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의 전 매니저였던 유장호 대표가 자신의 미니홈피에 “자연이를 아는 사람들, 아니 연예계 종사자는 자연이가 왜 죽었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며 “공공의 적”을 언급한 것이 지난 9일이었다.

그리고 장자연의 유족이 7명을 경찰에 고발한 것이 확인됐다. 그 중 누가 ‘공공의 적’이라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모두가 비분할 사회 유력인사 3명이 거기에 포함됐다. 혐의는 성매매특별법 위반이다. 그 3명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그들의 직업뿐이다. 각각, 유력 일간지 대표, 금융계 회장, IT업체 대표이다. 사실 여부야 시간이 지나면 밝혀져야겠지만, 한국사회의 참혹한 단면이다.

타인의 죽음에 관한 흔했던 ‘비보’는 이렇듯 단숨에 세상의 절망을 베는 단 하나의 ‘비수’가 되고 있다. 지난 십여 일 동안 언론은, 그 존재 자체가 불길하다는 것을 직감 하면서도, 찌라시와 저널리즘 사이의 광활한 간극을 오가는 초월적 존재가 되어, ‘장자연 리스트’란 환상을 쫒을 수밖에 없었다. 얄궂은 운명, 아이러니의 시험이었다.

유족의 고발과 함께 다시, 새로운 국면이다. 지난 10여 일간, 불행한 운명을 알면서도, 초월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언론의 고행길을 더듬어봤다. 대상 선정에 적잖은 고민이 있었지만, 장고와 긴 모니터링 끝에 결정했다. 누가 뭐래도 ‘모범’으로 삼을 대상은 역시, ‘할 말은 하는 1등 신문’ 조선일보 아니겠는가.

3월 10일, 매사에 의욕 없고 불안한 당신…혹시 우울증?

▲ 3월10일자 조선일보, 매사에 의욕 없고 불안한 당신…혹시 우울증?

유장호 대표의 언급이 있던 다음날이었다. 사건을 여전히 단순히 보는 뚝심이 돋보인다. 사회면의 절반 이상을 횡단하는 편집으로 애초 장자연 죽음의 이유로 추정되던 우울증 관련 기사를 실었다. 유장호 대표의 발언이 있기 전까지의 장자연 자살 상황을 의학적으로 수렴하여 정리한 기획기사이다. 조선일보가 전날의 상황을 모르진 않았을 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언급의 뉴스 가치를 높게 보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혹은, 인쇄가 너무 빨랐을 뿐이거나.

3월 14일, 술접대 폭력에 시달려

13일 오전에 유장호 대표에 대한 경찰조사가 있었고, 같은 날 KBS는 장자연이 남긴 문건의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별 다른 가치 평가나 해설 없이 스트레이트로 다뤘다. 남이 만든 이슈를 따라가지 않는 1등 신문의 ‘고저한’ 자존심이 느껴진다. 낮밤 가릴 것 없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데, 발동을 쉽게 걸어선 곤란하다.

3월 16일, 장자연 문건 연예기획사 압수수색

▲ 3월16일자 조선일보, 장자연 문건 연예기획사 압수수색

드디어, 조선일보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주말동안 경찰은 전격적으로 장자연이 소속됐던 기획사를 압수수색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윤전기가 쉬는 동안 상황이 출렁이며, 조선일보 역시 그림을 쫒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 발로 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하며, 비교적 상세하게 일고 있는 폭행, 성접대 강요, 술자리 참석 등의 의혹을 소개했다.

3월 17일, 일부 기획사 ‘접대용’ 신인 따로 관리

▲ 3월 17일자 조선일보, 일부 기획사 ‘접대용’ 신인 따로 관리

조선일보가 사건을 나름대로 매만지기 시작한 날이다. <연예 매니지먼트의 그늘>이라는 기획이 시작됐다. 제목은 무척 선정적이다. 그러나 과감한 것은 제목뿐이고, 내용은 조금 무딘 편이다. 접대용 신인이 있는 기획사는 전체 기획사 가운데 20% 미만이며, 주요한 접대 사례들은 캐스팅 혹은 광고 관련된 자리라고 설명했다.

결과론이겠지만, 유족이 고발한 성매매특별법 위반 피고소인들은 조선일보의 보도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다. 캐스팅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당사자들은 광고와의 어떤 연관성도 부인했다. 특히, 유력 일간지 대표는 조선일보의 설명 중 어떤 것과도 개연성을 갖지 않는 관계이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미묘하나마, 궤도에서 이탈을 시작한 날이었다.

3월 18일, 조선일보의 히드라적 자기 분열

▲ 3월 18일자 조선일보, 히드라적 자기 분열?

▲ 3월 18일자 조선일보, 히드라적 자기 분열?

조선일보가 ‘히드라’적인 분열을 본격화한 날이다. 다급함(!)이 느껴진다. 전날에 이은 기획 기사는 비교적 정교하게 문제의 핵심을 직조했다. 겉보기와는 달리 사회적 약자로 존재하는 연예인의 실상을 점검하며, 성접대 받은 이들의 죄의식 없음을 구조화하는 사회 풍토를 비판했다.

반면, 사설은 달랐다. 판을 다시 짰다. 현재를 루머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드는 상황으로 규정했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보태고 지우는 방식으로 루머가 특정인을 공격할 가능성을 강하게 염려했다. 이런 사설은 조선일보의 전형성이다. 해결방법도 정말 우스운데, 김씨와 유씨를 대질할 것을 권유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연히 그 둘을 대질한다고 특별히 달라질 건 없다. 왜냐면, 그들은 루머를 부인하고 있고, 개인의 신변과 이해관계들이 얽혀있는 상황에서 사실과 다르게 증언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흔히, 신문사의 특정 입장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사설을 통해 조선일보는 이미 드러난 피해가 아니라 피의자의 피해를 격하게 우려하기 시작했다.

3월 19일, 문건 원본 사본 모두 불태워

▲ 3월 19일자 조선일보, 문건 원본 사본 모두 불태워

18일 유장호씨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조선일보가 다른 신문들과 결정적으로 결별한 날이다. 방향이 다른 제목을 뽑고, 많이 독특(!)해진 관점을 선보였다. 문건의 진위 여부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KBS가 그걸 어떻게 보도했는지 아느냐를 묻는 뉘앙스의 볼멘소리가 시작됐다. 문건을 흔들려는 태도가 역력해졌다. 말하자면, 조선일보는 사실보다 사실이 알려지게 된 배경을 더 주목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보도를 전문용어로 ‘물타기’라고 한다. 피의자의 피해를 격하게 우려히는 것으로 펜을 풀더니, 하루 만에 본격적으로 물을 탄다!? 석연치 않은 일이다. 할 말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3월 20일, 괴소문 키우는 답답한 수사라는 조선일보

▲ 3월20일자 조선일보, 괴소문 키우는 답답한 수사

▲ 같은날 조선일보, “KBS 문건, 유족들 태운 것과 달라”

장자연 유족이 사회유력인사 3명을 포함한 7명을 고발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날이었다. 조선일보는 완전히 방향을 틀었다. 그래도 며칠간 자신들도 주요하게 근거로 삼고, 질타했던 리스트였다. 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괴소문’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무슨 까닭인지, 전체 보도를 이끌고 있는 KBS를 향한 경고를 날렸다. 왜 그랬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참고로 KBS는 유력 일간지 대표가 “장씨가 문건에서 ‘기획사 대표 김씨와 함께 접대에 불렀고, 김씨가 이 인사로 하여금 잠자리 요구를 하게 했다’고 적시했다”는 보도를 했다. MBC 역시 같은 날 <뉴스데스크>를 통해, “지난 2002년 정재계 인사들에게 여배우들을 동원해 성상납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지만, 소환 조사 한 번 없이 흐지부지된 바 있다”며 “이번에도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면서 언론계 등 고위급 인사들이 등장하자, 사건을 축소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경찰에 집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가 이게 아니라고 발끈한 이유는?

그리고 오늘, 인터넷의 무차별 루머 재생산 이젠 뿌리를 뽑잔다

바야흐로, 조선일보에게 이번 사건은 어느 여자 연예인이 권력관계에 의해, 성적 도구와 상납의 대상으로 고통 받은 사건이 아니라, 인터넷의 괴소문과 루머를 다시 한 번 확인한 사건이 되었다. 극적인 변화, 공세적인 전환이다. 최진실은 그렇다 치고, 주병진까지 끌어들였다. 장자연 리스트와 괴소문은와 별개다, 인터넷 루머는 심각한 거 아니냐, 모든 언론이 똑같은 프레임일 필요는 없다 등의 이야기는 삼가는 게 좋겠다.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구차해진다.

▲ 3월 21일자 조선일보, 인터넷의 무차별 루머 재생산 이젠 뿌리를 뽑자

조선일보는 이번 사건의 아포리아를 넘어섰다. 기사를 통하여 문제를 보도하는 도중에 부딪치게 되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맞았던 것일까? 그래서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건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이나 관점에서 새로이 탐구하는 출발점이 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여간, 유력 일간지 대표가 포함된 사회 유력인사 3명이 성매매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되었고, 할 말은 하는 1등 신문 조선일보의 논조도 달라졌다. 현재 속엔 미래가 내포되어 있다는데, 다음주의 조선일보는 또 어떨까, 기대 몹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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