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씨와 김현종씨.
참여정부에 이어 이명박정부에 와서도 그야말로 잘 나가는 분들임에 틀림없다.

요즘엔 두 정부뿐 아니라, 미국과 초국적기업의 사랑까지도 챙겨 가시는 것 같아 부럽고 존경스럽다. 최소한 이 분들의 처세술만큼은. 지난주엔 한덕수씨가 주미대사로 부임하더니 이번주엔 김현종씨가 삼성전자에 글로벌 법무책임자로 들어갔다. 사장급이라고 한다.

참여정부, 이명박정부, 미국, 그리고 위에 두 분. 한미FTA의 대표적 주체들임을 쉽게 알아맞힐 수 있다. 또한 한덕수씨가 재경부총리와 FTA 체결지원위원장을 지냈고 김현종씨는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2006~2007년 진행된 협상을 최전방에서 진두지휘하다 최근 유엔대표부 대사를 역임한 과정 등도 국민들은 지켜봤다.

한덕수 신임 주미대사는 이미 미 의회의 FTA 비준을 위한 ‘국가 공인 로비스트’로서의 역할 수행에 나섰고… 이제 드디어 삼성이 나서는 것일까. 외국인 지분율이 50%에 육박하는 삼성전자를 거느린 삼성그룹과 숭미파(?) 시장주의자 김현종씨가 손을 맞잡았는데….

▲ 경향신문 3월20일 29면

김현종씨 영입의 주요 목적을 어떻게 봐야 할까.

다수의 매체는 “글로벌 시장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가 수시로 변하고 있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식의 삼성 관계자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번에 영입하는 김 사장은 뛰어난 법무 실무가인 동시에 기업의 생존과 미래 전략을 이끌고 나갈 전략가로서의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인물로,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특허경영을 강화해 나가는 데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도 전했다.

나름 설득력 있는 논리지만 그것만이 본심인가?

출장이나 여행으로 해외에 나갈 때 ‘Samsung’ 또는 ‘Samsung Electronics’라는 로고를 접하고 이따금씩 가슴 뭉클해진 경험도 있으나, 경영이나 소유구조만 놓고 봤을 때 삼성전자의 경우 자본의 순수 국적은 따지기 힘들게 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순수 토종이라 부를 수 없는, 미국계를 포함한 서방의 초국적 자본과 결부된 기업이라 부르는 쪽이 맞다. 현대차 및 SK, LG그룹의 주요 계열사들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부시행정부가 주도하던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한국과 미국이 융합된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기업은 한미FTA를 발판삼아 ‘구조조정’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코자 했을 것이다. 자유무역협정 하에서의 관세철폐 효과 등으로 수출 증가를 응당 기대하지만, 꼭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생산기지 이전이나 인원감축, 또는 차세대 방법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각종 비용 절감을 꾀하지 않았을까. FTA로 인해 더욱 굳건해지길 바라는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

허나 세계경제 불황이 찾아와 신자유주의가 빛을 바래가고 자유무역-한국 입장에선 한미FTA가 ‘자유’무역이라고 칭하는 것조차 국제적 망신이라는 견해도 있지만-에 대한 정밀진단이 필요한 이 시점에, 삼성(외국인투자자들 포함)도 급해진 모양새다. ‘국가 공인 로비스트’ 한덕수씨에 이어 실력있는 ‘민간 로비스트’의 필요성이 절실했던 건 아닐까. 기타 재벌과 전경련의 대표 주자로 삼성이 나섰을 가능성도 있고.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협상 결과물에 이 분보다 정통한 사람이 국내에 몇이나 될까. 꿈도 영어로 꾼다니 대미 민간 로비에 제격이다. FTA 비준까지, 오바마정부의 태클이 약간 있더라도 미국 기업 및 투자자들과 연계해서 초국적 자본의 ‘미래’를 잘 다듬어줄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그 분의 여동생 김미형씨가 또 하나의 재벌 그룹 금호아시아나의 능력 있는 부사장인 것도 한층 미더웠을 게다.

이 협정이, 비록 피해 계층은 양산하겠지만 자유무역으로 얻는 (소수) 기업들의 이익을 빈부격차 해소에 배분할 수 있기에 국민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 전, 현 정부와 재계의 대략 공통된 논리다. 근데 그 미래란? 결국 재벌의 이익이 바로 ‘국익’이고 이들의 이익을 위해 다수 국민들이 희생하고 몰락해야 한단 말 아니겠는가. 그래서 재벌은 미국통 김현종씨 고이 모셔다 차근차근 준비하려는 것 아닌가. 부디 기우이길 바란다.

아울러, 김현종씨 개인 앞에 승승장구의 양탄자 꾸러미는 계속 펼쳐지고 있다. 삭삭함과는 거리가 먼 듯 보이는 그의 외모지만, 참여정부 시절엔 청와대만 가면 “대통령님~” 하고 귀엽게 외치면서 막 달라붙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총애를 굳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원래 비공무원 출신이-출중한 실력 덕인지 천운 덕인지- 고위공직자로 신분이 수직 상승해서 국운을 좌우할 국제협상을 일사천리로 타결해버리고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왔는데….

최고위 협상자가 삼성을 택한 건, 어찌 보면 애초부터 보통 한국인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과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삼성맨이 된 김현종씨의 ‘공직자윤리법’ 위반가능성을 제기한다. 공직자윤리법상 재산등록의 대상이 되는 공직자는 공직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최근 개정안은 5년) 이내에 소속하였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는 것! 이건 변호사 생활 오래 했던 김현종씨가 더 잘 알지 않을까 싶다.

뭐 어쨌든 괜찮다 치자. 어차피 ‘윤리’는 기대 안하므로. 삼성으로 간 건 그 분 자유일 테고 대기업 프렌들리 이명박정부도 별 문제 삼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곡학아세의 산물로 여겨지는 한미FTA에 대한 막중한 책임으로부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기업에 잠시 머물다 미국으로 홀연 떠나도 마찬가지다. 이 나라 주인인 국민이 두고두고 곱씹을 것이다.

2000년 한중 마늘협상에서 이면합의가 있었다는 의혹에, 협상을 주도한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한덕수씨가 그 책임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듯.

봄이다. 그러나 나라꼴은 봄이 아니다. 처세의 달인들 말고, ‘봉중근 의사’와 같이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줄 인물을 정치, 경제 분야에서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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