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의원(왼쪽)과 윤상현 의원이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친박계 '리더' 최경환 의원과 '핵심' 윤상현 의원이 지난 4·13총선 예비후보 공천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경기 화성 갑에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성회 전 의원에게 "내가 대통령 뜻을 안다"며 "경선하라고 해도 우리가 다 만든다"고 주장했다. 최경환 의원 역시 김성회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이 세상을 무리하게 살면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며 사퇴를 종용하는 발언을 했다.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친박계의 공천 개입은 경악스럽기 짝이 없다. 민주주의 국가의 공당, 그것도 대통령이 속한 국회 원내 제1당의 공천이 정정당당한 경선이 아닌 친박계의 입맛대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충격적일 따름이다. 심지어 공천 개입의 주인공 최경환, 윤상현 의원은 각각 4선과 3선을 역임한 중진의원으로 공천 절차를 모를리 없는 인물들. 지금까지 새누리당의 공천이 일부 정치세력에 의해 밀실에서 은밀하고 강압적으로 이뤄져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번 공천에는 서청원 의원이라는 거물까지 연루돼 있다. 김성회 전 의원이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경기 화성 갑은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 현재 원내 최다선인 8선에 친박계의 '맏형'이자 '정신적 버팀목'으로 평가 받는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를 사수하기 위한 친박계 실세들의 명백한 공천개입이었던 것이다.

윤상현 의원은 서청원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한 김성회 전 의원에게 "친박 브랜드 '친박이다. 대통령사람이다' 서청원, 최경환, 현기환 의원 완전 핵심들 아냐"라고 말해 친박에 척을 지면 새누리당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고, 최경환 의원은 "감이 그렇게 떨어지면 어떻게 정치를 하나"라며 서청원 의원을 위해 공천 경쟁을 포기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더 좋은 '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황당한 것은 전횡을 저질러온 친박계가 또 다시 새누리당의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친박계는 8·9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박 후보가 난립하자 서청원 대표론을 주장하며 친박계 교통정리를 시도했고, 새누리당 전당대회 룰에 '컷오프'를 도입해 후보 수를 줄이기 위한 작업을 마쳤다. 아울러 총선백서를 발간해 새누리당의 지난 총선 패배를 친박계의 전횡이 아닌 친박계와 비박계의 양비론으로 몰아가면서 여론몰이를 시도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친박 공천개입 사건으로 이번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서청원 의원이 결국 19일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했고, 당권 주자로 나선 비박계 의원들은 친박계의 공천개입을 '불법'으로까지 규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친박계 후보로 분류되는 한선교 의원마저 "몇명 되지도 않는 소위 친박 핵심들의 전횡을 지켜보면서 이제 정말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한 의원은 "탈당파 의원 7명 받아들일 때 찝찝한 사람은 윤상현 의원이었다"고 콕 찝어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청와대 연루 여부다. 윤상현 의원은 김성회 전 의원과의 전화통화에서 분명히 "내가 대통령의 뜻을 안다"라고 말을 했고, 최경환 의원 역시 대통령의 뜻이냐는 김 전 의원의 질문에 "그럼, 그럼"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임을 강조했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청와대도 펄쩍 뛰었다"며 두 의원의 돌발행동임을 강조해 선 긋기를 시도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공천 개입 의혹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서청원 의원에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비박계 한 중진의원이 "친박계 의원들이 급속히 뭉쳐 서청원 의원에게 출마를 간청하고 최경환 의원이 불출마 했는데, 청와대에서 여론조사를 하고 서청원 의원 출마로 정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의원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새누리당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러한 박 대통령이 과연 새누리당의 총선 공천 과정에 관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정병국 의원은 "계파패권주의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어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친박들은 계파 해체를 선언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병국 의원의 말대로 지금이라도 전횡을 일삼는 친박계가 해체되는 게 옳은 일인 것 같다. 아니다. 이제 친박은 쪽박의 시간에 머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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