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스(The Beatles)의 화이트 앨범.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he Wall>.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Physical Graffiti>.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Songs In The Key Of Life>.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생각나는 대로 '더블 앨범'을 적어보았다. 이 앨범들이 먼저 떠올랐다는 건 하나 같이 다 유명한 앨범들이고, 팝의 역사에 남을 만한 앨범들이란 이야기이다.

더블 앨범. 말 그대로 두 장짜리 앨범을 말한다. 바이닐(LP) 시절을 기준으로 두 장의 디스크에 담겨 나온 앨범을 가리키는 말이다. 단순히 양적인 확장뿐 아니라 두 장의 디스크에 담아내야 할 만큼 작가의 세계관이나 콘셉트가 탄탄하고 짜임새가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작품이다. 두 배의 분량인 만큼 제작비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두 장의 긴 러닝타임을 이겨내고 듣게 해야 할 만큼 창작의 부담이 있다. 그런지 시대에 이미 두 장의 앨범을 통해 스타 밴드로 올라섰던 스매싱 펌킨스도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의 제작을 앞두고는 많은 우려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신에 위험이 큰 만큼 그 위험을 이겨낼 때의 성취는 컸다. 스매싱 펌킨스는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를 통해 그런지나 얼터너티브라는 틀을 훌쩍 뛰어 넘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2016년이다. 이제 점점 '앨범'의 의미는 옅어지고 있고, '온라인 싱글'이란 용어가 지금 시대를 대표하는 말이 됐다. 그 어느 때보다 음악을 진지하게 들었다는 1970~80년대에도 귀했던 더블 앨범인 만큼 지금은 더욱 더 귀해졌다. 지금 더블 앨범을 사서 한 자리에 앉아 진득하게 음악을 들을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2016년에 더블 앨범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무모한 일을 벌인 밴드가 있다. 그것도 두 팀이나.

2016년 4월. 줄리아 드림(Julia Dream)의 첫 앨범 <불안의 세계>가 공개됐다. 2년 전 EP <Lay It Down On Me>를 통해 주목을 받았던 팀이다. 프로그레시브와 사이키델릭을 전면에 내세운 이들의 음악은 '가위'란 주제로 아예 수록곡 전체를 꾸밀 만큼 비타협적이며 진지했다. 하지만 자체제작한 음반의 사운드는 다소 아쉬웠고 줄리아 드림의 음악을 모두 펼쳐 보이기엔 부족했다. 그동안 이들은 미국의 사이키델릭 페스티벌 등에 참가하며 더 내공을 쌓았고 2년의 시간을 들려 <불안의 세계>를 완성해냈다.

16곡이 빼곡히 담겨 있는 이 앨범에 온라인 싱글 같은 개념이 자리할 곳은 없다.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의도에 맞춰 곡을 배치하고 각 곡마다 악기의 사용을 달리한다. 탄탄한 연주력과 함께 빼어난 작·편곡, 그리고 굳건한 주제가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데뷔와 함께 '한국의 핑크 플로이드' 정도로 얘기되던 이들이 이제 독자적인 줄리아 드림의 세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줄리아 드림의 음악은 인상적이다.

줄리아 드림이 <불안의 세계>를 발표하고 두 달 뒤, 또 하나의 더블 앨범이 나왔다. 얼스바운드(Earthbound)의 두 번째 앨범 <Artown>이다. 역시 첫 앨범 <Hangover>를 통해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고, 헬로루키 결선 무대에까지 올랐던 얼스바운드는 두 번째 앨범을 두 장의 디스크로 완성했다. 첫 곡 '강행'부터 들리는 도드라진 드럼 소리와 템포 변환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얼스바운드의 음악이다. 대신에 얼스바운드의 가장 큰 매력인 라이브에서의 에너지가 앨범에 잘 담겨 듣는 재미를 더 크게 한다. 라이브의 매력이 고스란히 앨범에 담겼다. 얼스바운드만의 색깔이 더 짙어졌다. 줄리아 드림의 <불안의 세계>와 같이 16곡이 담겨 있지만 하나의 흐름을 갖고 흘러가는 줄리아 드림과 다르게 싱글로서의 매력도 가져간다. 노래로서도 연주로서도 모두 듣는 맛이 좋다.

두 앨범의 러닝타임을 합치면 대략 140분 정도가 나온다. 두 앨범을 온전히 듣기 위해선 2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두 앨범 모두 배경음악 정도로 쉽게 흘려 들을 만한 성격의 음악도 아니다. 더 집중해서 귀 기울일 때 듣는 재미가 더 큰 앨범들이다. 그럼에도 두 앨범 모두 온전히 그 시간을 투자해 집중해 들을 가치가 있다. 앞서 나는 더블 앨범을 소개하며 "단순히 양적인 확장뿐 아니라 두 장의 디스크에 담아내야 할 만큼 작가의 세계관이나 콘셉트가 탄탄하고 짜임새가 있어야 나올 수 있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 두 앨범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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