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3총선에서 투표했지만 반영되지 않은 유권자 표가 절반이 넘는다는 분석이 나왔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에 따르면 지난 20대 총선에서 발생한 사표 비율은 무려 50.32%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선거권을 행사한 2346만756명 중 1225만8430명의 의견이 휴지조각으로 버려졌다는 것. 이는 지난 19대 총선 사표비율 46.44%에 비해 3.9%가량 높아진 수치다.

참여연대가 발표한 사표 그래픽. (참여연대)

참여연대는 사표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로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들었다. 참여연대는 "1등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2등, 3등 낙선자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표는 모두 반영되지 않고 사표가 된다"며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이 충분히 보장돼야 하는데, 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석은 47석으로 19대 국회보다도 7석이 더 줄어들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대 총선에 적용된 선거구는 단 한 달 앞두고 획정됐다. 당시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으로 하는 여야 합의안을 제출해 본회의에서 통과됐는데 2014년 10월 기존의 선거구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을 받아 여야가 선거구 획정 논의에 들어간 지 약 1년 4개월여 만이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권고안은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선거구 간 인구편차를 3대 1에서 2대 1로 줄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중앙선관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을 2대 1로 변경할 것을 권고했다.

따라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지역구 확대 방안 등 여러 의견이 제시됐지만, 여야가 지역구 증감을 둘러싸고 자신들의 의석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결국 의원정수는 그대로 둔 채 지역구를 확대하고 비례대표는 축소하는 어정쩡한 선거구 획정이 이뤄졌다. 특히 소선거구제의 단점인 사표 발생을 보완할 수 있는 비례대표 의석수가 7석 줄어들어 제대로 된 민의를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20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수가 줄어들어, 정당 득표와 실제 의석 수 간의 비례성은 현저히 괴리를 보인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정당 득표에 비해 각각 16석, 41석의 의석을 더 획득한 반면,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각각 47석, 21석의 의석을 손해봤다는 분석이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에서 더민주는 25.75%의 정당 득표를 얻었음에도 67.21%의 의석을 획득했다. 영남에서는 새누리당은 45.49%의 지지를 얻고 73.85%의 의석을 얻었고, 호남에서 국민의당은 46.08%의 지지를 얻고 82.14%의 의석을 가져갔다. 충청권에서는 국민의당이 22.82%의 지지를 얻었음에도 단 한 석의 의석도 획득하지 못했다.

이처럼 득표와 실제 의석수 간의 괴리가 발생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제대로 된 선거구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첫 단계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은 학계의 중론이다.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비례대표의 비율을 높여야만 발생하는 사표를 대변할 수 있는 숨통이 트인다.

실제로 우리나라 국회의원 1인당 국민 수는 약 17만1000명으로 OECD 회원국 중 3번째로 많다.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로 좁혀보면 한국이 1위, 2위 터키만이 14만8000명으로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고, 포르투갈 4만7000명, 덴마크 3만1000명, 스웨덴 2만7000명 순이다.

문제는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어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의원 정수 확대를 주장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여론의 질타가 두려워 민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정치구조를 계속 그대로 둘 수는 없다는 목소리는 계속 커지고 있다. 정치권이 스스로 나서 국민들을 설득하고, 공정한 선거구를 만들기 위해 나서야 할 때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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