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포차’, 한 달의 기억

지난 7월 1일 새벽 갑작스러운 강제철거로 곤혹을 치렀던 마포구 아현역 인근 아현포차 문제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3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가며 포차거리라는 지역 상권을 형성했지만, 인근 초등학교와 새롭게 조성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주된 민원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7월 1일 아현포차 현장에서 만난 마포구청 공무원은 강제 철거의 근거로 ‘반복적인 집단 민원'을 들었다. 이미 지난 1월 부터 6월말까지 자진철거를 종용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십년 동안 장사를 해온 상인들을 위한 생계 대책에 대한 논의는 전무했다. 오로지 ‘불법이니 나가라'는 말만 제자리를 돌듯 반복되었다. 이런 마당에 한국 정부가 가입한 유엔이 1993년에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 제77호로 적절한 대책이 없는 강제철거를 금지하도록 한 것을 상기시키거나, 2009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퇴거 당하는 이들에 대한 충분한 협상 기회와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고 퇴거 예정 시기를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는 <강제철거 때 지켜야 할 기본원칙>을 만들어 권고하고 있다는 말이 먹혀들 틈이 없다.

한 달도 안된 사이, 서울시청 앞 기자회견, 마포구청 앞 기자회견, 노웅래 국회의원 사무실 방문 등 아현포차 문제를 대화와 합의를 통해 풀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그 사이 아현역 인근 서명운동을 위해 ‘아현거리이야기'라는 소식지도 3종을 만들어 배포했고, 지역주민들과 단체들이 모여 공동모임도 구성했다.

그래서 상인들은 자진퇴거 기한의 마지막 날인 6월 30일, 대책 마련 없는 마포구청의 강제철거 방침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서울시 인권센터에 진정했다. 최소한 이런 조치를 통해서 마포구청이 주장하는 ‘집단 민원'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이 지난 수십년 동안 실질적으로 점유를 해온 아현포차를 철거해야 될 만큼 긴급성과 필요성을 가지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마포구청은 7월 1일 새벽 갑작스러운 철거를 진행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행정대집햅법>이 정하는 법적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법 제3조는 “상당한 이행기간을 정하여 그 기한까지 이행되지 아니할 때에는 대집행을 한다는 뜻을 미리 문서로써 계고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계고장의 양식을 시행령의 별지 제1호 양식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법 제4조는 “집행책임자는 그가 집행책임자라는 것을 표시한 증표를 휴대하여 대집행시에 이해관계인에게 제시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7월 1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계고 절차도 진행되지 않았고, 현장에 있던 이들이 용역인지 공무원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이런 행정대집행은 행정심판의 대상이다. 법 제7조에 명시되어있고, 시행령의 계고장에도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구청이 상인들에게 보낸 어떤 서류나 문서에도 상인들이 행정 절차에 불복할 수 있는 제도를 안내하지 않았다. 따라서 상인들 입장에서는 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은 공무를 따를 이유가 없다. 당연히 절차의 무효를 선언하고 위법적으로 시행한 펜스를 떼어냈다. 이에 마포구청은 현장에서 ‘공무집행 방해' 및 ‘재물손괴'로 경찰에 고발 조치하나, 막상 경찰조사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고발 혐의는 ‘표지 훼손'이었다. 그러니까, 마포구청이 붙여 놓은 표지를 훼손한 혐의이지, 공무집행 방해도, 재물손괴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강제집행 절차가 아니었으니 공무집행 방해도 아니었던 셈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와 합의의 실마리가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그래서 곧바로 마포구청 앞에서 구청장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그리고 면담 이후까지 강제철거를 진행하지 않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뒤이어 마포구 국회의원 노웅래 지역사무실에 방문했다. 노웅래 국회의원은 지난 20대 총선 당시 주요 공약으로 ‘아현포차 철거'를 걸었던 이다. 적어도 자신이 걸었던 공약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상인들이 하루 아침에 쫒겨나게 된 것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겠다 보았다. 이 자리에서 만난 지역 사무장은 노웅래 국회의원의 공약이 결코 ‘대책없는 강제철거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2015년 내내 ‘마포구청에게 철거 전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해왔다, 사실상 철거를 막아온 셈이다'라고 강변했다.

이후 마포구청과 협의가 안될 경우 결국은 노웅래 의원의 정치적 책임을 요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전달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7월 13일 마포구청 담당부서와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철거를 원칙적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다"는 답을 들었다. 결국 빙글빙글 돌아 제자리로 돌아왔고, 아현포차 상인들은 이지메를 당하는 아이처럼 하루 하루 속병이 스며들었다. 이 과정에서 소위 아이를 키운다는 학부모라는 집단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실상 ‘이주민’ 집단이 가진 힘을 보았다. 사실관계를 증명하고 ‘함께 이야기'하기 보다는 집단이라는 힘으로 행사 되는 민원과 그들의 익명성이 두려웠다. 무엇보다 그들을 핑계로 위에서 내리 깔듯 ‘우리가 이제까지 봐주어서 장사를 할 수 있었다'는 마포구청 공무원의 태도는, 하루 아침에 쫒겨 나는 상인들에 대한 일말의 동정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상인들과 함께 제안한 ‘공존 협약'(안)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 가지 확신이 들었던 것은, 결국 이 문제 해결의 열쇠는 마포구청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현행 <도로법>은 중앙정부-광역정부-기초정부 간에 각각 담당 도로의 관리와 유지에 대한 권한을 분배하고 있고, 이에 대한 적용은 어디까지나 위임사무의 범위 내에서 각각의 행정 주체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7월 13일 마포구청 면담 시에 “지역주민-상인-마포구청 <공존을 위한 사회협약>”을 준비했다. 주요 골자를 보면, 1) 아현포차의 점진적 퇴거 보장: 향후 5~10년 사이에 자연 퇴거를 유도함으로서 도로를 회복한다 2) 보행환경 개선사업의 병행 실시: 자연 퇴거 점포를 점진적으로 개량하면서 특화거리 사업을 진행한다 3) 상인-지역주민-지역단체 간 점검계획 수립: 이상의 합의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지원해야 되는 사항에 대해 협력한다 라는 것이 골자다. 이 배경에는 현재 마포구청이 주장하는 것처럼 ‘노점은 곧 불법’이라는 것이 구청장의 위임 사무에 대한 몰 이해에서 나온 것이라는 맥락이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19일자로 마포구청은 각각의 제안에 대해 거부의 뜻을 밝혔다. 안타까운 것은 결국 “마포구청은 아현포차 문제를 대화로 풀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왼쪽은 13일 공동 모임에서 마포구청 면담시에 제출한 사회협약 방식의 해결안이고 오른 쪽은 마포구청에서 통보한 검토 의견이다.

특히 제안에 대한 답에서 가장 특기 할 만한 부분은 ‘도로를 20~30년간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불법 시설물로 지속적인 정비 필요'라는 부분이다. 적어도 이 정도 기간이면 어떻게 이런 실질적 점용이 가능 했을지를 고려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 탓이다. 알다시피 원래 아현포차는 현재 위치에 있지 않았다. 원래 쓰레기 하치장이었던 곳을 정비하고 기존 노점을 옮긴 것이다. 또한 매 시기마다 구청에서 시행하는 관리방침에 따라 현재의 컨테이너 방식으로 정비되었다. 사실상 실질적인 점용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 덧붙여 마포구청이나 집단 민원인들이 말하듯이 노점이 곧 불법인 것은 아니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노점에 대한 도로점용허가의 기준 등을 조례로 제정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유권 해석을 보자. 마포구청은 노원구의 대책이 ‘생계형인 경우 일부 기간 내 취업지원 및 업종 변경을 유도’하는 정도라고 별 것 아닌 듯 해석하나, 이런 조치조차 마포구청은 하지 않았다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핵심은 노점을 양성화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마포구청의 의지에 달린 문제라는 사실을 모르는 척했다. 정부입법지원센터의 2012년 2월 24일자 의견제시사례(https://goo.gl/mAOkAX)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노점에 대하여 도로점용허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고, 도로의 관리 주체인 지방자치단체에서 그 도로의 점용 허가에 관한 재량권에 근거하여, 관계법령과 재량권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량 판단을 위한 기준을 조례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다.

즉, 이에 따라 영구적인 도로 점용이 아니라 이미 평균 연령 65세 이상인 아현포차의 자연퇴거를 유도하기 위해 일정기간 만 양성화해서 관리하자는 것이 사회협약적 해결 방안의 골자인데, 마포구청은 “불법 시설물임"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포구청이 불법이라고 정했기 때문에 불법인 것이지 ‘원래부터 불법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15년도 마포구청의 결산 자료를 보면, 작년 한해 동안 마포구청은 도로 사용료라는 명목으로 32억원을 수납했다. 마포구청의 주장대로 도로 위에는 사람과 차만 다녀야 한다면 도대체 32억원 이나 도로 사용료는 어디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이 이야기는 마포구가 <도로 점용조례>를 통해서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된다는 정책적 판단을 한 것이지, 상위법에서 정하지 않는 한 ‘원래부터 불법'이라는 마포구청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참고로 지난 7월 14일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제1회 갈등해결 우수사례로 “부천시 노점갈등 해결 사례"를 선정했는데, 이 방식은 노점상과의 업무협약을 통해서 진행된 것이다. 이 사례에 대한 평가야 어떻게 보던 간에, 마포구청이나 집단 민원을 제기하는 주민들이 말하는 노점은 무조건 불법이라는 주장은 ‘나는 불법으로 본다'는 자기 주장에 불과하다.

게다가 행정 스스로가 사회협약이 실효성있게 진행되도록 역할을 해야 되는 상황임에도 지역주민들의 대표성이 문제라는 투는, 도대체 마포구청장이 지난 5월 참석해 약속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지속가능한 도시 재생을 위한 업무협약>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마포구에서는 지역주민을 대표하는 구의회가 있고, 스스로 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지역주민들이 있으며, 아파트라면 입주자대표회의가, 상인들이라면 상인모임이 있다. 이들의 대표성이 그렇게도 모호하고 의심스러운 가. 마포구청이 의지가 있다면 최소한 ‘아현포차 문제 해결을 위한 공청회'라도 열어서 관심있는 지역 주민들을 모을 수도 있지 않을까?

‘불법이어서 불법’인 아현포차의 미래

아현포차에 대하여 집단적인 민원을 제기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원주민 정착률이 기껏해야 20% 내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만 그렇겠는가. 10년 넘게 서울 곳곳이 뉴타운재개발로 들썩이면서 수십년 동안 지역에서 살아왔던 원주민들이 뿌리를 뽑힌 채 이주해왔다. 그러다 보니 서울 곳곳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지역 생태계와 새롭게 이주한 주민 간의 갈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행정만 노력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서울 곳곳을 보면 오히려 행정의 무능과 무관심이 오히려 지역의 갈등 해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만약 기계적인 법적용으로 행정의 역할을 끝낸다라고 하면, 차라리 행정은 컴퓨터로 대체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행정을 하는 이유는 규정 자체가 아니라 규정을 적용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번 아현포차 강제철거의 과정에서 가장 답답하게 여기는 부분은 이 부분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 작동하는 민원의 힘이 행정을 움직인다. 여기엔 어떤 공론의 과정도 사회적 합의의 과정도 없다.

개인적으로 아현포차를 둘러싼 학부모-지역사회의 민원을 ‘집단적 이지메'로 평가한다. 수십년 동안 한자리에 있던 이들을 쫒아내는데 고작 몇 년 정도의 자연퇴거도 용인하지 못할 정도인가 싶다. 말로는 대책 없는 강제철거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맨 처음에는 아현포차가 없어지면 다른 좋은 길로 만들 수 있다고 해놓고, 이제 와선 학교 근처라 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왜 술을 파는 포차 말고도 일반 잡화나 야채를 파는 포장마차도 철거 대상인지 모호해진다. 말이 막히니 도로가 비좁아서 차가 막힌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의 주도로가 그곳이 아니라고 하니 이제는 보행로가 좁다고 한다. 그러니까 결국 무엇 때문에 아현포차를 철거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분명한 것은 “마포구청이 아현포차를 불법이라고 정했기 때문"이라는 답 밖에는 없다.

표지를 훼손한 탓에 마포구청 공무원에 의해 고발 당한 건이 검찰로 송치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가급적 정식 재판을 통해서 공무를 집행한 공무원을 직접 불러볼 것이다. 모든 표지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 절차를 지키기 않은 강제 철거 대상만 선택적으로 제거한 것이 정말 심각한 공무 훼손인지 물어 볼 것이다. 공무원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자신들이 행하는 행정 행위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잘 실감하지 못한다. 만약 마포구청 공무원들의 의도대로 위법이든 어떻든 일단 철거하고 말았다면 아현포차 이모들은 7월 한 달을 굶었어야 했을 것이다. 나중에 재판을 통해서 위법하다 판결을 얻더라도 이미 파괴된 삶의 흔적은 복원되지도 보상 받지도 못할 것이다. 그렇게 지역 주민의 집단 민원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을지도 모르고 원래 없었던 것처럼 아현포차 이모들의 삶은 지워질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인간다운 것인가? 지금도 일상적인 불안에 시달리는 아현포차 상인들을 볼 때마다 불안과 우울이 전염된다. 이 수십년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반 교육적이고 반 환경적이라고 보일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그나마 개혁적이라는 더불어민주당 구청장에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있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일 치곤 을씨년스럽다. 그래서 아현포차 문제를 정치의 틀로 가져갈 수 밖에 없다. 아현포차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아직은 불가능한 것은 없다. 이미 구청의 태도는 정해진 것 같고, 다만 집단 민원의 당사자로 언급되는 주민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여지가 있었으면 좋겠다.

김상철 2004년부터 진보정당의 당직자로 서울시 행정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아 일하고 있다. 현재는 노동당서울시당 위원장이며, 문화연대, 나라살림연구소, 예술인소셜유니온에서도 활동 중이다. <정치를 탐하다>(2014,꿈꾸는사람들), <무상교통>(2014, 이매진)이라는 책을 펴냈으며 <모두를 위한 마을은 없다>(2014, 삶창)라는 책에 참여했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노동과 인간중심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도시사회주의자'의 삶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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