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몽골 순방에서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이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공천에 전혀 개입한 적이 없다며 발뺌하던 청와대가 시쳇말로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청와대 입장은 발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직 청와대 정무수석이 대통령이 속한 여당이자, 국회 원내 제1당의 공천에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친박계 '실세' 윤상현 의원, 실질적인 '리더' 최경환 의원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청와대의 핵심 현기환 전 정무수석이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전횡을 부렸다.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현기환 전 수석은 새누리당 총선 예비 후보자였던 김성회 전 의원과의 전화 통화에서 "가서 (서청원 전) 대표님한테 저한테 얘기했던 거 하고 똑같이 얘기하세요. 대표님 가는 데 안 가겠습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물어보세요"라며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에 불출마할 것을 종용했다.

현 전 수석은 김 전 의원에게 "저하고 약속을 하고 얘기한 거는 대통령한테 약속한 거랑 똑같은 거 아니예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복잡해지는지 압니까. 길어져 봐야 좋을 것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때 그렇게 하세요. 바로 조치하십시오. 바로, 진짜로 복잡하게 만들지 마시고요"라며 서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하지 않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과의 약속이 대통령과의 약속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뜻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이 다시 확인하려 하자 "정말 이런 식으로 합니까? 서로 인간적 관계까지 다 까면서 이런 식으로 합니까? 그럼 저한텐 한번 해본 소리예요? '서청원 전 대표 가는 지역엔 안가겠다. 그건 약속한다' 저한테 그랬습니까, 안 그랬습니까?"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현기환 전 수석은 "사람이 일하다 보면 여러 차례 고비가 있고, 딱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고, 판단 제대로 하시라고요. 바로 전화하세요. 오늘 바로 하세요. 아니 생각할 게 뭐가 있습니까?"라고 윽박질렀다.

문제는 이 전화통화가 현기환 전 수석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직하던 시절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총선 전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과 현 전 수석의 비밀 회동 의혹이 세간에 일자, 공천 개입은 절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당시 현직 청와대 정무수석이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강력히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입김이 새누리당 공천에 작용했다는 의혹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개인이 통화한 것일 뿐"이라며 "현기환 전 수석 본인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선긋기를 시도했지만 어디까지나 상황을 바꿀 수 없는 변명에 가깝다.

이번 청와대·친박계 공천개입 논란의 당사자들은 공통적으로 대통령을 언급하고 있다. 현 전 수석은 "나와의 약속이 곧 대통령과의 약속"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윤상현 의원은 "내가 대통령의 뜻을 안다"고 했으며, 최경환 의원은 대통령의 뜻이냐는 질문에 "그럼, 그럼"이라고 답했다. 이 인사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친박 중 친박으로 대접받고 있다.

"공천 개입 절대 아니다. 제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던 윤상현 의원. "저는 최고위원은커녕, 공관위 구성과 공천절차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었던 평의원 신분"이었다던 최경환 의원. 현기환 전 수석과 이한구 공관위원장과의 비밀 회동 의혹에 절대 공천 개입은 없다던 청와대. 지금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 박근혜 대통령은 몽골을 방문해 ASEM 정상회담에 참석한 후 귀국해 20일까지 모든 일정을 비우고 휴식에 들어간 상태. 이번에도 늘 그래왔듯이 악재가 터졌을 때 대통령 본인은 조용히 뒤로 숨어 관망하는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차원에서의 공천 개입 의혹까지 불거진 이상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는 게 올바른 처신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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