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심의위가 출범 1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지만 어느덧 ‘폐지’라는 말마저 식상해져 버렸다.

방통심의위는 조중동광고불매운동 관련 인터넷 게시물 58건에 대한 ‘삭제’ 결정에 이어 MBC PD수첩과 YTN의 블랙투쟁에 대한 ‘시청자 사과’ 결정을 내리면서 스스로를 희화화는 지경에 이르렀다.

방통심의위는 그 뒤로도 MBC 언론관계법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코멘트 심의, 그리고 KBS <꽃보다남자>와 SBS <아내의유혹>에 대한 ‘경고’라는 중징계를 때리며 무리수를 거듭했다.

‘정치적 심의’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은 방통심의위의 자승자박이었고, 방통심의위의 ‘심의’가 위헌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제 방통심의위는 ‘공정성가이드라인’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또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이에 <미디어스>는 방송통신심의위 폐지 문제를 제기한다. 방통심의위의 제도적 측면과 운영에 대한 문제점을 비롯해 방송·통신·비영리콘텐츠에 대한 ‘심의’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90년대 중반쯤이었을 거다. 어떤 강의에선가 퍼블릭 액세스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되었다.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자기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방송을 한다고? 아무런 검열과 심의도 없이 내 이야기를 틀어준다고? 에잇, 그게 딴 나라 얘기지, 여기서 가능이나 한 일이겠어?”

정치적으로 엄혹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사회적인 발언을 방송이라는 공개적 자리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은 쉬이 상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특히 방송은 시민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문턱 높은 곳이었다.(물론 지금도 그렇다.)

당시엔 아무리 상상을 해도 도대체 퍼블릭 액세스라는 게 그냥 꿈같은 얘기일 뿐이었다. 그러다 외국의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아~ 저런 거구나” 하며 이 어려운(?) 단어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다소 어설프고 기술적으로는 부족해보였지만, 그 프로그램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하고 있었던 것. 싱글맘들이 아이 혼자 키우는 법을 나누고, 청소년들이 정치 토론을 벌이고, 병원 노동에 지쳐 집으로 돌아온 여의사가 나라의 의료 정책을 꼬집고, 다운증후군의 한 청년이 자기를 키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레즈비언들이 자기들의 관심사와 일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적인 이야기 속에서 사회적이고 공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도 동시에 엿보았다. 이런 이야기들이 여과 없이 방송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은 어떠한 심의나 검열을 받지 않는다는 불문율 때문이었던 것. 그리고 이 불문율은 미디어활동가들과 대중들이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워서 얻어낸 결과였던 것. 그것이 바로 퍼블릭 액세스였다.

딴 나라 이야기, 상상 속의 이야기 같던 퍼블릭 액세스가 한국에서도 현실이 된 것은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0년 통합방송법에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퍼블릭 액세스가 전격(!) 도입되었다. 그런데, 아차… 법을 만들 때 놓친 게 있었으니… 바로 심의 관련 법조항을 손보지 않았던 것이다. 방송사들에게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 편성을 의무화하였지만, 심의 권한은 여전히 방송사와 당시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갖게 되면서 반쪽 짜리 퍼블릭 액세스가 되고 말았다. 법안 만들 때 퍼블릭 액세스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 만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법안 논의 과정 중에 심의 면제 부분이 빠지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이 사소한 듯 보이는 문제가 향후 퍼블릭 액세스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을 촉발시킬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예상치 못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캡처ⓒwww.kocsc.or.kr

우리나라 최초의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인 KBS <열린채널>. 2001년 말 방송을 시작한 후 채 몇 달도 지나지 않아 ‘심의’ 문제가 터졌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라는 작품에 대해 열린채널 운영협의회는 ‘미친놈’, ‘개판’ 등 비속어 사용, 공무원 출연에 대한 초상권 침해, 박정희 생가 장면, 그리고 제목의 ‘찢어라’의 과격함 등을 이유로 방송편성 불가 결정을 내렸다. 인터뷰와 내레이션에서 언급된 말 하나 하나, 제목에 대한 품평까지, 그리고 특정 장소 삽입에 대한 부분까지 꼼꼼히 점검해주시던 운영협의회는 운영을 협의하는 곳이 아닌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에 대한 검열을 모의하는 곳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수많은 참여프로그램들이 운영협의회(현 시청자위원회)와 방송사의 이중심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방송 불가 판정을 받게 되었다. 방송사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힘 없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고 있거나(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 투쟁을 담은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내용이거나(국가보안법 때문에 고통당하는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한총련과 국가보안법’), 잘 나가는 대기업을 고발하는 이야기들(교통사고로 사망한 미술가의 예술인 경력을 인정하지 않은 생명보험사의 문제를 다룬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이었다. 열린채널의 심의 문제를 꼬집었던 ‘닫힌 채널을 열어라’는 수차례의 방송 신청 요구에도 불구하고 절대 편성되지 않았다.

퍼블릭 액세스가 ‘심의’라는 단단하고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에 대해 다른 나라 미디어활동가들은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을 심의, 검열할 수 있느냐” 하는 반응들이다. 그러게 말이다. 퍼블릭 액세스라 말하기도 민망하다. 미국이나 독일 등 퍼블릭 액세스의 역사가 오래된 곳들에서는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들에 대한 사전심의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퍼블릭 액세스 방송에서 시민들은 ‘정치나 상업 광고/복권이나 도박 선전/외설물/비방’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프로그램이라도 방송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기본적으로 선착순 원리에 의해 먼저 가져오는 순서에 따라 방송 시간을 분배한다. 프로그램을 가져갔을 때 당사자 앞에서 일일이 모니터링을 하며 거만하게 지적질을 하는 사람도 없다. (KBS 열린채널에 프로그램을 접수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심의가 없는 대신, 퍼블릭 액세스를 하기 위해서 제작자는 프로그램 방송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나 손실, 법적인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동의서를 작성한다. 만약 제작자가 프로그램 운영 방침과 동의서 내용을 위반하게 되면, 사후적으로 채널과 시설, 장비에 대한 이용권을 제한받게 된다. 그리고 프로그램 방송 이후, 법적인 위반으로 문제가 되더라도 그 프로그램을 편성, 송출한 방송국은 관련 법률(지역, 주, 연방법 및 규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 이는 마치 전화회사가 네트워크 망을 제공할 뿐, 전화 내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어린이, 청소년 보호를 위해 ‘민감한 주제에 대한 방침(Policy on sensitive subjects)’과 같은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있는 퍼블릭 액세스 방송국들도 있는데, ‘과도한 노출’이나 ‘성적 행위’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원칙적으로 방송할 수 없지만, 이에 대해서 방송국이 심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방송 신청을 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서를 제출하게 한다. “프로그램이 다음을 포함하는가? : ▸저속함? yes / no ▸노출? yes / no ▸성행위? yes / no” 만약 이를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역시 방송 관련 권한을 제한받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제재는 사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방송 참여 권리를 제한할 어떠한 사전적 규제도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는 걱정할 수도 있다. 그렇게 아무런 사전 제재 조치 없이 아무나 방송을 하게 하면 사회적 역효과가 더 많지 않겠냐는 우려 말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다양성이라는 가치는 표현의 제한이나 간섭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표현의 자유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조건에서 발현될 수 있다. 퍼블릭 액세스는 의견의 다양성이 발현될 수 있는 자유로운 소통환경을 만들기 위해 마련된 제도인 만큼, 여기서 ‘심의’는 어떤 그 무엇보다 ‘위해’한 것이 된다.

“퍼블릭 액세스는 심의가 없다”는 글로벌 스탠다드는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면, 도리어 방송통신심의위의 표적심의의 대상이 된다. 소수자 프로그램이나, 기존 방송에서 다루지 않는 이슈들을 다루는 내용들이 많은 퍼블릭 액세스의 특성 때문이다. 마포FM의 <L양장점>이라는 레즈비언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표적심의 대상이었다.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은 출력이 낮을 뿐더러,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시민들이 제작하는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정부기관의 사후심의도 없다. 하지만 방송통신심의위는 각 공동체라디오방송국마다 사후심의를 위한 모니터요원을 선발하여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를 하고 있다. 특히나 동성애를 다루는 <L양장점>은 ‘유심히 눈여겨보아야 할’ 표적이었던 모양이다.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를 딱 두 번 사용하였을 뿐인데, 저속한 표현을 사용하여 시청자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등 방송품위(?)를 떨어뜨렸다며 ‘주의’조치를 받았다(무엇이 저속하고 음란함의 기준인가. 문제가 된 용어 ‘보지’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단어였다). 방송 품위라는 게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결정으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고스란히 심의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행법상 프로그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방송사는 제재조치가 두려워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에 대한 사전심의를 시행하게 되고, 더 나아가 프로그램을 축소/폐지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며, 이런 과정 속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자기 검열은 점차 강화되어 간다. 퍼블릭 액세스에 대한 심의가 위축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불건전한, 위해한 정보를 거르기 위해 행한다는 심의는 ‘공익’이라는 사회적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배적 가치에 대한 도전을 허용치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가 바뀌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는 거대한 심의 기구가 등장하면서 <PD수첩>을 비롯한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심의’에 넘겨졌다. 사회적 권력의 하나였던 언론마저도 권위주의적 정부의 탄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상황으로 짐작해 보건대, 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정치적 억압과 검열은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퍼블릭 액세스를 하고자 했던 많은 사람들은 방송사의 사전심의를 넘지 못해 사회적으로 소통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였고, 퍼블릭 액세스 전문채널인 RTV의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국가보안법 관련 프로그램도 방송통신심의위의 심의를 피해갈 수 없었다. 표현의 자유의 최전선이었던 인터넷에서 단지 허위 정보를 유포하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미디어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점차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조건은 ‘표현의 자유’를 더욱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거꾸로 간다.

▲ '심의 원칙' 보고서 표지
퍼블릭 액세스는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수사에 매몰되어 사회적 약자들, 다양한 의견들을 반영하지 못한 기존 주류 방송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대중들의 ‘표현의 자유 운동’의 역사적 성과였다. 이제 퍼블릭 액세스는 방송 영역을 넘어서 매체가 융합되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어떤 매체 공간에서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권리’로서 다시 긴 싸움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 ‘심의’는 가장 첫 번째 넘어야 할 산이다.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퍼블릭 액세스를 재단하지 않도록, 방송사나 미디어 소유자의 사적인 검열은 물론 국가기관의 정치적 검열도 허용되지 않도록! 그래,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심의 불복종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 미디액트, 진보네트워크센터, 인권운동사랑방은 수개월에 걸친 논의 끝에 방송, 영화, 인터넷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발표되는 일반 시민의 표현물을 ‘비영리적 시민 참여 콘텐츠’로 명명하고 이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선언하는 한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심의 원칙을 마련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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