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됐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MBC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한꺼번에 KBS에서 터져나오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재철 사장이 청와대에 가서 받았다는 ‘쪼인트’에 버금가는 ‘이정현녹취록’이 터지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몰아치고 있다. 회사 및 경영진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기자에 대한 보복성 징계가 시작됐다는 우려가 많다. 지난주 금요일 이정현녹취록 사태를 보도하지 않는 자사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매체에 기고했던 KBS 정연욱 기자가 돌연 제주총국으로 발령이 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KBS 정연욱 기자는 기자협회보에 <침묵에 휩싸인 KBS…보도국엔 ‘정상화’ 망령> 칼럼(▷링크)을 기고했다. 그는 해당 기고문에서 이정현녹취록에 대해 “저널리즘의 상식에 입각한 문제제기 조차 정치적인 진영 논리에 희생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그들의 침묵을 묵인하고 있는 모든 기자들이 공범”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과거 MBC 권성민 PD가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유머에 올렸던 <MXX PD입니다>라는 글과 맥락을 같이 한다. 자사에서 세월호 등 관련 리포트들이 왜곡돼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자성이었다.

KBS 정연욱 기자가 기자협회보에 기고한 글

KBS 정연욱 기자는 돌연 KBS제주방송총국으로 발령을 받았다. KBS 측은 통상적인 인사라고 주장하지만 내부에서는 ‘보복인사’라는 인식이 크다. KBS 경인방송센터 평기자들을 시작으로 33기와 41기 기자들은 “지역국이 유배지냐”면서 반발하고 있다. MBC에서 회사에 비판적인 기자·PD들을 신사옥개발센터나 경인지사 등 비제작부서로 인사조치하는 것과 유사한 모습이다. 그러면서 KBS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KBS가 MBC를 따라간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1. 보도감시 활동은 편집권 침해 혹은 왜곡조작?

고대영 사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KBS 사장이 되면 뉴스 큐시트를 보고 받을 것인지?’라는 질문에 “사장이 뉴스에 직접 관여해서는 안 된다”라면서도 “다만 방송에 대한 최종책임자로 어떤 내용이 방송되는지 파악은 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최종 큐시트는 점검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 낙마를 이끈 검증보도에 대해서도 고대영 사장은 “기자의 관점이 문제가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그러면서 ‘KBS편성규약 개정’과 ‘게이트키핑 강화’, ‘KBS공정성 가이드라인 보완’ 등을 예고했다.

KBS 고대영 사장은 취임 후 <KBS편성규약>에 대해 ‘현행 편성규약이 미흡하다’는 이유를 들어 개정에 공을 들여왔다. 그 중심은 제6조(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자율성 보장)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KBS 고대영 사장은 지난달 23일부터 시행된 조직개편에서 수신료 현실화 전담 부서를 없앴다. (사진=KBS, 미디어스)

<KBS편성규약> 제6조 제1항은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자율성은 방송법이 정한 제반 기준 내에서 최대한 보장 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편성과 보도, 제작상의 의사결정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 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며 진실에 반하는 프로그램의 제작을 강요받을 경우 이를 거부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KBS 측은 시종일관 이 같은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권한을 배제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KBS 편성규약>에 따라 기자협회장이 세월호참사 청문회 중계 및 뉴스 리포트 배치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편집권 침해’로 몰린 상황이 대표적이다.

언론노조 MBC본부에는 민주언론실천위원회가 있다. MBC <뉴스데스크> 등 자사뉴스에 대한 모니터를 중심으로 공정방송 활동을 하는 단위이다. 하지만 MBC 사측은 해당 단위를 ‘왜곡조작위원회’라고 폄훼하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바 있다. 공영방송 KBS와 MBC가 자사 뉴스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비판을 통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 회사에 비판적 입장 가진 기자들 징계 및 인사

KBS가 MBC를 닮아간다는 사실은 이번 정연욱 기자의 사례에서 보듯 ‘보복징계’ 논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또한 예견됐다. 정홍규 기자에 대한 징계가 대표적이다.

KBS 정홍규 기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전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를 역임했다. KBS본부에서 그의 임무는 그야말로 ‘공정방송’과 관련된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임기 동안 민중총궐기 집회(2015년 11월 14일)가 개최됐고, 그 과정에서 정홍규 기자는 자사 뉴스에 문제를 제기했다. KBS <뉴스9>에는 <교통 마비에 논술 수험생 발 ‘동동’> 리포트(▷링크)가 그것이다. 해당 리포트에서 최문종 앵커는 “대규모 집회(민중총궐기 집회)로 시내 교통이 마비되는 바람에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까지 생기고 말았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KBS가 문제로 지적한 민중총궐기 집회(대학로 부근)는 수험생들의 논술시험을 고려해 다른 지역보다 늦게 개최됐다는 사실 때문이다. 해당 수험생이 시험을 포기하게 만든 교통체증이 민중총궐기 때문이 아닐 수 있지만 이를 단정해 보도한 KBS 리포트에 문제가 있다는 게 언론단체 및 시민사회의 비판이었다.

2015년 11월 14일 KBS '뉴스9'

정홍규 기자는 <뉴스9>에서 해당 리포트가 나가게 된 경위 등을 조사했다. 하지만 그것이 빌미가 돼 ‘부당한 압력 행사’와 ‘직장 내 질서 훼손 행위’를 근거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됐고 정홍규 기자는 ‘감봉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아야 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KBS의 중징계는 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 12일 정홍규 기자에 대한 ‘감봉 6개월’ 징계가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3. 직능단체 발 묶고 노동조합은 와해?

KBS의 이 같은 행보는 협회 및 노조 등 구성원들의 자율성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MBC에서 벌어졌던 일들이기도 하다. 2014년 7월 MBC 사측이 PD협회와 기자협회·방송기술인협회와 동호회 등의 공제를 끊는 일이 벌어졌다. PD협회나 기자협회 등은 법적으로 활동이 보장된 기구가 아니라 임의단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서 공제를 중단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통상 회사 차원에서 ‘공제’를 끊는 것은 관련 단체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 일었다.

KBS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KBS 고대영 사장은 “직능단체장은 법으로 보장받는 노동조합과는 달리 ‘임의단체’이기 때문에 타임오프제 등 근로면제 대상이 아니었는데 그간 근무시간에 협회 활동과 외부 활동을 했던 만큼, 오랜 관행을 개선해 ‘일하는 분위기를 바로 잡겠다’는 취지”라면서 내부 직능단체장에게 근태관리 강화를 예고했다. 외부 직능단체장의 경우, 현업과 직능단체장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겸직 신청서’를 제출하게 했다.

언론노조 KBS본부 등 노동조합의 활동 축소를 야기하는 노력도 더해졌다. KBS 고대영 사장은 청문회에서 <방송법> 제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제2항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와 관련해 “여기에서 ‘누구든지’는 노동조합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고대영 사장의 이 같은 주장의 불똥은 공정방송위원회로 이어졌다. KBS에서 공정방송위원회는 여러 차례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2012년 MBC본부가 공정방송을 내세우며 170일간 파업을 했던 당시의 모습(사진=MBC본부)

언론노조 KBS본부(성재호)에 따르면, 7월 4일 개최된 공정방송위원회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파행으로 끝났다. 3개월 만에 열렸던 공방위였다. 이에 앞서 KBS 사측은 “KBS 뉴스, 공정성 면에서 2014년보다 후퇴했다”는 성재호 본부장의 언론매체(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인터뷰(▷링크)를 문제 삼아 ‘사과하지 않으면 공방위를 열지 않겠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KBS본부 등 현업인들이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에서 편성위원회의 의무화를 주되게 요구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2012년 MBC에서 공방위 문제로 공정방송 파업이 벌어진 바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눈여겨봐야할 대목이 있다. 바로 MBC와 KBS의 조직개편 또한 닮아있다는 점이다. MBC는 지난 2014년 말 조직개편은 ‘수익성 중심’이 한 축이었다. MBC보도본부에 뉴미디어뉴스 사업기능을 담당하는 '뉴스사업부'가 생겨났다. KBS 고대영 사장 또한 조직을 수익 중심의 '방송사업본부', '미래사업본부' 등으로 재편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