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정치재개가 기정사실화되었다. 두 달 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사실상 대선무대에 등장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인물이 나올지 모르지만 여야 모두 대통령 후보군이 조금 더 풍성해졌다. 바야흐로 대선 정국이 시작된 느낌이다. '1년 반이나 남았는데 벌써'하는 반응도 있겠지만 꼭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매우 크다. 나라를 흥하게 할 수도 있고, 망하게 할 수도 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혹독하고 엄정한 검증을 거치는 게 옳다. 대선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고, 국민들은 잘 알지도 못한 채 이미지만 보고 선택하는 일은 나라를 위해서나 정치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미테랑평전」 서문에 이렇게 썼다.

"비전, 카리스마, 경영능력이라는 세 가지 자질을 모두 갖춘 정치인은 거의 없다. 첫 번째 자질만 갖춘 정치인은 일반적으로 모호한 이론가다. 두 번째만 갖춘 정치인은 위험한 선동정치인이다. 세 번째만 갖춘 정치인은 상상력이 없는 보수정치인이다."

그는 이어 자신이 보좌했던 미테랑 대통령이 세 가지 자질을 모두 갖추었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세계 속의 역할에서 프랑스를 총체적으로 구현했다고 자랑스럽게 평가했다. 그의 자부심이 부럽다. 2017년의 좋은 선택을 위해 아탈리의 기준을 참고해 보자.

한 후보의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은 그의 과거 업적을 평가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현대건설 사장과 서울시장으로 거둔 성과가 많은 보탬이 되었다. 하지만 집권 후 성과(performance)를 보면 이게 꼭 좋은 방법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어쩌면 과거 업적조차도 이미지만 전달되었지 엄격한 분석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이번 대선에서 분식된 업적을 주로 내세우는 후보를 경계해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카리스마는 사람들을 널리 끌어당기는 힘이다. 국민을 설득하고, 통합하고,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야하는 대통령의 과제를 생각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자질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의 역량을 한 곳으로 모으고, 산업화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힘은 강압만은 아니었다. 97년, 우리가 경제위기에서 재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이라는 카리스마적 대통령의 걸출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지금 IMF위기를 능가하는 경제위기가 목전이고, 사드 배치 분란에서 보듯 한반도 평화가 심각한 위협에 처해있다. 국론과 국민적 역량을 하나로 모을 카리스마적 대통령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필요하다.

시인의 핵심 덕목은 감수성이다. 시적 감수성이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남들보다 먼저, 더 예민하게 느끼고 이를 조탁한 언어에 담아 전달하는 것이다. 위대한 정치인이라면 시인 못지않은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고통을 몸으로 느끼고, 시대정신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후각을 지녀야 한다. 이와 같은 정치적 감수성이 남들보다 먼저 나라의 미래를 보는 힘이고, 그가 본 길로 가자고 제시하는 것이 곧 정치적 비전이다.

일본 정치의 풍운아 오자와 이치로는 자신의 '보통국가론'에 입각해 나눠먹기 정치의 핵심인 중선거구제를 소선구제로 뜯어고치고 마침내 자민당 장기집권을 무너뜨렸다. 한일 양국을 통틀어 그런 수준의 비전과 실천을 결합한 인물은 흔치않다.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합의'는 레이건 이전까지 미국을 이끄는 기본 정신이었다. 스웨덴 총리 페르 알빈 한손의 '국민의 집'은 국가의 의미를 재정의했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최근 부패시비로 명성이 바랬지만 브라질의 룰라 전대통령은 경제성장과 함께 그의 비전인 '빈곤과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지만 죽산 조봉암은 우리 정치사에서 거의 최초로 정돈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한 인물이다. '책임 있는 혁신정치, 수탈 없는 계획 경제, 민주적 평화통일'은 오늘의 관점에서 보아도 너무나 탁월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유세, 향토예비군 폐지 등의 혁신적 대선 공약으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대중경제론'과 '4대국 안정보장론'과 같은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역구도 타파'와 '반칙없는 사회'는 그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참으로 매력적이지만 나라 전체를 미래를 담기에는 조금 부족했다. 손학규 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은 언론과 식자층의 상찬에 비해 일반 국민들의 폭발적 관심을 얻지는 못했다.

갈수록 대선 후보간의 경쟁은 격화될 것이다. 내용을 갖고 하는 경쟁이라면 후보간 경쟁은 치열할수록 좋다. 지금 거론되는 대선 후보군의 수가 적지 않지만 다 고만고만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보여주는 내용이 아직은 빈약하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짧은 기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서 경영능력을 입증하기는 어려우므로 후보들 입장에서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신으로부터 특별히 부여받은 재능'이라는 본뜻처럼 카리스마는 타고난 것이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감내하고 가는 수밖에 없다.

남은 것은 비전이다. 대선 후보들이 더 집중적으로 경쟁해야할 부분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비전을 가다듬는 일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본 미래를 선포하는 비전선포자들이다. 선지자들의 비전은 신비체험 즉 신과의 교류에서 나왔다. 정치인의 비전은 민중과의 교감에서 나와야 한다. 민중이야말로 시대정신의 담지자들이다. 불평등과 빈곤에 고통 받고, 독점과 배제, 특권과 부패에 분노한 국민 속으로 들어가 남보다 예민하게 느끼고, 남보다 먼저 공감한 자만이 국민들을 감동시킬 비전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국민의 선택을 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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