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이정현 전 홍보수석의 보도통제 녹취록이 국회에서 상영됐다. 하지만 신상진 미방위원장 등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입에서는 “이정현 수석이 통사정을 하는 것”, “다혈질이 가미된 격앙된 항의”, “갑을관계에서 언론이 갑”, “언론자유보다 언론에 대한 피해자 구제에 더 고민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새누리당은 녹취록과 관련해 청문회는 물론 현안질의까지 응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신상진, 이하 미방위)는 11일 방송정책을 관장하는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의 2015회계연도 결산안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야당 의원들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 전화를 걸어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통제 압력을 가하는 녹취록이 폭로된 것에 대해 방통위 등 정부부처로서의 역할을 주문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과 박홍근 간사는 해당 녹취록 전문과 녹음파일 공개를 위해 질의시간을 할애했다. 음성 파일이 재생되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정현 의원이) 통사정하고 있지 않느냐”, “이정현 의원은 언론에 의해 피해를 봤다”는 등의 발언을 내놨다.

새누리당 박대출 간사와 신상진 미방위원장 그리고 김경재 의원(사진=연합뉴스)

미방위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박홍근 의원은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정현 의원의 당시 행동에 대해) ‘홍보수석으로서 통상업무’라고 이야기를 했다”며 “<방송법>에서는 누구든지 편성 등에 관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만일, 이것이 관행이라면 바로 잡으라고 해당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것이 국회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청와대가 개인 시민에게 호소하는게 아니다”라면서 “KBS 사장 임명권을 가진 청와대가 보도에 대해 순서를 바꾸라는 등의 지시를 한다면 담당 부서장으로서 자유롭게 호소한 것으로 볼 수 있겠느냐”라고 비판했다.

박홍근 의원은 ‘김시곤 비망록’을 언급하면서 “청와대는 윤창중 성추문 사건에 대해 머리기사로 배치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실제 KBS 뉴스에서도 뒷 부분에 다뤄졌다”며 “대통령의 해외순방이나 동정은 (지시에 따라)앞으로 배치됐다. 국정원 댓글 사건 또한 축소됐다는 게 녹취를 통해 밝혀진만큼 방통위가 직접 방송법에 따라 조사하고 고발절차를 밟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주문했다.

같은 당 유승희 의원은 “미방위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방송 공정성을 지켜주는 일”이라면서 “방송사 편성권이 침해됐다는 게 여실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건 분명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정현 전 홍보수석과 김시곤 전 보도국자에 대해 <국회법>에 따라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가 개최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은 방어에 집중했다. 미방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은 “이정현 의원과 길환영 전 KBS 사장은 이미 세월호특조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상태”라면서 “사법적 판단이 나오기 전이라는 점에서 청문회를 개최하거나 현안질의를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박대출 의원은 “청문회 등을 요구하는 판단에는 ‘방송통제’라는 걸 전제하고 있다”라면서 “정치외압이라는 결론을 내놓고 현안질의나 청문회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응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국회를 사법부의 하위기관으로 전락하는 식의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미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신상진 의원 역시 ‘이정현 녹취록’ 음성 전체를 듣고는 “이정현 수석이 통사정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 의미를 축소했다. 같은 당 김재경 의원은 “이 내용(녹취록)을 좀 보려고 했는데 기분이 내키지 않더라. 보고싶지 않았다”라면서 “변재일 의원으로 인해 사안을 파악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미방위원으로서 사건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점을 시인한 것이다.

김재경 의원은 오히려 “김시곤 국장이 그런 식으로 폭로하는 것은 그 분의 인격이나 그 당시 가지는 위상(보도국장)에 걸맞은 처신이 아니다”라면서 “만일, 내 아들이 그런 일(부당압력)을 당했다면 그 자리에서 박살을 내버리던지라고 가르쳤을 것이다. 김시곤 국장이 어떤 의도로 녹음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들이었다면) 한참 지나 폭로성으로 공개하도록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따.

김재경 의원은 또 자신이 ‘전직 검사’임을 강조하면서 “녹취록을 듣고 제 느낌은 그렇다. 이정현 의원이 격앙된 항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다혈질이 가미된 격앙된 항의’정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시곤 보도국장도 겁을 먹는다던지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면서 “(기자들은)잘못된 걸 항의를 하는데 보도해버린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도 바로 잡히지 않는다. 갑을논란이 있었는데 국회의원들은 ‘을’”이라고 말했다.

김재경 의원은 “언론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라면서 “항의가 들어오면 문제를 파악해야한다. A와 A의 말이 다르면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보고 보도해야하는데 그렇지 않으면서 B가 (문제를)덮어 쓰는 일이 벌어진다”고 사실상 이정현 의원을 감쌌다. 이어, “언론으로부터 그런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이 문제(녹취록)와 관련짓는 게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이야기해야하는 게 아니라 언론피해 구제에 대해서 고민해야할 때”라고 재차 주장했다.

한편, 최성준 방통위원장은 “(이정현 의원의 전화가)<방송법> 제4조 제2항에 해당하는지 쉽게 판단되는 건 아니다”라면서 “‘외부의 간섭을 말라’는 건데, 방통위는 외부에 대해 조사 권한을 부여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 고발된 상태니 그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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