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첫 전체회의부터 사회적 신뢰회복을 위한 공약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해 관행의 개선을 강조했다. 취임 직후인 2013년 3월, 청와대 블로그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코드라는 글을 올렸다. 2014년 신년사에서도 비정상적인 관행을 정상화하는 개혁을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3년 반이 지난 지금 결과는 사뭇 다르다.

박근혜 정부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는 커녕 권위주의 시절의 사라진 관행까지 부활시켰다. 국정원이 탈북자출신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을 두고 책임자 처벌과 문책은 고사하고 과거의 잘못된 관행이었다는 한마디 말로 넘어갔다. 물대포로 사람을 맞춰 생명을 위협하는 등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관행도 부활했다. 이번에 드러난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과 KBS보도국장의 통화내용에서 보듯 청와대 홍보수석의 언론보도 개입관행은 홍보수석 본연의 업무로 자리잡았다.

비단 최고권력만의 일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가히 관행 전성시대다. 가수 조영남은 미술작품 대작시비를 미술계 관행이란 말로 얼버무리다가 사기죄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홍만표 변호사는 개업한 지 수년만에 수백 억의 수임료를 공식 비공식으로 거둬들였다가 구속되었다. 전관예우라는 범죄행위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새정치를 내걸고 등장한 국민의당은 홍보비 리베이트 수수 의혹이 일자 업계 관행이라 해명했다가 더 큰 역풍을 받았다. 새정치로 흥한 당이 이제는 관행의 당이 된 것인가라는 조롱을 당해도 아무 항변을 하지 못했고, 결국 두 공동대표가 물러나는 사태에 이르렀다. 더민주의 서영교 의원은 가족을 의원실에 채용하고 보좌관에게 정치후권금을 강요한 일로 소속 정당의 징계를 앞두고 있다. 그녀가 내놓은 해명도 관행의 마법에 의지하고 싶은 희망이 엿보인다. "친인척 채용은 잘못된 것 같다. 제가 계기가 돼서 국회에서 이런 관행이 없어지길 바랄 뿐이다."

사실 관행이라는 말 자체는 죄가 없다. 어떤 행동이 관행으로 굳어진 것은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사리에 맞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잘못된 관행도 많지만 여전히 따를 가치가 있는 관행도 있다. 그러나 관행이라는 말이 이토록 지독하게 오염된 현실을 무시하고 말뜻에만 의지하는 것은 한가하다.

보도개입은 군사정부시절의 보도지침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간첩조작은 국기문란이다. 미술작품이 대작이라는 것을 감추고 이익을 취한 것은 사기다. 전관예우는 사법질서를 문란하게 만드는 엄연한 범죄다. 선거비용 신고를 부풀리는 것은 세금 도둑질이다. 의원실 일과 가족의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정치인은 자격이 없다. 어떤가? 누구나 인정할 법한 지극히 단순하고 상식적인 판단 아닌가? 그러나 관행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뒤집혔다. 최고권력을 필두로 우리사회의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관행이라는 말을 마치 어떤 불합리와 탈법도 덮을수 있는 마법의 보자기라도 되는 양 여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더이상 관행이라는 말에 관대할 수 없는 이유다.

영국태생으로 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정치사상가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은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책 서문에서 '나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 평범한 논의, 그리고 상식을 말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이 상식인 바, 미국이 영국의 전제에서 벗어나 민주적 공화정을 수립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역사적 순리임을 주장함으로써 미국 독립전쟁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맥락으로 보아 페인이 사용하는 상식의 말뜻은 '이론이 없는 자명한 진리' 정도로 볼 수 있겠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논란의 여지없이 공유하고 있는 사물에 대한 인식 또는 판단능력'을 말하는 사전적 풀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또한 같은 책에서 '그릇된 것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 오랜 습관으로 굳어지면, 그 그릇된 것은 표면상 옳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썼다. 군주제와 귀족정이 혼합된 영국의 정치제도는 잘못된 것이고, 그 영국의 지배를 받는 것은 더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오랜기간 그 지배하에 있으면서 이를 당연하고 옳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노라 비판한 것이다. 이 '아무 생각없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이 바로 관행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페인은 관행을 바로잡을 준거틀로 상식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영어로 상식과 관행(common practice)의 관계를 살펴보면 유의미한 통찰을 얻을 수있다. 둘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common)이라는 점이다. 차이점은 전자가 인식(sense)의 영역이고 후자가 실행(practice)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전자가 머리라면 후자는 몸이다. 상식과 관행이 괴리된 사회란 곧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사회를 말한다. 상식을 거스르는 관행이란 머리를 몸이 좌지우지 한다는 것이다. 돼지꼬리가 돼지를 흔드는 격이다. 페인식으로 말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습관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이런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이제 우리는 관행을 시대를 넘어 상식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너무나 많은 잘못들이, 특권이, 심지어 범죄행위가 관행이라는 말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 모든 잘못된 관행과의 싸움은 다름아닌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지극히 단순한 상식에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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