠를 좋아하는 시청자’가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1534호 ‘미디어 바로보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