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내에서 개혁 성향 법관으로 통하는 정진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최근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의혹 사건과 관련해 ‘신 대법관의 사퇴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담은 글을 법원 내부 통신망 게시판에 18일 올렸다.”

이것이 오늘 19일자 동아일보 ‘여론 압박에 대법관 사직해선 안돼’ 기사의 골자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의기양양하게 지면기사 하단에 “dongA.com에 정진경 부장판사 글 전문 게재”라며 홈페이지를 통해 전문이 실렸음을 알렸다.

▲ 3월 19일자 동아일보 14면 기사
동아일보와 정진경 부장판사의 글 전문을 읽고, “동아일보, 잘 정리했네!”

“저는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가 다소 지나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며 신영철 대법관을 옹호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습니다.”
“유무죄 판단이나 양형의 문제는 재판권에 속하는 것임이 명백하지만 사건의 절차에 관한 문제는 재판권과 사법행정이 교차하는 영역일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과의 관계에서 법원 전체의 신뢰를 생각하여야 하는 법원장이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된 사건들에 관하여 자신의 절차진행에 관한 견해를 개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시기를 놓친 형사처벌은 마치 김빠진 맥주처럼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판장은 법원장의 의견을 충분히 검토한 후 그에 따르는 것이 자신의 법적 양심에 반한다고 생각한다면 법원장에게 정중하지만 정확하고도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여야 합니다.”
“오늘 여론의 압박이 있다하여 이에 굴복하여 대법관이 사직한다면 내일 또 다른 여론에 의하여 다른 대법관이 공격받고 사직하게 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해하게 될 것입니다.”

동아일보가 인용한 정진경 부장판사가 쓴 문장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글의 전문을 정리하면 동아일보가 그의 뜻을 잘 정리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정진경 부장판사가 동아일보의 주장대로 ‘개혁 성향 법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동아일보는 오늘 어째서인지 이 글의 반박글도 소개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장창국 판사는 ‘신 대법관이 사건 전부를 빨리 처리하라고 한 게 아니라 특정 사건을 지목한 것은 사법행정이 아니라고 본다’며 ‘해결책은 신 대법관이 알고 있고 스스로 결정하기 바랄 뿐’”이라 밝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뭔가 찜찜한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그동안 동아일보가 보여왔던 신영철 대법관 논란에 대한 논조의 문제와 정진경 판사의 글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일 것 같다.

“동아일보야! 정진경 부장판사의 글을 이용하지 말아줄래?”

“그 판사의 헌법상 신분보장을 침해하는 언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된 행동입니다. 판사의 거취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오늘 여론의 압박이 있다하여 이에 굴복하여 대법관이 사직한다면 내일 또 다른 여론에 의하여 다른 대법관이 공격받고 사직하게 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을 해하게 될 것입니다. 판사는 헌법상 독립된 기관으로서 그 지위에 걸맞게 무게 있는 처신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정진경 부장판사가 쓴 글의 결론이다. 동아일보는 이 글이 ‘“신 대법관의 사퇴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담은 글’이라 주장하고 있는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신 대법관 사퇴를 반대한다”는 문구도 없을 뿐더러 그 의미라고 해석하기에도 애매한 글이다. 정진경 부장판사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부분은 바로 ‘여론’의 압박에 의해 사직한다면 그것이 곧 사법부의 독립을 해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잘 해석하면 “외부 압력에 의해 사퇴하는 게 우려스럽다” 정도가 될 것 같다. 이것을 사퇴 반대로 해석한 것은 아무래도 과한 의역이 아닐까?

동아일보는 신영철 대법관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고?

▲ 3월 6일자 동아일보 12면 기사
생각해보면 동아일보가 처음부터 ‘신영철 사퇴 반대’라는 의도를 드러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 논란이 있던 다음 날인 7일, 동아일보는 조선과 중앙일보가 결코 하지 않은 1면에 ‘신영철 대법관 재판 압력성 이메일 파문’이란 기사를 배치했다. 그 안에는 비판의 내용은 없었지만 누군가를 두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메일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해 개념 있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7일부터 신영철 지키기에 돌입한 듯, 이건 ‘사법행정 일 뿐’이라 일축하고 나섰다. 당일 사설 “법관 독립과 사법 행정으로서의 재판 독려”에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사건 당사자와 중요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으로서는 재판의 공정성에 못지않게 신속성도 중요하다”고 못 박았다. 신속한 재판을 독려한 것 자체만으로는 사법행정에 관한 법원장의 감독권한을 벗어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신영철 사퇴론 반대를 뒷받침하는 기사를 배치하고 있다. ‘2심 재판부는 “미룰 필요 없다” 합의’ 기사를 통해 신영철 논란을 부른 1심 ‘일부’ 재판부는 “야간집회 금지 위헌심판 기다리자”라고 했지만 2심 재판부는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에 접수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구속 기소자 43명 전원의 공소장을 분석한 결과 공무집행방해 혐의만으로 기소된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2~6가지의 혐의가 중복적용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다수가 야간집회금지 조항이 적용되긴 했지만 실제 재판결과는 일반 교통방해죄나 공무집행방해죄 등의 유무죄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궁금증 하나, 야간 집회 금지와 교통방해죄, 공무집행방해죄가 분리될 수 있을까?


동아일보의 다음 수순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의 말을 빌려 ‘정치 쟁점화’하면 안된다는 것이고, 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관련된 사설에서는 “조사단은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는 일부 판사의 진술만을 받아들여 재판에 관여했다고 결론 낸 것”이라며 “신 대법관이 이런 조사 결과에 승복할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제 그 본색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3월 18일 동아일보 12면 기사
그렇게 완성된 “외부의 사퇴압력이 사법의 독립을 훼손한다” 논리

그렇게 완성된 논리가 “외부의 사퇴압력이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한다”이다. 동아일보는 지난 18일 ‘소장 판사들 “그 정도면…” 수긍 분위기’ 기사에서 “신 대법관에게 사퇴를 권할 용의는 없으며 본인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의 말을 인용했으며 또한 “신 대법관의 언행에 비판적이었던 한 부장판사는 ‘판사들 대부분이 정치권 등 법원 바깥에서 법원 내부의 분열을 바라는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완성된 동아일보의 논리는 정진경 부장판사의 글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이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동아일보로서는 ‘유레카’를 외쳤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너무 멀리 갔다. ‘외부 압력으로 사퇴하는 것’이 곧 ‘신영철 사퇴 반대’는 아니기 때문이다.

천천히 치밀하게 ‘신영철 사퇴반대’를 준비해왔던 동아일보.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그 연결고리를 찾아봤으면 어땠을까? 물론 가능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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