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 (연합뉴스)

사드 배치 지역이 경북 성주로 결정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복수의 언론은 사드 배치를 두고 수차례 외교부와 국방부 간에 의견충돌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사드 배치 지역 발표 당일에는 발표를 취소했다 몇 분만에 다시 이를 번복하는 혼란상마저 여과없이 노출했다. 사드 배치 결정 자체도 문제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실력 부재'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외교부는 중국이 강력한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는데, 사드 배치로 인해 대북공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으므로 사드 배치 발표 일정을 미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반면 국방부는 미국과 사드 배치를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고, 중국을 생각해 발표 일정을 미룰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알려졌다.

한겨레도 정부의 사드 배치 조기 결정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끝까지 반대 의견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윤병세 장관은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모든 부서 사이에서 이견 없이 결정한 사안"이라고 해명했지만, 외교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충분히 반대 의견을 낼만한 사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외교부 입장에서는 사드 배치가 달가울 리 없다. 사드 배치로 인해 화가 단단히 날 중국을 상대하고, 이른바 '뒷감당'을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외교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논쟁에서 국방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됐는데, 대통령의 국가안보 정책을 총괄적으로 보좌하는 군 출신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룬다.

사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국방부 장관이던 시절부터 미국의 압박 속에 차근차근 진행돼왔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MD체계 구축을 위해 7개의 사드를 구입했는데, 이 중 1개를 한반도에 배치하기를 원했다. 심지어 한미연합사령관이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을 미국의 MD 체계 속에 편입함으로써 자국의 안전을 도모함과 동시에 한반도를 전진기지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겠다는 속내라는 해석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우리 군 당국은 "배치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현재에 와서는 입장이 완전히 뒤집어진 상황이다.

발표 시기도 절묘했다. 국방부가 사드 배치 지역을 경북 성주로 결정한다고 밝힌 날짜는 7월 13일. 전날인 12일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는 중국과 필리핀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남해구단선 내 수역과 자원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권리를 인정할 수 없다"며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판결 후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최종적으로 중국과 필리핀 양쪽 모두에 구속력이 있다"며 "판결 내용을 준수하고 도발적 언급이나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UN을 움직여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바로 다음날인 13일 우리 정부는 사드를 경북 성주에 배치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사드의 레이더 범위다. 사드 레이더의 범위는 1200km로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할 경우 중국은 사드 레이더 범위 안에 포함돼 큰 군사적 압박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중국에 연이틀 압박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미국 발' 외교 카드가 발동된 것이다. 그 와중에 사드 배치 지역 발표를 취소했다가 기습 발표한 정부의 졸속행정은 보너스다.

대중관계를 걱정하는 여론과 주변국인 중국, 러시아의 반발에 국방부는 "사드 배치는 북핵으로부터 한반도 방어를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과연 사드가 한반도 방어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에 대한 의혹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언론은 사드가 결국 주한미군 방어용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비판 여론을 키우고 있다. 이미 북한은 장사정포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조준하고 있는데, 사드는 고고도에서 미사일을 요격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드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복수의 언론은 중국의 무역보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고, 러시아는 미사일부대를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겠다고 공표하고 나섰다. 중국의 유력 국방 관계자는 "전쟁이 시작된다면 한반도의 사드 기지부터 공격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외교 지형이 벌써부터 '신냉전'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 게다가 대북압박을 하겠다더니,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해 오히려 북한의 숨통을 틔워줬다는 불만의 목소리까지 쏟아지고 있다.

이 책임선상에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가안보실장은 국가안보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는 국가안보실의 수장으로,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면서 중장기적 안보전략을 수립한다. 아울러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이기도 한 국가안보실장은 국가정보원,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등 정부 행정부처에 대한 업무지시 하달 및 부처 간 업무조정을 관장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다. 그 말은 김관진 실장의 재가가 없이는 사드와 같은 큼직한 사안을 결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지금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 보다는 양국 사이를 관망하고, 실리를 챙겨야 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김관진 실장은 미국의 손을 '번쩍' 들어줬고, 그 결과 동북아 정세는 냉랭한 전운까지 흐르고 있다. 정부는 사드 배치를 전후한 여러 혼란 상에 대해서도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지경까지 내몰렸는데, 결국 청와대의 콘트롤타워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고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그러니 이제라도 김관진 실장은 우리 외교·안보를 위태롭게 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