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서울지부가 지난 21일 긴급회의에서 이달 31일 전국 일제고사를 앞두고 체험학습 등을 안내하는 학급통지문을 보낸 전교조 교사들 가운데 공개를 원하는 교사들의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 13일 전교조 본부 차원에서 일제고사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지를 밝히기 위해 논의된 ‘일제고사 반대 교사 1천명 명단공개’ 안건과 관련한 자체 결정이다.

이번 전교조의 자발적인 명단공개를 놓고 일부 신문들은 눈엣가시처럼 불편해하며 전교조를 압박하고 있다. 특히 동아일보는 지난 13일 전교조의 명단공개 안건이 알려지자 이날 사설 ‘학생평가 거부하는 전교조 교사 전원 징계하라’에서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법과 질서’가 학교 현장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면서 “서울시교육청이 작년 말 학력평가 거부 교사 7명을 파면 해임한 것과 같은 기준으로 이번 진단평가 거부에 참여하는 교사를 전원 중징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낡은 이념의 포로가 되어 학교를 정치투쟁장으로 이용하는 교사들 대신에 자질을 갖춘 새로운 인재로 교단을 물갈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며 노골적으로 해고 등의 중징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동아일보의 2009년 3월 23일치 기사

이렇게 동아일보가 전교조의 명단 공개를 강경하게 몰아세웠지만, 전교조 서울지부는 21일 명단공개를 결의했다. 그러자 동아는 23일치 ‘기자의 눈’에서 “여하튼 서울지부의 이번 결정은 참여 교사들의 대량 중징계가 분명하다는 점에서 ‘벼랑 끝 전술’이고, 가능하면 많은 교사를 동참시켜 교육당국이 감당할 수 없는 사태를 야기하려 한다는 점에서 보면 ‘인해전술’이나 마찬가지다”고 우려(?)를 밝혔다.

김기용 기자는 해당 기사에서 “전교조의 명단공개 선도투쟁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교육당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과 학부모를 목표로 한 ‘자폭테러’와 다를 게 없다”면서, 한 초등학생 학부모의 말을 인용해 “이것은 명백히 우리 아이들을 볼모로 한 투쟁”이라고 전교조 서울지부를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전교조의 명단 공개에 누구보다 찬성했던 언론사는 동아일보였다. 지난해 9월 교육과학기술부가 2008년 12월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전교조 등 교원단체 및 노조에 가입한 교사 숫자를 의무공개하기로 한 ‘교육관련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에 대해 찬반논란이 일었을 당시 동아일보는 찬성 입장을 명확히 내세웠다.

▲ 동아일보의 2008년 9월 16일치 사설

동아는 지난해 9월 16일치 사설에서 “우리는 지난해 5월 3일자 본란에서도 학교정보 공개에 학업성취도뿐 아니라 교원단체 및 노조 가입교사 현황이 포함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이 두 가지 핵심 정보를 공개하려는 것은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경쟁력 제고를 위해 매우 바람직하다”고 전교조 교사 공개를 적극 환영했다.

동아일보는 “학부모와 학생들은 어느 학교의 학업성취도가 높은지, 어느 학교가 노조 가입 교사의 비율이 높은지를 안 뒤에 더 믿을 만한 학교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래야 학교 간 ‘교육의 질 높이기 경쟁’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면서 전교조에 대해 “전교조가 추구하는 교육방향이 진정 옳다고 여긴다면 모든 정보를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선택을 받을 일이다. 자신들이 하는 활동이 자랑스럽다면 정보 공개를 기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고 비판했다.

전교조가 “학교의 전교조 조합원 수가 학교 교육의 질과 관련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학부모와 전교조의 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라면서 “학부모의 진짜 권리는 학교 자치를 이뤄내는 데 있다”고 반발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당시 동아일보의 그 논리대로라면, 동아 역시도 이번 전교조의 자발적인 교사명단 공개에 겁낼 필요가 없다. 전교조는 일제고사 이외에 다른 학습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며, 그러한 정보와 일제고사 반대의 뜻을 당당히 드러내놓고 하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당당히 선택받으라고 다그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자폭테러’를 운운하는 건 자기분열적인 모습이다.

동아일보의 이같은 태도 변화 이유를 읽어낼 단서는 딱 하나밖에 없다. 타의에 의한 강제 공개냐 자발적인 공개냐에 따라 정반대의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동아일보 표현대로 ‘벼랑끝 전술’과 ‘인해전술’이 먹혀들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교육정책인 ‘일제 고사’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건 부차적인 걱정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전교조가 당당하게 ‘커밍아웃’함으로써, 더 이상 고발하듯 색출해내는 ‘아웃팅’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을 깊이 근심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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