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들께서 ‘방송의 공정성 심의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고, 활용되길 원하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적용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방통심의위에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여 ‘시청자사과조치’를 내린 <PD수첩>(‘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의 경우 공정한 프로그램이었나, 아니면 공정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나? 만약 공정하지 못했다면 ‘공정하기 위해 어떻게 제작했어야 했고’, ‘공정하지 못하다는 판결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겠나?

참석했던 기자들에게 질의응답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손들어 질문했다. 진실로 궁금했다. 방통심의위의 의뢰로 만들어진 ‘공정성 가이드라인’이 실제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말이다. 그러나 연구진으로 참석하고 이날 사회를 맡은 김민환 고려대 교수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리고 토론회장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순간 내 질문이 웃음거리가 된 것이다. 내 질문이 이상했나? 나에겐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는데 왜 다들 웃지? 토론회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내내 이 의문을 풀리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의뢰해 언론학자 6인이 만든 ‘방송의 공정성 심의를 위한 연구’ 결과를 두고 전문가 및 현업의견을 청취하는 토론회가 지난 20일 열렸다.

▲ 지난 20일에 열린 '방송의 공정성 심의를 위한 연구'에 대한 전문가 및 현업의견 청취 토론회 ⓒ미디어오늘

방통심의위의 ‘심의’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인지 토론회에 대한 관심도는 높았다. 토론회 관련 보도자료가 바로 전날 저녁에 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취재열기가 뜨거웠다.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자들이 모두 참석해, 발언들을 열심히 기록하고 사진을 찍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과연 그들이 어떤 것을 보았을지 사뭇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토론회는 연구진들이 만든 ‘방송의 공정성 심의를 위한 가이드라인(안)’에 대한 발표로 시작됐다.

발표를 맡은 임영호 부산대 교수는 발표에 앞서 “실질적으로 공정성이 무엇인지, 판단이 자의적이고 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고 해서 혼란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며 연구 시작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 연구보고서는 방통심위의의 의뢰로 준비된 것이지만, 이 가이드라인을 어떤 제도적, 법적 장치를 통해, 또는 어떤 성격의 규정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자들 사이에 완전한 합의를 본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연구자들은 공정성의 구성요소를 ‘사실성’, ‘불편부당성’, ‘균형성’으로 규정, 이 개념을 근거로 방송의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사실성이란 “확인 가능한 사실을 토대로 해서 제작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며, 불편부당성이란 “논쟁의 여지가 있는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을 다룰 때 특정한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의사 표명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을 뜻한다.

임영호 교수는 불편부당성에 대해 “‘어떻게 짧은 프로그램에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나’라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그런 경우 제작자 생각대로의 방송을 허용하되, 차후에 다른 의견에게도 반박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불편부당성은 방송의 중요한 정책적 가치이며, 이를 구체화하는 방안 마련은 오히려 방송 내용을 둘러싸고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논란과 외압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라고 연구자들은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균형성은 ‘관련당사자나 방송대상자의 비중이나 사회적 영향력 등을 고려하여 공명정대하게 다루는 것’으로, 임영호 교수는 “‘5:5 양적 균형이라는 것이 가능하냐’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며 “그래서 단순히 기계적으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양적으로 치우쳤지만 질적으로 균형을 이룬 차후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들도 정직하고 공정하게 생각한다면 그것도 공정성이라고 정리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들의 공정성 가이드라인에 대한 발표가 끝났다. 제작자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는 공정성 가이드라인, 과연 현업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KBS <미디어비평>의 김상협 기자는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라는 논의가 먼저”라며 “공정성 심의가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그는 “방통심의위가 ‘6:3위원회’다, ‘자판기 심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며 “이들이 공정성을 심의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김 기자는 또 “대다수 나라에서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은 방송사가 자체심의를 하고 있다”며 “우리도 자율심의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기자는 방통심의위의 독립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방통심의위는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고 방송발전기금을 사용하고 있어 구조자체가 정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며 사실상 준정부기구라고 비판했다. 그곳에서 공정한 판결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배선영 MBC 기자는 “만약 이번 연구가 공정성에 대한 연구였다면 좋은 텍스트라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안될 수 있지만 정작 이것은 ‘공정성 ‘심의’에 대한 연구’”라며 “공정성이라는 광의의 개념이 심의의 대상이 되는 순간 표현의 자유, 취재활동의 자유를 억제할 수 있다”고 연구 자체를 비판했다. 또한 배 기자는 “공정성 개념에 대한 논의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진행할 것”이라며 “정의해서 얻어지는 것보다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는 가치가 더 크다면 안하는 것도 방법이다. 세상은 모든 개념을 세세하게 정해놓지는 않는다. 자유나 평등은 아직도 영원히 논의되는 주제다. 공정성도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냐. 세세한 정의가 있어야만 심의를 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박진형 PD연합회 정책국장 역시 “선진국의 여러 사례를 검토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준국가기구라고 하는 방통심의위가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공정성을 심의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답이 당연히 나왔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현업인들은 대체적으로 ‘공정성 가이드라인’이 나온 배경의 문제점과 그것이 가지고 올 표현의 자유 위축 등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이미 자체심의를 하고 있고, 자율심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연구진들의 답이 있었다. 윤영철 연세대 교수는 “현업에 계신 분들이 사후규제를 잘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며 “많은 시청자들이 특정 채널이 불공정하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이 시청률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민환 고려대 교수는 “절대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표현으로 ‘되도록’이라고 썼다”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심의를 안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지금 어차피 하는 것 아니냐”고 상황논리를 들기도 했다.

그렇게 토론회는 끝이 났다. 토론이 진행되는 내내 가이드라인을 만든 연구진들과 방송 현업인들 사이에 합의점은 없었다.

현업인들은 “준국가기구인 방통심의위가 ‘심의’를 하는 게 온당한가”라며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넘어 방통심의위의 ‘심의’ 행위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연구진들의 답은 “이미 하고 있다”였다. 이것은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전제하고 나온 답이다. 동문서답인 셈이다.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의 ‘심의’가 옳은지에 대한 답이 내려지기 전까지 이 둘 간의 합의점은 찾기 어려울 듯싶다. 그런데 <PD수첩>에 대한 공정성 가이드라인의 적용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누가 풀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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