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10시,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는 본래 안건인 ‘디지털미디어환경변화에 대한 기조발제’보다 강상현 위원장(연세대 교수·민주당 추천)이 지난 25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여당 추천위원들은 강 위원장의 글에 대해 서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하며 강 교수의 사과를 촉구하느라 회의의 절반 이상이 지나갔다.

강 위원장은 <‘미디어국민위’ 훼방놓는 한나라> 칼럼에서 회의 공개 여부, 여론조사 실시 등에 대해 부정적인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에 대해 “‘국민위’ 운영과 관련하여 비공개, 비조사,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는 여당 쪽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정말 성의도 없고, 예의도 없고, 정의롭지도 않다”며 “실은 앞에 있는 TV 카메라가 무섭거나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추천 정당이나 용기있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두려운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 회의 때 “보도진이 앞에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못할 것 같다”고 했던 이헌 위원(시변 변호사·한나라당 추천)은 “내가 피해자라고 느끼고 있다. 위원회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외부 언론에 이렇게 공격적으로 기고를 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말 너무하신다. 우리에 대해 국민앞에 성의없다고 폄하하는 사람의 얼굴을 더이상 보고싶지 않다”며 회의 시작 20분만에 퇴장했다. 이 변호사는 MBC 취재진을 향해 “찍지 마세요”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이헌 변호사가 10시 20분경, 퇴장하는 모습 ⓒ곽상아
“위원회를 폄하하고 동료 위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필자가 해명을 하고, 사과를 하지 않으면 회의가 원만하게 진행되기 어렵다”(김우룡 위원장) “마치 잉여인간들이 모여서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는 위원회로 폄하하고 권위를 실추시켰다. 공개적으로 해명하고 국민 앞에서 사과하라”(김영 위원) “정의롭지 못한 사람과 어떻게 회의를 하느냐”(황근 위원) 등 불만이 계속되자 강상현 위원장은 “출범부터 5차례의 운영소위와 2차례의 전체회의를 거쳐오면서 내가 느꼈던 평가를 극히 제한적으로 말씀드린 것이다. 전체회의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며 “오해의 소지를 제공했다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 이헌 변호사 퇴장 이후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은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5분 정회를 요청했다. ⓒ곽상아
김우룡 위원장(한양대 교수·한나라당 추천)은 강상현 위원장의 발언 도중 회의장을 나가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5분 정회 후 위원들은 본안인 디지털 미디어환경 변화에 대한 기조발제를 진행한 후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1시간30분 가량 진행된 기본 발제는 그동안 각종 토론회를 통해 발표된 위원들의 기본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의 수준이었으며, 이에 대한 간단한 질의응답이 진행된 이후 다시 2라운드가 시작됐다.

▲ 5분이 지나도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이 돌아오지 않아 강상현 위원장이 혼자 앉아있는 모습 ⓒ곽상아
▲ 15분이 지나자 김우룡 위원장 등 한나라당 추천위원들이 자리에 돌아왔다. ⓒ곽상아
박경신 위원(고려대 교수·선진과창조의모임 추천)은 사과를 요구하는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에 대해 ‘검열’이 될 수도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박 위원은 “강 교수의 글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위원회 출범 초기에 상대측에 관한 의견을 너무 진솔하게 얘기하면 협의의 정신에 훼손이 갈 수도 있다”면서도 “강 위원장이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것까지 이렇게 제약하기 시작하면 실제로는 검열이 될 수 있다. 강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은 자신의 견해차를 다른 언론에서 충분히 말하면 된다. ‘사과하라’는 것은 의견을 바꾸라는 것인데 양심에 대한 침해나 다를 바 없다. 이는 위원장 자격 논란을 불러오거나 회의 속개여부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창현 위원(국민대 교수·민주당 추천)은 “의견을 표명한 것에 대해 태도를 바꾸라는 요구는 좀 너무한 것 같다. 강상현 위원장이 태도에 대한 변화의 생각이 없는 만큼 더이상 이 문제로 시간을 허비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민법적 명예훼손 절차를 밟고 이 문제는 더이상 회의에서 재론하지 말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최홍재 위원(공언련 사무처장·한나라당 추천)과 황근 위원(선문대 교수·한나라당 추천) 각각 “강 교수의 글이야말로 나의 양심을 침해했다” “나의 명예가 가장 훼손당한 것 같다. 미디어에 관한 철학이 정의롭지 않다면 소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내 삶의 방식이 정의롭지 않다고 한 것이라면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서 회의를 할 수 있겠느냐”고 따져물었다.

윤석홍 위원(단국대 교수·한나라당 추천)도 “강상현 위원장의 글을 보고 내 조교는 연구실 서재에 있는 강 교수의 책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 정도로 내 제자가 상처를 받았다.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분명하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강상현 위원장은 “거의 청문회 수준으로 아무말도 못하고 공격을 당하고 있는데 해명할 기회를 달라. 유감의 뜻을 다시 표명하겠다. 전체회의에 참석한 분들을 매도할 의사는 전혀 없었다”며 “다만 여러차례 회의를 거쳤음에도 회의 공개, 여론조사 등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채 회의가 여기까지 왔고, 대다수 신문들이 ‘공방’ ‘공회전’으로 우리 회의를 표현하는데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회의를 공개하고, 국민에 대한 여론조사도 실시하는 등 적극적이고 성의있는 태도를 보였다면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분명히 반대를 해왔다. 우리 위원회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개인적으로 안타까워서 드린 말씀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강 위원장은 “‘예의가 없다’고 표현한 것은 도덕, 정의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예의를 말하는 것이었다.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그런 행동들이 올바르지 않다는 의미로서 나 개인의 소신”이라며 “내 글에 대한 불만들을 이해하지만 이렇게 회의에서 이구동성으로 모는 것 자체가 자신들을 추천한 정당과 강하게 동일시해서 그러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한편, 공언련 사무처장 출신인 최홍재 위원은 미디어위원회에 관한 언론보도를 조목조목 지적해 “여기는 방통심의위가 아니다”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최 위원은 30일까지 MBC의 보도책임자가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최 위원은 “미디어오늘의 경우 나름대로 편집권을 발휘하면서도, 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에게 회의 내용을 풍부하게 전달했다. 위원으로서 감사드리고 싶을 정도”라며 “하지만 일부 언론은 위원회가 여야 대리전 양상을 보이는 것처럼 보도했다. 그들의 편집권을 인정하지만 약간의 우려를 표명하고 싶다. 우리는 소신과 양심에 따를 뿐 한나라당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위원은 미디어위원회가 회의 공개 여부를 놓고 대립했음을 보도한 3월 20일자 MBC <뉴스데스크> ‘초반부터 평행선’에 대해 “우리는 많은 진지한 논의를 했는데도 MBC는 마치 회의공개만 가지고 싸우다가 끝난 것처럼 보도했다. 위원들의 인격을 모독했다”며 “최선규, 이헌 위원에 대해 명예훼손을 한 것을 그대로 둘 순 없다. 보도책임자의 사과를 촉구한다. 다음주 월요일까지 사과를 하지 않으면 화요일 열리는 운영소위에서 다시 거론하겠다”고 말했다.

최 위원은 21일자 한겨레 사설 ‘미디어위원회 회의 반드시 공개해야’의 “김대중 정부 당시 방송법 개편을 논의한 방송개혁위원회의 전례에 비춰 보더라도 공개가 비효율적이라는 한나라당 추천 위원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당시 방개위는 모든 회의를 속기록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오히려 위원들이 추천 정당을 넘어 국민들 앞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는 대목을 지적하며 “우리도 카메라만 문제삼았을 뿐 어느 누구도 속개록 공개에 대해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공개수위에 대해 논의를 해보자는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최 위원의 ‘언론보도 비평’이 이어지자 사회를 맡은 강상현 위원장은 “그만 하시라. 여기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된다. 방송 뉴스, 신문 칼럼을 일일이 따지면 방통심의위보다 더 엄격해보인다”고 지적했다.

류성우 위원(언론노조 정책실장·민주당 추천)은 “위원회에서 보도의 내용까지 통제하는 것은 미디어위원회발 보도지침이다. 위원회는 충실하게 회의를 하고 언론사는 그들의 관점에서 취재하고 보도하면 된다”며 “특정 언론사에 대한 개인적 불만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대항하시고 더이상은 미디어위에서 개인적 불만을 얘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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