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가 처음 세상에 출현했을 때 에이즈는 펜타곤이나 CIA가 생화학전 무기 실험을 하는 가운데 유출되었다는 설이 파다했다. 최초 이 뉴스는 소련의 주간지 Literaturnaya Gazeta가 인도의 신문 Patriot를 인용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외신을 통해 신뢰성을 담보하려 한 것이다. 미국은 부인했지만 6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비슷한 뉴스가 반복되었다. 영국의 Sunday Express지는 동독 정보원과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이를 보도하기도 했다. 미군이 주둔한 국가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급기야 미국의 CBS도 이를 주요한 뉴스로 다루기 시작한다.

물론, 이후에 밝혀졌지만 에이즈는 결코 미국의 생물학전 무기실험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급속하게 세계에 퍼져 미국의 대외적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조웻과 오도넬(G. S. Jowett & V. O'Donnell)은 그들의 저서 <선전과 설득, Propaganda and Persuasion>에서 이를 선전의 한 예로 들며 ‘정당한 정보원 모델’로 설명하고 있다. ‘정당한 정보원 모델’은 아래의 그림과 같다.

▲ 출처: G. S. Jowett & V. O'Donnell(1999), Propaganda And Persuasion, 3rd eds., Thousand Oaks: Sage, p. 21.
선전자 P는 원래의 메시지 M1을 언론이나 학회 등의 ‘정당한 정보원’ P2에게 흘리고 P2는 선전자 P에 적합한 메시지 M2를 되돌려준다. 이를 되받아 선전자 P는 수용자 R에게 M3의 형태로 선전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통해 선전자 P의 의도는 감추어지고 선전 메시지 M3는 언론이나 학계 등의 ‘정당한’ 기구가 생산한 합리적이고 설득적인 메시지로 포장된다. 미국을 겨냥한 소련의 에이즈 관련 선전 역시 이와 같았다. 소련(P-M1)은 인도의 외신(P2-M2)을 거쳐 수용자(R)에게 미국의 생화학 무기 실험의 결과 에이즈 바이러스가 유출되었다는 선전(M3)을 전파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선전술을 최근 동아일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소개하자면, 동아일보는 3월 19일 <美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함재봉 박사가 본 ‘쇠고기 시위’>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함재봉 박사(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6일 발간된 경찰대 부설 치안정책연구소의 치안정책리뷰 9호에 ‘밈(meme·따라하기) 이론으로 본 한국의 촛불시위’라는 글을” 올렸다. 밈 이론은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병이 발생하는 것처럼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도 인간의 사고가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는 것”이다. 함 박사는 “지난해 쇠고기 반대 시위는 엽기적이라고 할 만큼 자극적인 보도를 일삼은 방송과 이를 통해 생산된 ‘광우병 괴담’을 적극 받아들인 10대 특유의 사회 연결망 구조와 논리가 만들어내고 확산시킨 전염병의 일종”으로 분석했다. 많은 이들이 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해 함 박사는 “한국에서는 시위 참여에 따르는 유·무형의 비용이 극히 낮기 때문”을 지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보도를 조금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 기사는 전형적인 ‘정당한 정보원 모델’, 즉 선전자가 정당한 정보원의 권위에 기대거나 혹은 정보원을 정당한 것으로 조작하여 선전 의도를 감추며 이를 관철시키는 선전술임을 알 수 있다. 통상 학계에서 논문은 다수의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게재된다. 학술지의 권위는 심사의 객관성으로 담보되며 그에 따라 논문의 타당성 역시 인정될 수 있다. 허나 치안정책리뷰는 학술지가 아니다. 이는 치안정책연구소가 지난 2008년 1월부터 격월로 발간하는 소식지이다. 치안정책연구소의 자체·외부 용역 보고서 요약본, 현장 경찰관 및 교수의 칼럼, 연구소 소식으로 채워진 전체 15쪽 분량의 잡지이다. 경찰연구기관의 소식지인만큼 경찰의 이해와 입김이 곳곳에 묻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치안정책리뷰는 정당한 정보원이 될 수 없다. 함재봉 박사의 “밈 이론으로 본 한국의 촛불시위”가 객관적이며 타당한 이론적 분석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글은 치안정책리뷰가 “2009년 1월 16일 자유민주연구학회(회장 김광동) 주관 전문가 초청 비공개 간담회에서 미 랜드연구소의 함재봉 박사(전 연세대 정외과 교수)가 발표한 것을 치안정책연구소 안보대책연구실 유동열 선임연구관이 요약·편집한” 것이다. 객관적이고 엄격한 학문적 심사를 거친 글이라기보다는 보수단체가 주관한 비공개 자리에서 함 박사가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개진한 칼럼의 성격이라고 보는 편이 좋겠다. 적어도 치안정책리뷰에 실린 글만큼은 그렇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객관적이고 이론적인 논문의 글이라고 한다면 이 글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일례로 사스 바이러스 확산과 촛불시위 확산을 일치시키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보이며, 보다 많은 다수의 일치하는 사례가 필요하다. 촛불시위 확산과 소멸의 주요한 변인으로 정권의 반응과 공권력의 폭력이 빠져 있는 것은 아전인수 식의 논거 채택 같다. 전염자를 격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가치 평가적이다. 개인적 의견을 개진한 칼럼이라면 넘어갈 수 있으나 학술적 논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논문 심사 과정에서 논문게재 불가 판정을 받거나 아니면 대폭 수정 후 재심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 동아일보 3월19일치 2면 기사
그러나 동아일보는 이 글을 전문적·이론적·학문적 분석으로 포장하고 있다. 개인적 의견에 불과한 것을 장황하게 미국(!) 유명 연구기관(!)의 선임 연구원(!)의 전문적·학술적 분석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로써 조작한 ‘정당한’ 정보원에 기대 선전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파하려 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감추어진 동아일보의 선전 의도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지난여름의 촛불을 폄훼하고 과도한 공권력의 집행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을 차단코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를 통해 보수 신문의 기득권을 유지하며 보수 신문과 공모하는 보수 정권을 보호코자 함이 아니었을까. 조웻과 오도넬의 ‘정당한 정보원 모델’에 따른다면 동아일보의 함 박사 인용 기사는 뉴스라기보다는 선전에 가깝다.

이는 언론으로서 동아일보의 신뢰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뿐만 아니라 인용한 학자인 함 박사에게도 큰 누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쓴 글이 원치 않게 학문적 분석으로 포장되어 회자되게 되었으니 얼마나 창피한 일이 되겠는가. 동아일보가 정말로 정당한 정보원의 권위에 기대 함 박사의 글을 인용코자 한다면, 그리고 학자인 함 박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면, 차라리 랜드 연구소의 홈페이지 있는 그의 2008년 논문 “남한의 기적적 민주주의(South Korea's Miraculous Democracy)”를 찾길 바란다. 거기에서 함 박사는 촛불 시위를 탈이데올로기적, 탈민족적 공중 보건(public health) 문제로 접근하고 있으며, 한국 민주주의의 기적성은 민주적으로 정권이 바뀌는 가운데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이 개선되는 과정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다음의 원문을 의역하였다. The "miraculous" quality of South Korea's democratic development arises from the fact that the very events which critics point to as symptoms of weakness were turned into opportunities to enact far-reaching reforms). 이 정도의 논의라면 그래도 동아일보의 이념성과 맞으며 국민 다수와 소통 가능하다 하겠다. 괜한 선전술로 동아일보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고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언론이란 무엇인가를 동아일보가 고민하기를 바란다. 가뜩이나 미네르바 조작 오보로 심란할 텐데 또 다른 숙제를 일깨워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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