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두 달전 용산참사가 일어난 용산 4지역의 한 건물 안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그들을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철거를 앞둔 건물 특유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보인다. 먼지 수북한 의자들, 빛바랜 액자 속 사진, 회색빛 가득한 공간을 지나 한 켠에 도달하니, 멀쩡하고 아늑한 장소가 나타난다.

책상이 놓여있고, 몇 사람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인터넷을 하고 있다. 한 청년이 “불시로 나타나는 ‘용역들’이 깨놓은 유리창을 말끔이 달았다”고 솜씨를 자랑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난로를 준비 못했는데 갑작스런 추위가 왔다”며 “일기예보를 보니 날이 곧 풀린다고 했다”고 멋적게 웃으면서 의자를 건넨다.

▲ 25일 오후 용산 철거지역 인근건물에서 '촛불미디어센터' 준비모임이 한창이다. ⓒ정영은
모인 사람들은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부터 거리를 지킨 익숙한 얼굴들이다. 1인 미디어로, 인터넷 생중계로, 오픈 스튜디오로, 거리 곳곳에서 현장을 기록한 ‘촛불 미디어’들이 용산참사 현장 건물에 모여든 이유는 무엇일까.

“회의 시작합시다~!”

이날 회의의 제목은 ‘촛불미디어센터 준비모임’이다. 촛불미디어센터는 촛불들이 용산참사 현장에 대해 직접 뉴스를 제작하고, 미디어교육도 하는 ‘사랑방’ 공간을 뜻한다고 한다.

손을 호호 불고 김을 내뿜으며 머리를 맞댄 이날 준비모임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예전 평택 ‘대추리 싸움’ 때 ‘황새울 방송국’ 처럼, 철거민들의 방송국을 열자는 제안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영어 뉴스 제작, 인터넷 라디오 방송, 스튜디오 설치, 영상물 편집실 정비, 정기 상영회, 촛불뉴스 제작, 정기 상영회에다 경찰의 폭력활동(?)을 감시하는 ‘카메라 출동’까지…. 즉석에서 자원자가 나오기도 했고, 척척 섭외를 나눠 맡았다.

거의 매일 현장을 찾는다는 한 독립영화 감독이 “낮이나 새벽이 문제”라고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카메라들이 보이지 않는 시간대에 집회가 없거나 한산하면 철거가 강행된다는 소리다. 촛불미디어센터가 지킴이들의 공간으로 자리잡기 위해 ‘24시간 운영’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 용산 참사’가 발생한지 두 달이 넘은 25일 오후 서울 용산 4구역의 참사 건물 앞.ⓒ정영은
‘촛불 미디어센터’ 설치 논의는 한 달 전쯤 ‘가칭 촛불시민연석회의(이하 촛불시민연석회의(가))’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2월말 창립한 이 모임에서 용산 현장을 기록하는 촛불 미디어들을 지원하기 위한 거점지를 마련하자는 제안과 함께, 용산참사투쟁에 모이는 많은 촛불과 영상제작자, 미디어활동가들의 사랑방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용산범대위와 전철연 쪽에도 제안을 했고, 함께 하기로 하면서 ‘촛불시민연석회의(가)’는 즉각 행동에 들어가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인 60만원으로 아직 철거되지 않은 건물 주인의 허락을 받고 입주(?)해 인터넷을 설치하고 깨진 유리창을 갈아끼우고 컴퓨터 책상을 들여놓았다.

연석회의에서 촛불미디어센터 준비 실무를 맡은 한 촛불 관계자(?)가 ‘용산 사랑방’의 취지를 설명해줬다.

“용산참사가 벌써 두 달을 넘어가고 있어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고 철거민들과 대책위 활동가들은 수배/구속되고 있지요. 얼마전부터 용산4구역에 대한 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언론과 여론의 관심은 점차 줄어드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유가족들과 용산4가 철거민, 촛불들과 여러 활동가들이 꾸준히 싸우고 있습니다. 이제 작년에 그 누구보다 탁월하게 ‘직접미디어행동’을 펼쳤던 많은 촛불들이 용산 참사현장에 다시 모여 철거민들과 함께 지켜가야겠다는 마음이 모인 결과가 ‘촛불미디어센터’에요.”

예전에도 미디어운동 진영에서는 특정 이슈와 관련한 미디어행동 프로젝트는 있어왔다. 지난 2005년 11월 부산 아펙 반대집회와 그해 12월 홍콩 WTO 반대 시위 당시 미디어활동가들은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해 ‘아펙반대/WTO 미디어문화행동’을 결성해 스튜디오에서 인터넷으로 실시간 집회 중계방송과 동영상 제작 등을 했다.

또 2006년 6월부터 2007년 4월까지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와 관련해 미디어활동가들은 시민사회단체 지킴이들과 함께 평택 강제철거 현장을 지키며 인터넷 ‘황새울 방송국 들소리’를 통해 방송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단체들과 미디어활동가들만의 활동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촛불미디어센터’는 보통 사람들의 미디어 접근과 활용을 위해 시민사회단체가 아닌 ‘대중들이 움직여 만든 미디어센터’라는 새로운 개념의 시도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미디어활동가들은 촛불들을 지원하고 함께 작업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의 미디어로 현장을 기록할 수 있는 ‘사랑방’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달 안 개관을 목표로 ‘때 빼고 광 내며’ 준비에 한창인 촛불미디어센터의 아래층에는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가 문화 예술인들과 함께 문화공간을 꾸미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 촛불미디어센터 준비 모임에서 경찰의 강제철거 다음으로 꼽는 걱정거리인 ‘운영 비용’ 문제는 안팎의 후원금을 받아 충당하는 방안 등이 논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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