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모처럼 기자들을 불러다 놓고 해명을 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는 모양새다. 해명이 대체로 불성실했던 데다 기존에 보도된 내용을 놓고 봤을 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성실히 조사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검찰에 가봐야 “모른다, 아니다”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니 안 하느니만 못한 해명이었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제 시선은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이 이뤄질 것인지 여부에 쏠리지만 그럴 기미가 없어 우려된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조선일보 21일치 1면, 3면, 4면, 5면

‘전선’의 선두에 서있는 조선일보는 21일 신문의 주요 면을 모두 우병우 민정수석 해명에 대한 반론격의 기사로 채웠다. 그야말로 ‘전쟁’ 수준이다. 애초에 우병우 민정수석이 처가의 부동산 매매에 전혀 관여한 일이 없다고 했으면서 2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당일 계약서를 작성하는 자리에 함께했다고 밝힌 것부터가 문제고, 그 자리에서 한 일에 대해 “장모님을 위로해드린 게 전부”라고 언급한 것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해명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봐도 상대방인 넥슨 쪽이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를 둘이나 데려왔는데, 잘 나가는 검사 사위가 옆에서 위로만 했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그러니 언론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해명을 전하면서 ‘둘러댔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거래 현장에 우병우 민정수석이 직접 나왔음에도 김정주 NXC회장이 “원래 땅 주인이 누군지 몰랐다”고 설명한 것 역시 사리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긴 마찬가지다. 또, 거래를 중개했다는 중개인이 사실은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은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조선일보가 4면에 보도한 이 거래 이후 우병우 민정수석 처가의 부동산 투자 행보는, 당사자들이 넥슨과의 부동산 거래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드러내고 있다.

넥슨과의 부동산 거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의혹들 역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다. 조선일보는 이날 지면에 우병우 민정수석이 민정비서관으로 재직하던 시절 처제들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농지를 구입해 소유했다는 의혹도 보도했다. 또, 우병우 민정수석의 막내처제가 딸을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위조 여권을 사고, 이 사실이 들통 나 법적처벌을 받자 아예 국적을 바꾸는 등의 비상식적인 행위를 했다는 의혹 또한 보도했다. 애초 한겨레가 단독 보도한, 우병우 민정수석의 아들이 의무경찰로 입대해 이른바 ‘꽃보직’에 배치됐다는 의혹 역시 이날 조선일보 지면에 보도됐다.

이렇게 의혹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만한 태도로 해명에 임했다는 것도 문제다. 조선일보는 이날 <靑 실세가 ‘결백’ 큰소리치는데 檢 수사 제대로 하겠나> 제하의 사설에서 진경준 검사장 관련 사건을 언급하면서 “국민이 지금 우 수석에게서 가장 먼저 듣고 싶은 말은 검증 실패에 대한 사죄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뜻밖에 언론을 향해 ‘그만 들볶으라’는 식의 반박부터 나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썼다.

또, 조선일보는 우병우 민정수석이 자신들을 포함한 언론사를 고소했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를 할 수밖에 없는데, 검찰 조직 전체를 관장하는 민정수석이 의혹을 강도높게 부정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임기는 1년 반 밖에 남지 않았는데 민정수석이 수사에 휘말려 당면한 개각 인선 등 현안 처리를 몇 달씩 접고 있을 수도 없고, 의혹을 그냥 덮어버릴 수도 없으니 대통령이 결단을 해야 한다는 거다.

실제로 전날 우병우 민정수석의 태도는 여러 측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민정수석을 사퇴하고 수사를 자청해도 모자랄 판에 무조건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만 최소한의 해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니 진보나 중도적 논조를 가진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보수언론들까지 일제히 우병우 민정수석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21일자 중앙일보(좌),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이날 지면에 우병우 민정수석이 과거 변호사 자격으로 수임했던 사건이 1심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청와대에 입성한 이후 치러진 2심 재판에서는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항소심에서 검찰은 수사 검사가 재판에 참여하지 않고 서울고검 검사 한 명이 맡는 등 석연치 않은 공판관리로 일관했다”고 써 의혹을 제기했다. 독자 입장에서는 변호사 시절 수임한 사건에 대한 판결에 대해서도 이럴 정도니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 정도는 무력화시킬 게 뻔하다고 판단할 만한 내용의 보도다. 동아일보는 <우병우 민정수석 해명 듣고 나니 의혹 더 커진다> 제하의 사설에서 우병우 민정수석 해명 전반을 언급하고 “우 수석이 사달라고 하지 않았더라도 넥슨이 우 수석 측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산 것이라면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가 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하며 자진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동아일보의 논조를 최근 화제가 된 영화의 대사를 빌어 표현하자면 ‘회사의 방침이 분명한’ 걸로 보인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박 대통령, 우병우 사퇴시켜 제대로 수사받게 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여러 의혹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 조기 레임덕을 자초하고 있다면서 우병우 민정수석을 두고 “그가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에서 사정을 총지휘하는 자리에 있는 한 어떤 형태의 수사로도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이 의혹을 가장 소극적인 태도로 보도한 신문 중 하나다. 이날도 중앙일보는 우병우 민정수석 관련 의혹보다는 진경준 검사장과 김정주 NXC 대표와의 부적절한 거래에 대한 보도를 1면 톱에 배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부담스러운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린 결과라는 추측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중앙일보마저도 우병우 민정수석의 사퇴를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대통령의 선택만 남은 정국으로 보이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제때 우병우 민정수석을 경질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은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를 ‘시한폭탄의 뇌관’에 비유하면서 이번 주 내에 사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인사의 상식을 따르는 사례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엉뚱하게도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칼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1일자 동아일보 35면 '박제균의 휴먼정치'

동아일보는 이날 지면에 박제균 논설위원이 쓴 <대통령의 타이밍>이란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박제균 논설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때도 ‘눈물의 사과’를 33일이 지난 후에야 했고, 4·13 총선에서 기록적 참패를 당하고도 한 달이 지나서야 소폭의 청와대 인사를 했고, 그마저도 현기환 정무수석은 남겼다가 한 달 뒤에야 물러나게 했으며, 개각은 아직도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공직자에게 불이익을 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시기를 놓치지 말고 권력을 치부에 악용한 진경준 검사장 비호 의혹을 받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교체해야 하는 이유”라고도 썼다. 테러조직 폭격을 오늘할까 내일할까를 두고 고민한 일에 대해 “지나고 보니 오늘 결정해서 해결할 확률이 70%만 돼도 나중에 결정해 확률을 100%로 올리는 것보다 더 낫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까지 인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날 일정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걸로 시작됐다. 북한이 울산과 부산 등을 대상으로 핵탄두 탑재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걸로 분석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위기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과 정부가 총력을 다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정치공세나 국정 흔들기는 자제돼야 한다고 본다”는 청와대의 해명이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우병우 민정수석 등 관련 의혹에 대해 ‘정면돌파’를 시사하는 발언을 꺼내놨다.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누수를 스스로 재촉하겠다는 데 누가 말릴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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