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전체회의 결정으로 SKT의 CJ헬로비전 인수가 결국 무산됐다. ‘장고(長考) 끝에 나온 악수(惡手)’로 보기엔 미심쩍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기업 결합 심사 기준을 결정하는 것은 공정위의 고유권한’이라는 주장만으로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송 관련법들을 모조리 무시하는 게 되는 탓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유료방송 시장 기준이 단일하게 통일된 게 지난해 3월, 5월의 일이다. ‘각 사업자는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IPTV), 종합유선방송(SO), 위성방송을 합산한 전체 유료방송사업 가입자 수의 3분의 1을 초과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내용이 IPTV사업법 제13조 제1항, 방송법 제8조 제16항, 17항에 포함됐다. 각각의 방송구역을 들이댄 공정위처럼 달리 풀이할 수 있는 구석도 없다. IPTV사업법의 해당 조항은 ‘특정 IPTV사업자는 78개 방송구역(사업구역)별로 IPTV, SO, 위성방송을 포함한 유료방송사업 가입 가구의 3분의 1을 초과하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내용을 대체한 것이다. 방송권역별 기준을 전국 기준으로 바꿨다는 얘기다.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이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ㆍ합병 금지 결정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이번 합병을 둘러싼 사업자 간의 혈투를 보면 ‘권력은 십 년을 못 가고 꽃은 열흘을 못 간다’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합병이 불발되면 “케이블과 IPTV에 차별을 두지 않고 통합하는 정책 기조를 바꿔 앞으로는 SO만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케이블업계의 목소리나, 전국 기준으로 해달라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싹 바꿔서 각각의 방송구역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떠벌리는 KT나 LG유플러스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합병은 철저히 사업자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느낀다.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의외로 문제는 간단히 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째, 지배력 전이의 문제를 살펴보자. CJ헬로비전으로 합병으로 SKT의 이동전화 부문은 크게 늘어날 수가 없다. 공정거래법상 시장점유율 50% 상한선에 걸리기는 합병 전이나 합병 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시장점유율 50%를 넘는 이동전화 1위 사업자인 SKT의 지배력이 초고속인터넷과 IPTV 등 다른 분야로 넘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동전화를 결합상품에 포함시키는 정책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다만, 합병 전이라도 SKT와 SK브로드밴드는 이동전화와 IPTV를 결합한 결합상품 판매를 통해 가입자를 꾸준히 늘려왔다는 점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KT도 LG유플러스도 똑같이 해오던 일이라는 얘기다. 이때만 해도 지배력 전이니 하는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단지 경쟁의 문제였을 뿐이다.

그런데 CJ헬로비전을 인수한다고 하자, 지배력 전이의 문제가 불거졌다. 솔직해질 필요성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배력 전이는 CJ헬로비전의 지배력인가 아니면 SKT의 이동전화 지배력인가 하는 문제다. 공정위는 방송구역별 기준으로 CJ헬로비전의 지배력을 문제 삼았는데, 이건 앞서 지적했던 것처럼 번지수를 잘못 잡은 것에 해당한다. 문제를 삼으려면 SKT의 이동전화 지배력이 대상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건 이동전화를 결합상품에 포함시키기로 한 큰 틀의 정책 결정을 거꾸로 돌리지 않는 한 뒤집어써야 할 ‘원죄’에 해당한다.

결국 SKT는 CJ헬로비전의 케이블 가입자 380여 만 명을 대상으로 이동전화를 결합상품에 포함해 판매하는 것을 통해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와 IPTV 가입자를 늘릴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그런데 CJ헬로비전도 자신이 보유한 이동전화(알뜰폰)를 결합상품으로 판매해 왔던 터다. 바뀌는 건 케이블 가입자가 IPTV로 갈아타면서 SKT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점유율이 높아질 가능성밖에 남지 않는다. IPTV와 초고속인터넷은 하나의 패키지로 묶일 수밖에 없는 성질(IPTV를 보려면 초고속인터넷을 설치해야 한다)의 것이기 때문이다. CJ헬로비전 가입자가 IPTV로 갈아타는 매개체는 초고속인터넷이다. 케이블 SO의 고객 특성상 방송 가입자 규모와 견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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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력 전이의 실체는 무엇일까?

수치를 좀 살펴보자. KT는 IPTV 1위 사업자이고 초고속인터넷 1위 사업자다. 미래창조과학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발표한 ‘2016년 4월 정보통신기술(ICT) 주요품목동향 조사’ 보고서를 보면, 국내 IPTV 가입자는 1,308만여명이고, KT가 51.3%, SK브로드밴드의 B tv는 28.1%, LG유플러스 tv G가 20.6%를 차지하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시장점유율의 경우, 2014년 말 기준으로 KT가 42.3%로 가장 많고 SK텔레콤 25.0%, LG유플러스 15.7%의 순이다. KT의 IPTV 가입자 시장점유율은 위성방송의 HD 다채널을 이용해 급증하며 한때 60% 육박했으나 2013년 불법적인 위성 매각 사태 등을 겪으며 하락세를 겪었고, 나머지 두 사업자가 이를 추격의 발판으로 삼아 약진해 왔던 게 그동안의 사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합병 이후 SKT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어떻게든 늘어난다. KT나 LG유플러스의 가입자를 일부 빼올 수도 있다. IPTV 가입자도 늘어난다. 하지만 CJ헬로비전의 케이블 가입자가 IPTV로 갈아타는 경우가 상당 부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기에 전체 가입자가 KT보다 높아지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KT의 유료방송 가입자 규모는 자회사로 거느린 위성방송 가입자와 IPTV 가입자를 더하여 817만 명으로, SKT-CJ헬로비전 가입자 718만 명을 100만 명 정도 앞서고 있다.

문제는 매우 단순하다. 이동전화를 결합상품에 포함시키는 정책 방향이 불변인 한, SKT-CJ헬로비전 합병 법인의 IPTV와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어떻게든 늘어난다는 것이다. 당연히 ‘So What?'(그래서 뭐 어쨌다고?)라는 의문이 들게 된다. 특정 사업자의 가입자 규모가 늘어나는데 이게 시청자와 소비자, 이용자에게 어떤 폐해를 불러일으키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지리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매우 분명하다. 1, 2위 사업자의 격차가 적을 때 실효 경쟁은 훨씬 강해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아쉬운 문제들

오늘 공정위 전체회의는 불허 쪽으로 결정했다. 필자가 당사자라면 개인적으로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그룹 경영진과 권력과의 관계 등 다른 사정이 작용해서인지 SK텔레콤은 공정위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즉시 발표했다. 정치권력과 행정권력의 입김이 깊숙이 작용하는 치열한 내수산업의 총아는 총아인 모양이다.

이동전화를 결합상품에 포함시키는 정책 방향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합병이 낳는 효과는 대부분이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다만, IPTV/초고속인터넷 결합상품 패키지에 자동으로 따라붙는 인터넷전화를 보편적 통신서비스로 포함시킬 것인가이다. 전통적인 시내전화와 대체관계에 있는데, 시내전화는 보편적인 통신서비스로 분류돼 있다. 포함시킨다면 결합상품에 포함시키는 게 맞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유료방송 시장 기준을 전국 기준으로 단일화시키면서 발생할 수 있는 폐해들, 예를 들어 인수합병의 물결 속에서 케이블 SO가 운영하는 지역채널이 또 하나의 전국방송처럼 운영될 수 있는 위험성 등을 세심하게 가다듬어 제도화시키는 문제도 매우 중요하다.

공정위 불허 결정이 이런 논의를 촉발시키며 법 개정 등으로 연결까지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기대난망이다. 그나저나 방통위와 미래부는 어떻게 하나? 오히려 이 두 부처가 공정위를 상대로 송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불허 결정이 KT 출신의 실세가 개입한 결과라고 한다면 ‘나쁜 정치적 개입(꼭 필요한 좋은 정치적 개입도 수두룩하다)이 시장을 왜곡하는 대표적 사례’로 두고두고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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