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노트북, 에어컨, 냉장고 등을 고치는 엔지니어는 삼성전자 직원이 아니다. 그 계열사인 삼성전자서비스 소속도 아니다. 삼성은 각 지역에 있는 서비스센터를 하도급으로 내준다. 라두식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말대로 “쉽게 해고할 수 있고 낮은 임금만 줘도 되고 사용자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삼성뿐만 아니라 티브로드, 씨앤앰(현 딜라이브),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현장도 똑같다. 유니폼에 대기업 마크가 떡 하니 붙어 있는데도 말이다.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바지사장들도 만족하고, 실적만큼 급여를 더 받을 수 있으니 일부 노동자들도 큰 불만이 없다. 하도급업체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 핵심적인 현장 몇 곳의 업체를 없애거나 바꾸면 노조의 요구안을 고용안정 정도로 최소화할 수 있고, 노조가 파업이라도 한다면 대체인력을 투입하면 되고, 협력사협의회나 한국경영자총협회를 통해 시간을 끌다가 호의를 베푸는 식으로 문제를 풀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간접고용이 유행하는 이유는 뚜렷하다.

이 노동자들은 노조 설립부터 매순간이 ‘투쟁’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드는 것부터 힘들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따르면 노조 설립 3년 동안 노동조합이 있는 센터 13곳이 폐업했다. LG유플러스 강북서비스센터는 현장기사들을 개인사업자로 전환시키는데 집중했고 결국 조합원 단 한명을 제외한 기사들은 모두 사장님이 됐다. 비조합원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 지금 재벌 대기업의 노조 대응 전략이다. “노조하면 손해”라는 말은 사측의 노조 대응 매뉴얼에 있는 대화법이 아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이 말은 ‘현실’ 그 자체다.

▲7월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지하1층 소회의실에서는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진짜사장재벌책임공동행동,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기술서비스노동자공동투쟁본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박홍근 송옥주 의원이 주관했다. (사진=미디어스. 누르면 다른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노조를 만들어도 교섭상대가 없고, 파업을 해도 효과가 없다. 김진억 희망연대노동조합 나눔연대국장은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라면서 교섭을 거부한다. 외주업체는 권한이 없어 원청 눈치만 본다. 경총은 중간에서 개입해 자신이 정한 (재계의) 가이드라인을 관철하면서 교섭을 어렵게 한다”며 “노조가 파업을 하면 원청은 도급계약 위반을 이유로 대체인력을 투입한다. 쟁의권이 없는 셈이다”라고 꼬집었다.

이 노동자들의 싸움은 그래서 때때로 극단적이다. 라두식 지회장은 “결국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사용자에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없다. 파업이 무력하니 언론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타격하는 것 말고는 싸움의 수단이 없게 된다. 그러니 더 선정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는 강한 유혹에 내몰린다. 고공 농성, 노숙 농성, 점거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이 극단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현행법이 보호하는 단체행동권이 무력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원청인 재벌 대기업 입장에서는 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유지되는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이 노동자들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할지, 대주주를 끈질기게 찾아다닐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전광판과 다리 위에 오를지, 거대정당인 더불어민주당마저 견인해낼지 몰랐을 것이다. 아무리 노동을 ‘견딜 수 없는 지점’까지 옥죄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저항할 줄은 상상을 못했을 터다.

노동 대 자본. 조금씩 기울기가 맞춰지는 중이다. 경제위기라는 특수한 상황,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노동자 내부의 격차,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여성‧고령층‧이주민을 값싸게 활용하는 제도들이 이 같은 움직임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가장 중요한 동력은 바로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들의 싸움이다. 시민들은 위험을 외주화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자본의 모습에 분노하고, 자신을 ‘을’과 ‘99%’로 호명하며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토론회 포스터 (사진=미디어스)

이 노동자들이 최근 싸움의 강도를 높였다. ‘기술서비스노동자공동투쟁본부’라는 조직을 만들어 함께 싸운다고 한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다 같이 모여 서울 명동 한복판과 전북 전주에 있는 티브로드 해고자들의 문제부터 원청 사용자의 교섭 의무화, 대체인력 투입 금지, 업체 변경시 고용‧근속‧단협 승계 같은 노동법 개정의 문제까지 풀어보겠다고 한다. 대공장 중심의 민주노총의 변화가 확실히 감지된다. 20대국회 야당들은 19대 때보다 적극적이다.

문제는 언론은 아직 간접고용 문제에 상식적인 수준의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광고주인 대기업을 대신해 노조와 시민단체를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낸다. 반올림에 대한 경제지들의 비난, 언론의 조선소노조 두들겨패기… 오늘도 언론은 기업의 하청업체마냥 “노조와 시민단체 때문에 한국경제가 흔들린다”고 선동한다. 운동장의 기울기가 변하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말이다. 언론은 이제라도 노동을 옹호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독자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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