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국의 첫 공연 다음날, 송일국의 소속사인 씨제스는 송일국이 성공리에 뮤지컬 데뷔를 마쳤다는 보도자료와 문자를 공연 담당 필진과 기자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보도자료대로 송일국이 노래와 연기를 잘 소화할 수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궁금증을 확인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가서 송일국의 공연을 보고 난 후의 결론을 한 줄로 요약하면, ‘연기는 합격점에 가깝지만 노래는 낙제’였다. 뮤지컬 제작사들이 스타를 기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인기 스타 마케팅은 대중에게 스타가 출연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제작발표회 송일국‧최정원 ⒸCJ E&M

그런데 스타 마케팅이 독이 든 성배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다. <요셉 어메이징>의 손호준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진모가 해당 사례에 포함된다. tvN <응답하라 1994> 해태 역으로 인기를 얻은 손호준을 뮤지컬 제작사가 기용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드라마를 마친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이라 연습 부족이었는지, <응답하라> 해태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를 구가하는 수준의 연기를 보여준 게 다였다. 그의 목은 풀리지 않은 상태라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이기도 했다.

주진모는 손호준보다 더 심한 사례에 속했다. 비주얼이 되는 영화배우를 레트 버틀러로 기용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발성과 가창력 둘 다 커버가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좌석이 뒷자리가 아니었음에도 주진모의 발성은 객석에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아 웅웅거렸고, 그의 노래는 듣는 것 자체가 고문일 지경이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제작발표회 송일국 ⒸCJ E&M

송일국은 주진모나 손호준보다는 나은 케이스에 속한다. 우선 그의 연기는 합격점에 가까워 보인다. 송일국이 연기하는 줄리안 마쉬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혈한처럼 보이지만, 속은 따뜻한 외강내유의 캐릭터다. 이런 줄리안 마쉬를 연기함에 있어 송일국은 때로는 단원들을 혹독하게 다루거나 여주인공 페기 소여를 지칠 때까지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엄격한 카리스마 연기, 때로는 관객의 배꼽을 유린하는 2막의 개그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송일국의 가창력은 듣기에 민망할 지경이었다. 2막에서 처음으로 그가 부르는 넘버는 분명 한국어 가사임에도 불구하고 알아듣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노래의 강약 조절도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이전 버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극 짜임새가 훌륭해졌다. <모차르트!>가 이전 공연에서는 추상화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번 일본인 연출가의 손을 거쳐 일취월장한 버전으로 진화한 것처럼, <브로드웨이 42번가> 역시 이전 버전의 고루함을 상쇄하고 짜임새 있는 전개로 리뉴얼되었다.

도로시 브록과 페기 소여가 화해하는 장면은 사연이 강화되었고, 페기 소여가 도로시 브록을 대신하여 어떻게 화려하게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사연이 이전 버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짜임새 있게 갖춰졌다. 하지만 리뉴얼된 맛깔난 스토리의 뮤지컬에서 주연 배우의 가창력이 뒷받침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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