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종면 전국언론노동조합 YTN 지부장의 선배인 송태엽 기자가 <한겨레21>을 통해 노 위원장에게 쓴 글입니다. 필자와 YTN노조의 동의를 얻어 전재합니다.

노 위원장. 400여 조합원의 대표이자, 불혹을 넘은 후배이지만 오늘은 그냥 이름을 부르고 싶구나. 종면아, 종면아. 노쫄면, 이 친구야.

나이 들면 여성호르몬이 많아진다는 말이 맞긴 맞나 보다. 요즘 들어 부쩍 물먹은 병아리처럼 하늘 쳐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지난 24일 저녁, 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남대문 경찰서로 돌아온 네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것을 보면서도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모른다.

잘라 말하지만 너는 죄가 없다. 도망친 적도, 감춘 것도 없고, 재범의 우려는 더더욱 없다. 도대체 공정성이 최고의 상품가치인 언론사의 사장에 대선특보출신이 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양심의 문제이지 어찌 사법적 단죄의 대상이 된단 말이냐.

▲ 노종면 지부장. ⓒYTN 노조

작년 7월 주총 날치기 사태로 YTN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때 네가 노조위원장에 출마하겠다고 나섰지. 그 때 물었다. “너 학생 때 운동했니?” “아니요. 운동권으로 앞장서진 않았지만 비겁하게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또 물었다. “구속될 각오는 돼 있니?” “예.”

평소의 너 다운 대답이었다. 자기 잇속 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앞세우고, 원칙을 중시하는 성품이 드러나 있었다. 꾀바른 것 같으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그 무언가가 네겐 있었지. 아이디어가 많고, 끈기 있게 도전해 결과를 내는 집중력도 내가 본 너의 장점이었다.

‘돌발영상’을 만들 때도 그랬지. 어느 날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일 3분짜리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혼자 수십 개의 녹화 테이프를 샅샅이 뒤져가며 말이다. “가공하지 않은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 너의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출발한 돌발영상이 후배에게 물려줄 때는 기자 세 명과 작가 세 명이 투입되는 YTN의 대표 컨텐츠가 됐지.

넌 유난히도 ‘보통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후배였다. 노태우 씨 버전의 ‘특별한 보통사람’이 아니라, 노종면 버전의 ‘소탈한 보통사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제 잘난 맛에 사는 기자 집단 내에서도 유난히 친구가 많았다. 기술국이나 그래픽팀, 영상팀 할 것 없이 너와 같이 일해 본 동료들은 너를 좋아했고, 존경했다.

너의 참사랑 현정 씨와의 결혼만 해도 그렇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10년 연애를 결혼으로 골인시켰지. 부모님이 오시지 않은 결혼식에서 네 마음도 아팠을 게다. 하지만 지금 현정 씨는 세 아이의 엄마로, 너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굳건히 서 있더구나. 게다가 부모님의 가장 사랑하는 며느리가 됐으니, 또 한 번 노종면의 마술이 통한 것이냐.

8개월 이상, 구본홍 씨의 내정단계부터 본다면 1년 넘게 지속돼온 YTN 노조의 투쟁을 돌이켜 본다. 너는 처음부터 ‘상식’을 외쳤다.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이뤄낸 암묵적 합의를 지키자고 했다. 지난 정권이 대통령의 특보를 KBS 사장으로 보내는 데 실패했으니 이번 정권도 같은 시도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거기서 더 나가지 않았다. 그 사이 김인규 씨의 자진사퇴로 KBS 사태가 봉합됐다. “KBS 공채 1기인 김인규 씨는 용퇴하는데, YTN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구본홍 씨는 왜 후배들의 목을 쳐가면서 버티고 있나.” 괴로웠지만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우리가 정파적 이해관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기억하겠지. 찾아오는 야당 인사들을 말리기까지 했다. 지금도 회사 앞에서 열리는 각종 집회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YTN이 정부 소유여서가 아니다. 우리가 객관성과 중립, 불편부당을 추구하는 언론인이기 때문이다.

▲ 현덕수 기자(왼쪽), 송태엽 기자(가운데), 노종면 지부장(오른쪽). ⓒYTN 노조

얼마 전 외국 대사관의 고위인사 한분을 만났다. 작년의 촛불사태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내놓더구나. “광우병 자체보다 국민을 납득하지 못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태도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고 이끌고 정책을 팔아야(sale)한다”고 충고했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결국 언론과의 소통에 나설 것이라고 기대한다. 언론을 통하지 않으면 국민과도 소통할 수 없다. 언론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서서 정부를 감시하도록 국민이 위임한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특정 정파에 치우쳐 한쪽 소리만 듣다보면 국민이 분열하고 나라가 혼란해진다.

▲ YTN에 붙어있는 '노종면을 석방하라' 문구가 담긴 펼침막. ⓒYTN 노조

40줄에 들어선 세 아이의 아버지요, 싸움꾼도 아닌 네가 ‘공정방송 쟁취 투쟁’의 선봉에 선 이유를 너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로 내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내 아이들이 살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언론의 공정성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일제 강점기에서, 독재와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애국지사와 민주투사들이 살해당하고, 구속되고, 핍박받으면서 이뤄낸 결과다. 우린 그런 질곡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지. 민주주의 시대에 바른 말을 하는 언론인이 구속될 일은 없다고 믿었다. 그런 우리가 바보가 아니었길 바란다.

네 말처럼 분노는 하되 흥분하진 않으려 한다. 우리에겐 아직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뉴스 한번 제대로 해보자”며 YTN의 깃발 아래 모인 선배들과 그 선배들에게 배워 ‘한국의 뉴스 채널’ 기자의 꿈을 펼쳐온 수많은 후배들이 있다. 비록 저간의 사정으로 소원해진 네 선배들도 있지만, YTN에 있는 그 누구도 동료의 부당한 구속에 눈을 감지는 않을 것이다.

동료를 차가운 감옥에 버리고 가는 조직에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노종면 위원장, 당신은 반드시 YTN의 이름으로 구해낼 것이다. 그대는 이미 명예를 얻었다. 이제 쫄면처럼 질기게, 바위처럼 단단히 버티기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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